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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탈원전 정책, 어디로 증발했나?

[아주 정치적인 탈핵 ②]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한계

등록 2021.04.14 17:12수정 2021.04.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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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10년, '탈핵’은 왜 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졌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탈원전'에서 '에너지전환'으로 노선을 바꾼 문재인 정부와 그 과정에서 부침을 겪은 국내 탈핵운동, 올해 초 보수진영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정쟁화한 이유와 끝없는 원전 가짜뉴스까지, 아주 정치적인 의제로서 한국 탈핵의 현주소를 살펴본다.[기자말]
"촛불 끄고 원전 켜자."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종종 등장하는 피켓 구호다. '촛불항쟁으로 집권한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잘못된 정책을 펴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촛불 정도밖에 안 되는 재생가능 에너지는 집어치우고 다시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두고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서 원전은 박정희의 업적이고 이를 없애려 하는 것이 민주진보 정부라는 코드도 기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당장 원전을 줄이는 것도 아니고, 실은 2080년대까지 원전 가동을 상정하는 정책이라는 점은 그다지 진지한 논의 주제에 끼지 못한다. 태양광발전을 둘러싼 가짜뉴스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과도하게 정쟁화되어있다. 한편에서는 피켓 문구와 같은 조롱거리로, 다른 한편에서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내용 부실과 의지 부족으로 인한 비판 대상으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이런 결과의 적지 않은 책임이 정부에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와 조건을 확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시점이다. 

촛불정부의 탈원전에 대한 기대와 실망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과감히 시작되었다. 촛불항쟁 국면에서 환경단체와 탈핵운동 일각에서 "탄핵 다음 탈핵"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촛불항쟁의 주된 흐름인 것은 아니었고 조기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 사이에서 두드러진 쟁점도 아니었다. 그러나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불과 한 달 뒤인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 정책을 밝혔으니, 문재인 정부의 거의 가장 처음의 중요한 정책 행보였던 셈이다. 

대통령은 행사 발언을 통해 고리 1호기 정지가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며, 우리 사회가 국가 에너지정책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모아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노후원전 수명 연장 금지와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 강화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및 석탄화력발전 축소 같은 에너지전환 정책의 큰 방향도 발표되었다. 

문 대통령의 발표에 대해 탈핵운동을 위시한 시민사회는 환영했지만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의구심과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7월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발언을 통해 몇 가지를 부연했다. "탈원전은 최소 60년이 걸리는 정책이다. 앞으로 60여 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신고리 5, 6호기 문제는 당초 전면 중단하는 것이 공약이었지만, 이미 공정률이 28%에 달하는 점 등을 고려해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탈원전이 아니더라도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도록 정책 방향이 잡혀있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LNG 발전을 늘려야 하지만 전기 요금이 크게 높아질 정도는 아니다" 등이다. 

이 발언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는데, 즉 탈원전은 당장 원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원전을 유지하면서 관리하는 정책이라는 것, 전기요금 같은 국민을 자극하거나 부담을 줄 수단은 동원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신고리 5, 6호기 중단 문제를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아닌 국민의 의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내용으로도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그다지 급격하거나 전면적인 게 아니라는 점이 이미 당시에 드러났다고 볼 수 있지만, 집권 초반의 인기 속에 탈원전 정책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의 작지만 중요한 디테일이 곧 지뢰로 작용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20일,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공론조사 주요 결과 ⓒ 참여사회

 
쟁점을 회피한 채 봉합된 에너지전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로 사실상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일단락되었다. 시민참여단의 숙의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설명하고 대안을 강구해야 할 일을 시민들에게 경제성과 안전성이라는 기묘한 양자택일을 강요한 꼴이었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탈원전을 기조로 하지만 지금 건설 중인 원전은 지속한다는 절충적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공론화 후속조치와 탈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을 7%에서 2030년에 20%로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지역 산업의 보완 대책으로 원전해체연구소 설립과 해외 원전 수출 적극 지원 등이 포함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서 크게 바뀌거나 추가된 것은 없다. 그리고 '탈원전'이라는 표현은 '에너지전환'으로 교체되었고,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 영광과 경주 등 지역 원전에서의 사건 사고, 송전탑 신규 건설 등 개별 사안을 관리하는 것에 주력하게 되었다. 

결국 에너지전환이 담아야 하는 많은 의제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메시지는 실종된 채 골치 아픈 일들을 다음 정부로 넘기면서 원전 건설과 수출은 계속하는, 사실 탈원전이라 보기에 애매한 탈원전 정책이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쟁과 책임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문 대통령이 천명한 '2050년 탄소중립'과 한국판 그린뉴딜은 에너지전환과 수요 관리에 관한 요소들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책들이지만, 여기서 원전의 위상이나 비중 그리고 에너지 요금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이러한 책임 회피가 에너지전환 정책의 실행 동력마저 잃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20년 11월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모습 ⓒ 청와대

 
대통령 개인의 의지와 선언에 기댄 정책의 한계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구조적으로 취약했고 불완전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대통령 개인의 의지와 선언에 기댄 탈원전 정책이라는 한계가 컸다. 여당과 청와대에서 탈원전에 확신을 가지고 뒷받침하지 못했고, 정부가 택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라는 우회로는 에너지전환을 안착시키기보다 쟁점을 봉합하는 결과를 낳았다. 탈원전에서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명칭을 바꾼 것은 정치적 부담을 회피할 뿐 아니라, 산업 전략으로 후퇴 또는 선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탈원전 정책의 구성과 밟아가야 할 단계도 부실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부 내에서 먼저 가치와 근거를 분명히 하고, 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를 보완하면서 세부 사항을 점검하고 국민에게 설명과 설득하는 노력이 병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언 이후에는 다분히 짜깁기식의 개별 사업과 정책들만이 제출되었고,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전기요금 인상도 없고 산업에도 피해가 없다'는 자승자박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평가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정부들의 과오에 비하면 탈원전으로 발걸음을 뗀 것을 좋게 보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도 거치지 못하고 급하게 들어선 정부, 값싼 에너지에 기반한 경제 성장이라는 관성, 탈원전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압박할 역량이 부족한 사회운동 모두가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은 끝이 아니라 계속되고 논박의 대상이 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라는 점을 확인하고 나름의 아픈 반성을 하는 게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현우 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자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탈원전 #탈핵 #방사능오염수 #에너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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