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마을 플랜카드2 ⓒ 차노휘
걷기를 마치고 숙소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제2공항 찬반 여부를 화제에 올린다. 어떤 분은 당사자는 말을 아끼는데 외부인이 더 난리다고 하는가 하면, 자연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도로가 외길인 하와이에는 더 사람들이 몰린다며 제주도의 지나친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표한 이도 있었다.
▲ 강정마을 플랜카드 ⓒ 차노휘
제7코스에 있는 강정마을에 들어서면 범상치 않은 입구와 마주한다.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찬(찼을) 문구들이 길거리 건물을 온통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돌개 주차장 너머 '폭풍의 언덕'에서 마셨던 달콤한 커피 맛을 떠올릴 수도, 외돌개를 바라보며 걸었던 아찔한 해안절벽 산책로의 아름다움마저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달리 미군 해군 기지 반대 피켓이 많이 사라졌다. 걸으면서 종종 접했던 제2공항 찬반 벽보, 대자보에 적힌 문구와 강정마을 플래카드 문구를 비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공항 두 개 지엉 뭐할거라? 지금 공항 고쳐써도 충분!'
5년 넘게 끌어온 제주 제2공항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 진행한 제주도민 찬반 여론조사에서, 제주도민은 '반대'가 우세했고 성산읍 주민은 '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현재의 제주 행정 당국은 건설을 밀고 가기로 했다고 한다.
어느 택시 기사는 강정마을처럼 성산읍 주민들도 보상 문제를 놓고 시끄러울 거라고 했다. 10년 전 강정 마을도 보상 문제 등을 놓고 주민들이 갈라지면서 마을공동체가 무너진 사례를 들었다. 제주도의 행정 당국은 "이제는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에 마침표를 찍자"라고 했지만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닌가 싶다.
▲ 강정천(江汀川) ⓒ 차노휘
제7코스 종점 월평(月坪洞) 아왜낭목 쉼터를 마지막으로 나는 제주도에서 철수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인지 의외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 코스는 앞뒤로 걷는 사람이 보일 정도였다.
곧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했다. 궂은 날씨를 경험했던 나는 강행을 하기 보다는 잠시 후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제7-1코스를 걷기 위해 다시 제주올레여행자 센터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안심 지킴이 스마트워치
▲ 외돌개 ⓒ 차노휘
서귀포 올레 여행자 센터에서 시작한 7-1코스(역방향)는 고근산 정상과 그 아래 엉또 폭포, 엉또 폭포 바로 옆에 있는 무인 카페를 제외하고는 시멘트나 아스팔트길이 대부분이다. 밋밋한 이 길에서도 어김없이 해프닝이 벌어졌다. 스마트워치 때문이었다.
두 번째 걷기를 시작한 날짜는 2월 5일. 전날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관광 안내 센터에서 올레길 혼자 걷는 사람을 위한 '안심지킴이 스마트 워치'를 빌렸다. 보증금 5만 원, 반납하면 도로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없던 서비스였기에 이용해보기로 했다.
걸매생태공원, 봉림사를 지나 3km를 더 간 '제남 아동 복지센터' 앞을 지날 때였다. 제주도 지역 번호가 찍힌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모 파출소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웬 전화? 알고 보니 '안심지킴이 갤럭시 워치'가 자동으로 위험하다며(?) 112로 신호를 보낸 거였다.
112 센터는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안내를 했던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마트워치는 예민했다. 손목에서 시계 위치를 다시 고정하기 위해 살짝 만졌을 때, 왼쪽 점퍼 호주머니에 넣었던 휴대전화를 꺼내고 다시 넣었을 때, 시계를 차고 있는 손목을 움직였을 때 등. 버튼을 건드릴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양치기 소년이 되기 싫은 나는 사실대로 말하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2분이 지나자 순찰차가 턱, 하니 내 옆에 정차하는 것이 아닌가. 아까 전화 통화했을 때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눌러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 그래서 또 출동? 맞았다.
다시 이러이러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라는 서두로 시작해서 전화 통화했던 것보다 더 죄송한 마음으로 실수를 인정했다. 친절한 경찰관 두 분, 괜찮다고 하면서도 내 인적 사항을 다 적어간다.
▲ 대륜동 해안올레길 우체통 ⓒ 차노휘
긴장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격했다. 신속하게 출동했기 때문이다. 실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든든한 보디가드가 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오작동에도 매번 출동한다면 행정력 낭비가 아닌가. 그 주범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전원을 꺼버렸다. 언제 다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호출할지 몰라서였다.
걷기의 염원
호젓함을 즐기면서 나는 걷고 걸어서는 동백과 천연난대림이 우거져 있는 악근천(岳近川) 상류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그곳에는 기암절벽과 울창한 천연난대림에 가려진 엉또폭포가 있었다. 비가 올 때면 폭포가 되지만 말짱한 날은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는다.
▲ 돌길 ⓒ 차노휘
나는 밋밋한 엉또폭포를 흘깃하고는 데크 계단을 올라 무인카페로 들어섰다. 내 목적지는 낡고 작은 이곳 무인 카페였다. 여행객들의 마음이 온통 벽 가득 붙어 있는 포스트잇.
오래전 이곳에 나의 염원을 적어 놓은 적이 있다. 수많은 포스트잇이 가려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새로운 소망들을 써 내려갔다. 걷는 동안 무사하기를, 그리고 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안녕하기를… 드디어 본격적인 제2올레 걷기가 시작된 것이다.
▲ 엉또폭포 옆 무인카페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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