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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이 분명한 가해자

[서평] 분단적폐에 희생된 '순이 삼촌'을 기리며

등록 2021.04.03 18:11수정 2021.04.0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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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촌’ 문학비가 있는 옴팡밭. ⓒ 김병기

 
2021년도 4분의 1이 훌쩍 지나 어느덧 '제주 4.3' 73주기를 앞두고 있다. 제주 4.3 하면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이 지휘한 군경이 최소 3만 명이 넘는 제주도 민중들을 살해했다는 역사에서 글쓴이는 집단학살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예전에는 그저 제주도를 유명한 관광지로만 알았다. 6번 남짓 가본 제주도, 그때마다 칼칼한 갈치조림, 만장굴,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 등 멋진 풍광에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대학생 때 역사기행으로 마주친 진실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제주도는 전역이 말 그대로 학살터였다. 4.3 당시 미군정의 지휘를 받은 군경이 해안가에서 민중을 대량 학살했고, 다음해에는 시신들의 살점과 피를 먹고 자란 갈치가 해안가에 넘쳐났다고 했다. 

올해 4.3이 다가오고 이런저런 고민이 들 때쯤, 소설집 <순이 삼촌>을 만났다. 4.3을 직접 겪은 당사자가 전하는 생생한 묘사와 절규, 거기에 담긴 엄청난 고통을 마주치며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먹먹함이 몰려왔다. 

학살터 제주의 비극이 서린 이야기들

해방 이후 제주도는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남한 단독 국회의원 선거 시도가 투표율 미달로 유일하게 무산될 정도로 도민의 자주통일 열망이 뜨거운 곳이었다. 제주시의 중심인 관덕정 앞에서는 미군정에 반대해 경찰, 공무원도 함께한 도민 총파업도 열띠게 일어났다.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자주와 통일을 바라며 나선 제주도민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한 죄, 한반도의 분단을 반대한 죄로 빨갱이로 내몰려 학살당했다. 1954년까지 6년 동안이나 제주 인구 10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잇따라 비참하게 숨져갔다. 

4.3은 1948년 4월 3일에 시작해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는 끝이 났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완전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1948년 당시 7살이었던 현기영 작가는 "4.3은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라고 전한다.

현기영 작가는 1978년, 4.3을 직접 주제로 다룬 중편소설  <순이 삼촌>을 냈다. 소설 속 군인이 도민을 학살하는 장면에 당황한 박정희 정권 보안사는 현기영 작가를 잡아들여 모질게 고문했다. 금서로 지정된 중편소설 <순이 삼촌>의 봉인이 풀린 건 그로부터 14년 뒤였다.

2015년 창비에서 출판된 <순이 삼촌(현기영 중단편전집1)>에서는 큰 줄기인 <순이 삼촌>를 비롯해 제주 민중의 삶과 떼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야기는 소드방놀이 · 순이 삼촌 · 도령마루의 까마귀 · 해룡 이야기 · 아내와 개오동 · 꽃샘바람 · 초혼굿 · 동냥꾼 · 겨울 앞에서 · 아버지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서는 4.3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도,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모두 현기영 작가가 어린 시절 체험한 4.3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장을 가장 처음 열어젖히는, 조선 후기 위정자의 부정부패와 맞물린 제주를 다룬 <소드방놀이>부터 적나라한 광경이 펼쳐진다.

소드방은 솥뚜껑의 제주말로, 소드방놀이란 솥뚜껑놀이를 뜻한다. 백성들이 힘들게 생산한 쌀을 빼돌린 사또를 대신해 죽을 위기에 처한 아전, 지독한 굶주림으로 극단적 생존 위기에 내몰린 민중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사또는 아전에게는 사형당하는 척 연기(놀이)를 명하고, 관노를 시켜 민중에게는 신심 쓰듯 쌀과 미역, 간장이 섞여 끓어오르는 죽이 담긴 솥을 준비한다. 

이야기는 민중이 민중과 정치권력 사이에 놓인, 어중간한 아전을 처단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결정적 국면에서 민중의 분노가 근본 원인인 위정자(사또)를 향하지 않는다. '민중의 폭동'을 두려워하던 사또는 "저 실성한 것들이 그만하면 실컷 화풀이도 됐을 테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안도한다. 이는 소설 속에서 조선 전역에서 민란이 거세게 일어난다고 묘사되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민중이 저항하지 '못'하고 나쁜 권력에 의해 피해당하는 장면은 소드방놀이, 순이 삼촌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에서도 공통되게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소설의 묘사가 몹시 의아하게 느껴진다. 해방 직후 친일파와 외세 없는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바라며 열띠게 행동한 제주도민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4.3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4.3으로 인한 공포와 상처가 무척 컸던 것이다.

양민학살 논란 누가 '좋은 백성'인가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포털 다음에서 4.3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말.


