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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떨어져 죽은 다음날도 작업" 백미터 송전탑의 노동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등록 2021.04.08 15:20수정 2021.04.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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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100m 높이의 송전탑 위에서 작업 중인 송전 전기원들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 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를 구태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 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 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 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아요. 이동 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 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절연체)를 메고 송전탑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 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여있다.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 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잡고 팔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된 상태예요.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 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 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 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 측에서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실정이죠."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 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 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 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이 사라져요."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 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7천~1만 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 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한재영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4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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