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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난 우리집 김밥에는 '이게' 없습니다

[봄의 맛] 소박한 재료 넣은 김밥... 아이들과 자유롭게 떠날 소풍을 기다리며

등록 2021.04.06 07:24수정 2021.04.06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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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절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봄이라고 대답한다. 생명이 움트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따스한 햇살에 마음이 간지러워지는 갬성... 때문은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추위에 더 취약해진 몸뚱이라 겨우내 한몸이 됐던 온수매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온도가 몹시 고마워서다. 나이가 드니 너무 더운 것도 너무 추운 것도 너무 스산한 것도 싫다. 적당한 따스함이 좋다.   

봄이 오면 나는 오후의 배고픈 고양이처럼 길을 나선다. 낯선 동네도 걷고, 익숙한 카페에서 까무룩 졸기도 한다. 그리고 소풍을 간다. 소풍. 그 단어가 주는 캐발랄한 분위기가 나의 오장육부를 늘 들뜨게 한다.

소풍이라고 뭐 대단한 건 아니다. 놀이터나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12년의 봄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이라면 소풍일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많이 만든 음식이... 맞다. 김밥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만든 김밥의 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 한 바퀴를 감싸고도 남을 정도이지 않을까. 요리 '똥손'인 내가 (기분으로 치면) 김밥 달인이 될 정도니 말이다.

우리집 김밥의 비결
 

왼쪽/ 아이를 위한 씻은김치 김밥... 오른쪽/ 나를 위한 단무지김밥 생각난 김에 휘리릭 말아본 김밥. 밖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지만 그 기분이라도 내보려 도시락에 싸보았다. ⓒ 조영지


우리 아이들의 김밥 취향은 좀 독특하다. 단무지를 안 넣는다. 김밥의 절대 생명은 단무지 아닌가. 아이들은 단무지 대신 깨끗이 씻은 김치를 넣어야 흡족해 한다. 어릴 때 김치를 잘 먹이려 김밥에 넣어 준 것이 아이들에게 익숙한 맛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근처 김밥가게에서 간편히 사먹을 수도 없다. 무조건 내가 말아야만 한다. 역시 한결같이 엄마 편한 걸 못 보는 녀석들이다.

번거러움의 대명사인 김밥이지만 나는 번거롭지 않은 김밥을 추구한다. 속재료는 최대한 심플하게. 단무지(나님을 위한 것), 햄, 맛살, 계란, 씻은 김치.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김밥의 정석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부수적인 재료를 첨가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참치김밥, 샐러드김밥, 삼겹살김밥, 이런 것은 요리 음식이지 김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내 기준, 근거 없음).

나는 김밥 마니아다. 뷔페집에 가도 김밥을 먹는다. 미식가 친구들이 기함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기함을 한다. '왜 이 맛을 몰라~' 하면서 말이다. 우선 크기부터 맘에 든다. 입을 우악스럽게 벌리지 않고 고상하게 쏘옥~ 밀어넣어 오물오물 씹을 수 있는 사이즈의 격조. 보통 음식들은 한 입에 한두 가지 정도의 맛을 느끼지만 김밥의 경우 입 안에서 놀이공원급 즐거움이 '파파방' 터진다.  
 

번거롭지 않은 김밥 재료 꼭 필요한 것만. 계란부침, 햄, 맛살, 씻은 김치. 이 이상은 무리다. ⓒ 조영지


아삭아삭 씹히는 단무지의 상큼함과 맛살과 햄의 조미된 맛, 이때 계란까지 합세해 고소함이 느껴지는 순간 참기름의 미끈한 향이 사르르 올라오면 행복도 함께 밀려온다. 이때 시원한 탄산음료 한 잔은 화룡점정!

특히 봄날 야외에서 먹는 김밥은 천상의 맛이다. 등은 뜨뜻해 오지, 한참 바깥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달래고 구슬리느라 진 뺄 필요도 없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따뜻하고 몽글한 공기의 감촉... 야외에서 먹는 진정한 외식의 기쁨. 나는 이것이야말로 바로 '봄의 맛'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 맛에 빠져 나는 봄이 되면 쉬지 않고 김밥을 말아댔다. 내가 김밥을 말면 소풍행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도 은근 김밥 마는 날을 기다렸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댔나? 거기에 하나 더! 김밥을 만드는 일도 숨길 수 없다.

고슬고슬 갓 지은 밥에 시골표 찐 참기름을 아낌 없이 후루룩 한두바퀴 둘러 섞고 있으면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이도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김밥 마는 날임을 짐작하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엄마, 김밥 말고 있을 줄 알았어" 하고. 개코 인증.

소풍은 혼자 가면 재미 없으니까 친구를 초빙하기도 한다. 넉넉하게 싼 김밥을 들고 도란도란 나눠먹으면 꼭 차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소풍 기분 제대로다. 김밥도 한 철이다. 여름이 되면 금세 쉬고, 가을이 되면 일교차에 움츠린 채로 먹다 체할 수도 있다. 겨울은 바깥 나들이 자체가 힘들다. 그러니 부지런히 김밥을 말아 소풍을 가야한다. 짧은 봄을 아낌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봄이 왔다. 김밥이 말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소풍은 꿈도 못꾼다. 아이들도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생각난 김에 오늘은 김밥을 말아볼까?  

김밥발 없이도 도르르 잘 마는 내가 신기하다. 김밥 끝부분이 잘 안 달라 붙을 땐 물을 살짝 묻혀 굴려주면 찰싹 붙는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으려나. 김밥은 칼이 전부라고 누가 그랬더라? 아무리 잘 만 김밥도 무딘 칼로는 망한다. 쓱쓱 칼 가는 기계에 넣었다 뺀 뒤 김밥을 숭숭 자른다.

소풍 도시락에 담아 실내에서 먹는 김밥
 

봄 소풍 시절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봄날. 실컷 놀고 허기질때 쯤 근처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김밥을 먹으면 천상의 맛이었다. 아이들은 지금도 이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 조영지


기분이라도 낼까 싶어 오늘은 그릇이 아닌 소풍 도시락에 담는다. 도시락에 담으며 떠오른 김밥 원칙 하나 더! 김밥은 반드시 납작한 면을 위로 향하게 데코한다. 희한하게 가게에서 파는 김밥은 모두 잘라진 형태 그대로다. 어쩐지 그 모양새는 소풍 김밥에 적격하지 않다. 왠지 짠한 모양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은박지에 말린 그 형태의 김밥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나는 자고로 소풍 김밥은 속재료의 색과 밥알의 윤기가 잘 보이도록 납작한 면을 위로 향하게 한 뒤 참깨를 솔솔 뿌린 김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창가 앞에 앉아 우그적 우그적 김밥을 씹는다. 하지만 야외에서 먹는 김밥 맛은 영 나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이 더 잘안다.

"엄마, 김밥은 밖에서 먹어야 제 맛인데? 그치?"
"그러게... 김밥은 자고로 소풍이지."
"아~ 빨리 김밥 싸서 소풍가고 싶다아~"


아이들의 푸념과 나의 한숨이 추가된 김밥을 삼킨다. 요란하면서도 따뜻하고 행복했던 지난 봄날의 김밥 맛을 떠올리며...
 

그리운 봄 소풍 시절 아이와 매일 김밥 사서 놀이터, 공원을 뛰어다니던 시절.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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