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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투기판 된 시흥을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기사공모]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찾아 선택한 공동체 생활

등록 2021.04.12 13:41수정 2021.04.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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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들어가 농사 지으며 살겠다고 했을때, 사람들은 호기심을 보이거나 걱정어린 조언을 했다. 가족은 그럴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콘크리트 도시에서 숨 막힐 것 같은 생활과 돈을 좇는 모험이 불편했던 나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20여년 전 귀농을 결심했지만 구체적으로 그 삶을 그리지는 않았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산골에 들어가서 작은 농사와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농사는 내 삶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글 읽기는 좋아했지만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찾아가려는 노력으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불교귀농학교와 인연이 되었다. 글쓰기는 오마이뉴스 창간과 함께 시민기자로 가입하여 글쓰는 재미에 빠졌다.

그 후로 도시를 떠나지 못했지만 좌충우돌 하면서 농사를 지었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회원 소식지에 10년 넘도록 매달 글을 쓰고 있다. 농사와 글을 쓰는 절반의 꿈은 이뤘지만, 끝없는 소비를 강요하는 도시를 벗어날 결심은 쉽지 않았다. 

소작으로 농사를 지었던 곳이 땅 투기판이 된 경기도 시흥이었다. 농사를 짓던 농장은 몇 년 전부터 투기 바람이 불면서 여러 사람에게 쪼개기로 팔렸다. 종교인부터 직장인까지 개발보상금을 노린 농지를 매입하여 나무를 심거나 농사하우스를 지어 놓고 개발 확정 발표만을 기다렸다.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농사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고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농촌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인드라망의 인연이 공동체로


지난 2월에 옷가지 몇 개만 챙긴 배낭을 메고 전북 남원의 실상사로 내려왔다. 절에서 생활하는 공동체를 알아가는 몇 달간의 탐색 기간을 지낸 후에 활동가로 불리는 식구가 되는 과정을 하기로 했다. 공동체는 여러 개의 영역으로 나눠져 있고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수행도 한다. 나는 공동체의 식량 자급을 우선하는 논과 밭농사를 짓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었던 화림원을 공동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 오창균

 
공동체 식구들은 절 안과 밖의 숙소에서 또는 마을의 집에서 지낸다. 나는 절 밖의 숙소 화림원에서 여러 명의 식구들과 숙식을 하며, 1인1실의 방에서 지내고 있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었던 화림원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밤에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무리를 보는 것이 신기했지만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아침이 밝아오는 여명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알람처럼 같은 시간에 울렸고, 공동체와 자연속에서 지내는 것에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생활용수로 쓰고, 생태화장실에서 나오는 거름은 농사에 사용한다. 두 달간의 공동체생활은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것처럼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악숙해졌다. 20대부터 50대의 세대 차이는 있을지라도, 단순소박한 삶을 실천하려는 공동체 의식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느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한다는 것은 다양한 취향의 문화를 공유하는 즐거움도 있다. 처음으로 접해 본 음식과 음악이 있고, 자기 삶에 대한 생각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 삶을 충만하게 한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지켜야 할 약속같은 의무와 권리도 있고 자유도 있지만 여기서 느끼는 것은 평등이다. 그 무엇으로도 차별하지 않고 함께 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공동체라는 생각이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것. 다양한 취향의 문화를 공유하는 즐거움도 있다 ⓒ 오창균

   

빔프로젝터와 탑차 트럭을 화면으로 음악을 듣는다. ⓒ 오창균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

매주 수요일 집중수행의 날은 절의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오전은 스님들과 공부를 하고, 오후는 울력에 참여한다.

일손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함께 일하는 것도 공동체에서는 수행이다. 다른 영역보다 농사를 짓는 농장에서 울력을 하는 일이 많고, 거리상 가까운 영역이 아니면 자주 만날 수 없는 식구들을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귀농학교에서 배움을 할 때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울림을 준 도법스님을 농장 울력때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묵언으로 농사일을 수행하는 스님들을 보는 것도 깨달음의 공부가 된다.
 

농장울력 농사일은 공동체에서 수행이다. ⓒ 오창균

 
숙소 화림원에서 생활하는 식구들도 매주 자치회의를 열어서 한 주간의 생활에 대한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제기된 안건에 대한 회의를 한다. 생활공간의 청소와 자급하는 텃밭 농사도 아침 울력으로 모두 참여한다. 공동체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마음과 힘을 모으는 일에 함께 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을 때 안정적이다.

실상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것에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공동체를 잘 알지도 못하는 막연한 어떤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고,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에 부담도 있었다.

나 홀로 사는 귀농에 대한 항상 생각했지만, 마음이 여기로 움직였고 인드라망의 인연이 공동체로 연결되는 운명 같았다. 공동체의 영역에서 마주치는 마음을 깨우는 글귀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임을 이제 알았네 그대가 나임을."
"홀로도 빛나고 함께도 빛나라."
덧붙이는 글 기사공모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화림원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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