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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불만에 대법원이 움직였다... 통진당 재판개입의 전말

[사법농단 판결문 분석] 양승태 대법원, 사법부 위상 강화 위해 통진당 재판 활용

등록 2021.03.29 23:48수정 2021.03.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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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 '키맨'으로 불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료사진) ⓒ 권우성

 
청와대의 눈치를 본 대법원이 특정 재판의 결론을 유도한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3일 사법농단 관련자 재판 가운데 하나인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방창현 부장판사·심상철 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다. (관련기사 : 사법농단 판사 첫 유죄... 칼끝 양승태·임종헌 겨눴다 http://omn.kr/1sk3o)  

우병우 "판사들 국가관 투철하지 못해"

그 시작은 옛 통합진보당(아래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들의 의원직 유지 결정을 내린 2015년 11월 25일자 전주지방법원 판결이었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곽병원 법무비서관을 통해 해당 판결과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고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다. 

"이게 좀 납득이 안 되지 않느냐. 결국 법원행정처의 입장도 통진당 지방의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전주지방법원의 판결을 지지한다는 것 아니냐. 판사들의 국가관이 투철하지 못하다. 판사 개개인에게 너무 큰 권한이 주어졌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곽 법무비서관을 통해 위 사실을 접하고 곧장 조치를 취했다. 그는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유사한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사건을 다루고 있던 광주지법 1심 재판부에게 '통진당 의원직 유지 사건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리라'는 권고를 전했다.  임 차장의 행동은 일선 판사들의 인사권을 쥔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특정 재판 결론을 유도한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사법부 위상 강화를 목적으로 통진당 재판 활용"

그렇다면 왜 양승태 대법원이 왜 통진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재판에 적극 개입했던 것일까.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판결문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로부터 의원직 상실 결정을 받은 통진당 의원들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한 2014년 12월 19일 이후, 대법원은 위 재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판단했다. 

목적은 사법부의 위상 강화. 당시 박근혜 정부는 헌법재판소 권한을 강화하는 취지의 개헌 논의를 진행했는데, 대법원은 이에 맞서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통진당 재판의 활용이 적절하다 판단했던 것이다. 

임종헌 차장은 이같은 법원행정처 입장을 이규진 상임위원을 통해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사건을 심리하는 전주지법에 전한다. '전주지법 재판부가 의원직 상실유무에 대한 판단 권한이 헌법재판소가 아닌 사법부에 있다는 내용을 인지하고 재판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상임위원은 위 내용을 주변 관계자를 활용해 전주지법 행정2부(재판장 방창현)에 전달했다. 방 재판장은 법원행정처의 심증을 전달 받아 기존 판결문을 수정해서 반영한다. 수정 전 판결문과 달리, 수정된 2차 판결문에 '헌법재판소가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이어 방 재판장은 2015년 11월 25일께 최종적으로 "원고(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가 해당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면서 의원들의 지위를 인정한 청구인용 판결을 내렸다.

임종헌, 청와대 입장 반영해 '통진당 청구기각' 결정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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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국가정보원을 통해 불법사찰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에게 전주지법 판결 관련 평가·분석 등이 포함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보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전주지법의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 ▲향후 법관을 상대로 한 헌법교육 과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언뜻 보면 법원행정처가 통진당 의원들의 지위를 인정한 전주지법 판결을 지지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위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이 2015년 11월 25일 전주지법 공보관의 실수로 기자단에 유출된다. 

결국 당시 언론들은 유출된 문건을 두고 '법원행정처가 통진당 지방의회의원들의 지위를 인정한 전주지법의 판결을 지지한다'고 보도했고, 위 내용을 의아하게 여긴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임 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판결 경위를 확인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임 차장은 2015년 11월 26일,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문건작성 및 유출경위' 문건을 송부한다.

곽 법무비서관이 검토한 내용은 최종적으로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에게 보고가 되고, 우 민정수석은 '판사들의 국가관이 투철하지 못하다'라며 사법부를 질책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의 입장을 확인한 직후 임 차장의 행동이다. 그는 곧장 '의원직 상실 유무에 대한 판단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사법부에 있다'는 기존 법원행정처 입장에 더해 '통진당 의원들의 지위 확인을 인정하지 않는 '청구기각' 결론'까지 권고하면서 통진당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재판에 관여했다. 

일선 재판부가 지킨 양심, 역으로 사법농단 판사 '무죄' 사유로 적용

청와대의 의중을 확인한 임 차장은 2016년 3월 이민걸 실장과 이규진 상임위원에게 또 다른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광주지법 재판부에 관련 내용을 전하도록 지시한다. 먼저 이 실장이 김광태 당시 광주지방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했음에도 김 법원장이 '재판부에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며 거절하자, 이 실장이 직접 통진당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 행정1부의 박길성 재판장에게 동일한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박 재판장은 2016년 5월 19일 법원행정처 입장에 전면으로 반하는 판결을 내놨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박 재판장은 2017년에 있을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인사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심리적 부담을 느꼈음에도 최종적으로 청구인용 판결을 내린다. 

이밖에도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임 차장과 이 상임위원, 이 실장은 2016년 광주고법 전주1행정부(재판장 노정희- 현 대법관)에서 심리한 통진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항소심(2심)에서도 '직위상실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사법부에 있어 본안판단이 필요하다'는 내용 전달을 논의했다. 이에 이 상임위원이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노정희 재판장에게 전달했으나, 노 재판장은 거절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일선 판사들의 양심에 따른 행동은 이 상임위원과 이 실장이 통진당 재판 개입 혐의를 벗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과정이 부당했다 하더라도, 판결을 바꾸는 위법까지 행해지지는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권남용 행위가 있었더라도 현실적으로 권리행사 방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직권남용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지적을 제쳐둔 채 자의로 재판을 했다면 사법행정권의 공정이라는 '권리행사방해'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사법농단 #양승태 #임종헌 #우병우 #이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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