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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쓴 글이 언론사 메인에... 화려했던 데뷔전, 그 후

갑자기 찾아온 글쓰기 슬럼프... 처음부터 큰 성과를 얻은 게 화근이었을까

등록 2021.03.29 14:41수정 2021.03.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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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한 편씩 글쓰기. 휴직하는 기간 동안 세 아이와 씨름하는 일상 속에서 만든 나와의 약속이었다. 글감이 마구 떠오를 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써 내려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잡기가 어려워 컴퓨터 앞에 앉는 것조차 힘든 것이 고민이랄까.


누구나 심경에도 굴곡이 있을 수 있다지만,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곧 내가 미워지는 상황으로까지 번지니 괴로웠다. 괴로움이 길어지면서 괜히 아이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하지. 찬찬히 내 안의 이유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초보 작가들이 모여 소소한 글을 쓰고, 그 글들을 한 편씩 메일로 발송하는 메일링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다. 글쓰기가 진심인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 그런가? 가끔씩 가지는 온라인 회의와 글 속에서도 진지함과 따스함이 교차로 묻어났다.

각자 쓴 글을 통해 멤버들을 알아가기를 두어 달쯤 했나? 멤버 중 한 분이 '이왕 글 쓰는 김에 여유가 되는 분들은 좀 다른 방법으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추천해주셨다.

"저도 쓸 수 있다고요?"

기사를 읽기만 했었지 직접 쓸 수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정치 경제 사회 기사만이 아니라 생활글까지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매체, <오마이뉴스>에선 누구나 시민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적극적인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도전을 했다. 일단 테스트용으로 최근 블로그에 써 놨던 글 중 한 편을 골라 정성껏 퇴고를 했다. 쓸데없이 붙여놨던 내용은 과감히 삭제하고 기사답게 팩트 정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편집부에 송고했다.

기사를 올린 지 하루도 안 돼 채택이 됐다는 다른 회원의 소식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 내 글은 기사로 쓰기에 너무 가벼운 내용이었어' 체념하기를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날 무렵 기사가 발행됐다는 카톡을 받았고 동시에 추천을 했던 작가님이 단톡방에서 소리쳤다.

"오름이에요. 작가님! 세상에... 첫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 탑보드에 올랐어요!"

네에? 뭐라고요?!?!?!? 얼떨떨했다. 도대체 왜?! 사소한 내 이야기가 뭐라고 오름(가장 높은 등급의 기사)에 메인 배치야? 무려 첫 기사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보기 드물다며, 오랫동안 시민기자를 해왔던 작가님이 더 흥분해주었다.

[관련 기사] '천식 낫게 한다'는 의사의 처방, 따르려니 고민입니다
 

한 달 전, 처음으로 메인을 장식했던 내 기사머리 ⓒ 백지혜

 
고민 끝에 딸이 '천식' 진단을 받았던 사실을 몰랐던 부모님께도 알릴 정도로 기쁨을 만끽했다. 경력 단절로 4년 6개월이나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리포터에서 구성작가로 전향한 지 3년 만에, 내게 주는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날 무시하던 방송국 작가들에게 하나하나 링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뿌듯함에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아낌없이 칭찬해줬던 시간이었다.

'오름'에 올랐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간 채로 붕붕 떠다니길 3주 정도가 지났을까. 최근 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진짜 이유가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감에 쩔어 한껏 우쭐해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화려했던 <오마이뉴스> 데뷔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행되지 않은 생나무 글은 자존심을 할퀴었고, 그게 부끄러워 목록에서도 삭제하길 여러 번.

당연히 입상 정도는 하겠지 했던 어느 공모전 명단에선 내 이름을 눈 씻고 찾을 수가 없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낫다는 필력만 믿고 도전했던 '생활사 기록가' 모집 공고에서도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대충 쓴 글도 아닌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는 거기까지야'라는 있지도 않은 비난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상처가 컸다. 차라리 잉걸(가장 낮은 등급의 기사) 정도에서 적당히 칭찬받았으면 괜찮았을까? 독자들은 괘념치 않는 등급에 매여 혼자 끙끙대는 모습이 찌질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 번의 '오름'기사로 우쭐해질 게 아니었단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재빠르게 평정심을 찾지 못했던 게 부끄러웠다. '뭐, 그럴 것 까지 있어?' 라고 말하는 주변 작가분들의 위로에 겨우 진정하고 있는 요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등급'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내 자신이었단 걸 깨달았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도 후회하고 뉘우칠 일이 있구나. 느낀바가 크니 앞으로 '등급'은 신경 쓰지 말아야지!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담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오마이뉴스> 열혈 구독자인 남편이 이런 맘고생을 지켜봤었는지, 이제는 식탁이 아닌 당신 책상 위에서 글쓰기에 집중해보라고 한다. 앗싸! <오마이뉴스> 때문에 내 서재가 생겼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아이셋 워킹맘의 미친세상이야기) 에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 #데뷔기사 #오름 #잉걸 #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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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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