4.3 하면 자주 이야기되는 건 이른바 양민(良民·좋은 백성) 학살 논란이다. 군경이 불순한 빨갱이=폭도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순박한 백성들(양민)도 학살했다는 것. 그런데 이것이 과연 합당한 표현일까?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한다."
-1948년 10월 17일 미군정이 제주에 내린 포고문


과연 해안 가까이 가지 않은 사람들은 안전했을까? 다시 <순이 삼촌> 속 장면을 보자. 미군정이 어른 남성들을 콕 짚어 폭도=빨갱이로 지목해 해안가로 몰고 가 집단학살했다. 마을은 어른 남성이 아예 사라진 무남(無男)촌이 됐다. 미군정이 지휘하는 군경과 서북청년회(서청)는 어른 남성들을 빨갱이로 지목, 해안선으로 일부러 끌어내 대량 학살했다. 성별을 나누지 않고 마을과 마을사람을 통째로 초토화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애초 양민, 폭도를 나누는 기준부터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호미 끝에 때때로 흰 잔뼈가 튕겨나오고 녹슨 납탄환이 부딪혔다. 조용한 대낮일수록 콩 볶는 듯한 총소리의 환청은 자주 일어났다. 눈에 띄는 대로 주워냈건만 잔뼈와 납탄환은 삼십년 동안 끊임없이 출토되었다. 그것들을 밭담 밖의 자갈더미 속에다 묻었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순이 삼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문장이다. 순이 삼촌(소설 속 순이 삼촌은 여성, 제주도에서 '삼촌'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주위 친척을 이르는 표현으로 쓰인다)은 4.3 학살 통에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50대가 되도록 그날의 환각과 피해의식에 고통받던 순이 삼촌은 학살터인 고향 밭으로 돌아가 자살한다. 

제주도에서 마주한 친척들은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4.3 이후에 태어났고 순이 삼촌이 왜 자살했는지 몰라 황망한 '나', 학살 당시 끔찍했던 기억들을 털어놓는 사람들, 무심결에 평안도 사투리로 서북청년단의 학살을 부정한 서청 출신 고모부, 이에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큰아버지 등등. 각자의 상황이 다른 만큼 4.3을 생각하는 감정은 차이가 있고 복잡하다.

이런 가운데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면 살아남은 자신들과 조상은 불순하지 않은 양민이라는 호소다. 4.3을 직접 겪지 않았던 '나' 역시 과거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간 뒤, 폭도로 인식되던 제주 사람임을 끝없이 부정하는 인물이다. '나'는 부인에게 제주 출신임을 숨기고 사투리 억양을 없애가며 서울 토박이처럼 보이도록 말 그대로 분투한다. 여기에는 '나는 제주의 폭도가 아닙니다 뭍의 양민입니다'를 합리화하려는 기제가 깔려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당사자도 아닌 글쓴이가 감히 말을 함부로 꺼낼 순 없다는 마음에 조심스럽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소설 바깥, 제주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소설 바깥, 현실로 본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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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소설집 <순이삼촌> 겉그림 ⓒ 창작과비평사

 
"사실 제주에 예술가가 많은 이유도 각자 상처나 아픔을 못 풀어내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해요. 아버지 세대가 겪은 4.3의 트라우마가 자식 세대까지 대물림 되는 일이 다반사고. 정신감정을 받아보면 다들 어느 정도 다 미치지 않았을까...."
-제주 출신 양윤호 영화감독의 말

"내 삶과 떨어뜨려 놓고 멀리서 쳐다보는 4.3은 죽은 4.3이다. 4.3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관람하는 4.3은 생명력을 잃은 4.3이다. 4.3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4.3의 본질과 정면으로 마주하여 '오늘, 나의 삶'으로 끌어올 때 가능하다"
-이영권 제주역사교육연구소 소장
 

현기영 작가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순이 삼촌>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제주도 이야기를 안 쓰고는 한 발짝도 못 나가겠다. 운명처럼 쓰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 "미국 대통령이 사죄해야 한다"라며 미국의 책임을 확고하게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4.3을 두고 서로 간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이라는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데 진실을 이대로 묻어버리자는 얘기일 따름이다.

오늘도 제주도 곳곳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유골이 수없이 묻혀있다. 유족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을 생각하며 통곡하고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제사상이 펼쳐진다. 이를 단순히 비극이라고 이를 수 있을까? 

적어도 가해자를 향한 피해자의 속 시원한 분노 표출이 있어야 한다. 또 분단체제에 기대 권력을 잡고 있는 적폐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 때서야 수많은 순이 삼촌들의 넋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위로받지 않을까. 그래야만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마음과 행동마다 4.3을 '사건', '폭동'이 아닌 학살, 항쟁으로 뿌리내리는 일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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