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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난리... 어른들 홀리고도 남을 이 맛

땅속에서 갓 올라온 머위꽃으로 튀김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등록 2021.04.02 07:57수정 2021.04.0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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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4월에 걸쳐 밭둑이나 산자락에서 자라는 머위는 따로 밭을 일구거나 거름을 줄 필요는 없지만, 종묘상에 가도 구할 수 없어 머위 뿌리를 구해서 번식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 박진희

 
요즘 시장에 가 보면 갖가지 봄나물이 나와 있다. 그중 하나인 머위의 어린 잎은 살짝 데쳐 쓴 맛을 우려낸 후에 무치면 끝내주게 맛있다. 멀리 달아났던 입맛을 되찾아줄 만큼 다른 반찬이 없어도 몇 끼 식사가 거뜬하다. 솜씨 좋은 주부는 머위 순으로 장아찌를 담가 두고 오랫동안 이 맛을 즐기기도 한다.


4월에서 5월이면 머위 잎이 부채만큼 커지는데, 이때는 살짝 데쳐서 밥이든 고기든 쌈으로 싸 먹으면 그만이다. 체면일랑 갖다 버리고 크게 싼 쌈을 입안이 터지도록 밀어 넣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좌우로 번갈아 씹다가 꿀떡하고 삼키면 '임금님 수랏상이 부러울쏘냐.' 흡족해서 쓰러진다.

여름에 굵어진 머위대는 또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가. 질긴 겉껍질을 벗긴 후 들기름에 달달 볶거나, 삶아서 갖은 양념 넣어 무치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요리감이 좋은 분들은 볶은 머위대를 쫑쫑 썰어 간장이나 고추장 양념 얹어 밥이나 국수에 쓱싹 비벼서 먹어 봤을 게다. 그 또한 맛이나 식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봄이 되면 머위의 실한 포기에서 머위꽃(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 박진희

 
버릴 게 하나 없는 머위인데,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부위(?)가 있었으니 바로 머위의 꽃(꽃망울)이다. 머위꽃으로 요리를 한다고 하면 수십 년 농사짓던 어르신들도 "머위꽃을 먹어?"라고 되물으실 만큼 요리법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어린 꽃이 피는 기간에는 앞다퉈 뜯어다가 튀겨서 먹는데 말이다.

며칠 전 산에 갔다가 어린 머위 잎과 땅속에서 갓 올라온 머위꽃 몇 개를 채취해 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잊고 있던 '봄의 맛'을 찾아서 머위꽃 튀김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머위꽃 튀김을 할 때는 꽃대를 잡고 머위꽃에만 밀가루옷을 입혀 튀겨낸다. ⓒ 박진희

 
머위꽃을 씻을 때는 버섯을 씻을 때처럼 겉에 붙은 이물질만 떨어지게 씻는 듯 안 씻는 듯 흐르는 물이 스치면 끝이다.

요리 좀 하신다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튀김 옷은 찬물이나 얼음물을 이용해야  바삭거린다. 밀가루를 풀 때는 다섯 손가락을 전부 담궈서 폈다 오므렸다를 반복해 가며 가볍게 밀가루를 풀어주면 되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하시는 분들은 거품기를 이용하셔도 큰 문제는 없다.

종종 SNS에 머위꽃 튀김을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제까지 본 바로는 튀김옷을 꽃 전체에 골고루 묻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꽃대를 잡고 꽃망울에만 튀김옷을 가볍게 입힌 후 꽃대를 잡은 채로 기름에 살짝 담근다.


그러면 접혔던 우산이 활짝 펴진 것처럼 꽃망울이 360º로 벌어지는데, 이때 예쁘게 잡힌 모양을 유지하려면 잠시 인내심이 필요하다. 섣불리 꽃대를 들어올렸다가는 모양을 망치기 십상이라 튀김옷이 단단해졌다 싶을 때 꺼내야 낭패가 없다. 그러고도 다시 앞뒤로 한번 더 튀김옷을 입혀 튀기면 꽃모양을 살린 예쁜 튀김이 완성된다.

우리가 무침이나 쌈으로 먹는 머위 잎도 튀기면 별미가 된다. 김부각이나 깻잎 튀김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쑥도 튀김옷 입힌 후 튀겨 내면 이 계절에만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듯, 머위 잎도 머위꽃 튀김처럼 같은 방법으로 튀겨 내면 봄철 별미 음식으로 딱이다.

활짝 핀 잎 모양을 요리로 재현하려면 머위잎 모양이 잡힐 때까지 잎자루를 잡은 채 기름 속에 잠시 담가 둬야 한다. 심하다 싶을 만큼 심혈을 기울여야 예쁘게 튀겨지는데, 먹어본 자만이 그 맛을 알기에 그 귀찮은 과정을 인내하는지 모르겠다.
 

머위꽃과 머위 잎에 튀김 옷을 입혀 잘 튀기면 활짝 핀 우산 같이 예쁜 모양이 나온다. ⓒ 박진희

 

머위꽃과 머위 잎 튀김은 새콤한 소스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 박진희

 
인고의 시간 끝에 머위꽃과 머위 잎 튀김이 완성됐다. 간장, 물, 꿀과 식초를 2:1:1:1로 섞어 만든 소스를 곁들였다. 시중에 파는 폰즈(소스)를 사서 쓰셔도 좋고,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오리엔탈 드레싱을 이용해도 괜찮다. 

드디어 갓 튀겨진 머위꽃과 잎을 폰즈에 찍어 한 입 먹어보았다. 소스와 튀김옷 때문에 새콤하고 고소한 맛과 향이 먼저 입안을 점령한다. 완전히 바스러진 튀김옷을 머위꽃과 잎과 함께 씹으면 그제야 쌉싸름한 머위 본연의 맛이 치고 올라온다. 식감은 꽃망울이 한 수 우위를 점유하지만, 식재료 본연의 맛은 머위 잎을 따라오지 못한다. 

튀김에도 찍먹파와 부먹파가 있으려나? 처음에는 폰즈에 살짝 찍어서 먹어 보았지만, 혹시 몰라 튀김옷에 소스를 부어 촉촉하게 적셔 먹었더니, 만족 만족 이런 대만족이 없다. 머위꽃과 머위 잎 튀김은 튀김류임에도 아이들보다는 어른들만 홀릴 '깊고 성숙된 맛'이다.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튀김을 먹어 치우고 덩그러니 남은 빈 그릇만 쳐다보게 되었다. 채취에서 튀기는 과정까지 뭐 하나 건성으로 한 게 없었는데, 허무하게 눈 깜짝할 새에 바닥을 드러냈다.

짧게 지나갈 봄이다.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만 반갑게 재회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 계절이 주는 감사함을 잘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음미하고 즐기려 한다.
#머위꽃 #꽃이 되다 #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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