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명심보감 인문학 필사여행

코로나 시대, 가장 보배롭고 감미로운 여행 '책 필사'

등록 2021.04.13 15:22수정 2021.04.1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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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필사경구 '모든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한다'-안락선생 소강절 ⓒ 박향숙

 
프랑스작가 쥘 베른의 여행과 모험에 대한 열정을 담은 이야기 <80일간의 세계 일주>(1873)는 거의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영어공부를 이야기책으로 시작하는 나만의 교육 방법에서, 학생들의 고전명작 필독서 리스트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비록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독서문화가 빈약한 학교 교육 현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부모에게 자녀들의 학년 수준에 맞게 고전명작을 읽도록 지도하라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것을 밥 먹는 습관처럼 생각하도록 전해주라고 조언한다.

지난 겨울 방학에도 고등학생이 되는 학원생들에게 국영수 과목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전명작을 포함해서 독서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한 지인이 고전명작(청소년 버전의 출판책) 시리즈를 기부했다.

우리 학생들의 봉사활동 중 하나인 '북비지 중고장터'를 통하여 학원생들에게 두 권 이상씩 사서 필독하라고 권고했다. 한 권당 2000원씩 팔린 책은 모두 기부금으로 적립되었다. 나도 역시, 올해 읽을 첫 책으로 고전 '명심보감 인문학'(한정주지음)을 선정하고 지인들과 함께 책 필사를 목표로 세웠다.

책의 구성은 서론을 포함하여 '성찰하는 삶에 대하여' 21편, '지혜로운 삶에 대하여' 21편, '실천하는 삶에 대하여' 27편, '몸아 마음을 다스리는 삶에 대하여' 10편으로, 총 80편이었다. 필사팀에게 어떤 제목으로 유인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바로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바로 그 제목을 변형하여 <80일간의 명심보감 인문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1월 4일부터 필사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필사팀은 작년 10월 한길문고의 지역작가출간회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책을 함께 펴낸 사람들이다. <77세,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숙자님, <우물쭈물 살다보니 마흔> 박효영님, <다시찾은 골목길> 서경숙님, <주방표류기> 배현혜님 그리고 <어부마님 울엄마>를 쓴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인문학여행을 떠났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알았던 표현, 철학자 가브리엘이 말한 '호모비아토르-인간은 여행하는 존재'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 삶의 존재 이유를 알아가는 여행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의 여행은 얼마나 행복한가. 육체적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여행이 힘든 이 시기에, 다른 형태의 여행을 가고 싶었다.

기존의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 중 하나가 필사를 해보라는 것이다. 나도 역시 이 말에 동참하여 이것저것 시도를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책 한 권을 끝까지 필사하기가 어려워 내 입맛에 맞는 글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이 컸다.

학생들에게 수업 중 들려주는 말에서 '자기주도성'이란 말을 참 많이 한다. 사실 나 스스로 가장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인데, 어찌 보면 겉만 전달하는 것 같아 마음에 송곳이 설 때도 많다. 나는 타인과의 약속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어하는, 타인주도성이 강하다. '그나마 약속을 하면 잘 지키려고 노력하니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내심 칭찬한다.

내가 필사한 첫 문장은 '지혜로운 삶에 대하여'의 첫 편이었다.

黃金千兩未爲貴(황금천량 미위귀)요, 得人一語勝千金(득인일어 승천금)이니라.
- 황금 천 냥은 귀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얻는 것이 천금보다 더 가치가 있다. -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얻은 한마디 말이다'란 소제목이 달려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총 79편의 경구를 읽고 필사하면서 지난 3월 20일, 80일간의 여행은 종착지에 점을 찍었다.

경구를 읽을 때마다, 돋보기가 눈에 맞지 않거나,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서, 또 해설서의 길이가 길어서 매일매일 필사를 한다는 것이 제법 힘들었다. 또 어느 날은 집안사가 있고, 어느 날은 몸이 찌뿌둥하고, 어느 날은 수업이 늦게 끝나는 등등의 핑계 역시 많았다.

그러나 매일 필사를 끝까지 이끌어준 위대한 힘이 있었으니 바로 지인들의 동행과 독려였다. 그중에서 내 엄마의 연배와 같은 이숙자 선생님의 온전한 손 필기체는 힘이 넘치고, 기량이 돋보여서 필사를 올릴 때마다, 유심히 한 글자 한 글자를 보게 되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망막 수술까지 하신 눈으로 어떻게 그 긴 여행을 마치셨는지 존경이 절로 일었다.

명심보감 여행을 하면서 나의 또 다른 목표는 경구에 맞는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최소 절반 40여 개의 에세이는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목표는 절반에도 채 도달하지 못했다.

글쓰기라는 것이 미루면 미룰수록 사막의 모래처럼 생각이 흩어져서 써지질 않고, 쓰면 쓸수록 고여드는 우물샘의 맑고 맛있는 물이 되는 줄 아는데도 말이다. 매일 필사라는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어 경구를 읽고 쓰기에 바빠서 막상 나의 마음을 담은 에세이는 나중에 써야지 하며 미룬 것이 넘지 못할 큰 언덕이 된 꼴이다. 그래도 필사라는 한가지 목표에 도달한 것에 만족하고 있다.

<명심보감 인문학>의 작가는 말했다. "동양고전의 도서관과 같다는 명심보감에는 동양인문학의 필독서라는 고전이 거의 들어있고, 철학, 역사, 문학을 중심으로 주요 학자와 쌍, 역사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인간의 학문이 인문학이라면,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우주, 자연,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밝히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삶에서 동떨어진 고담준론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무수한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담고 있다."

우리 필사팀 5인역시 삶의 현장에서 성찰과 지혜를 담고자 작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사 이치가 그렇듯 씨앗이 있어야 싹도, 꽃도, 열매도, 나무도 있는 법이다. 5인이 뿌린 고전 인문학 필사의 씨는 이제 곧 싹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맛있는 열매를 가진 나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는 거름, 그것도 수천년 동안 뿌리내린 말씨들이 모여 만든 '고전책거름'이 뿌려졌으니 분명 앞으로 살아갈 삶에 광택이 있을 것이다.

<80일간의 세계여행>에서 주인공인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자기 재산 절반을 거는 모험으로 여행을 했다. 우리 필사팀은 운좋게도 코로나 시대에 맞는 여행의 기쁨을 누렸다. 물질적 비용이라면, 책 한 권, 노트 한 권, 연필 두 자루, 매일 마시는 차 한 잔 정도였을까.

코로나 이전에는 세상을 본다고 일부러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공항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래도 뭔가 허전하여 늘 새로운 방법을 찾곤 했다. 그러나 <80일간의 명심보감 인문여행> 필사는 셰계를 관통하는 시간의 세상, 도저히 가볼 수 없는 과거와 미래의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내 몸과 정신에 맑은 향기를 채워주었다. 우리 모두에게 명심보감,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 하나가 들어앉았으니 감사할 뿐이다.
#필사의힘 #명심보감인문학 #군산지역작가출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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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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