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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시간을 잡혀 사는 야구팬들 꼭 읽어보세요

[서평] 야구 팬 트위터리안의 야구일기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

등록 2021.04.29 09:06수정 2021.04.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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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딸 작가의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 표지. ⓒ 팩토리나인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가 2019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그럼에도 나는 왜 야구를 볼까>는 매일 오후만 되면 야구장에서, 그리고 TV 앞에서 3시간을 넘게 야구에 달라붙어있는 야구팬들의 '습성'을 정확하게 짚어내며 그들의 가슴을 사무치게 만들었다.

칼럼에는 "야구 커뮤니티마다 '그날의 역적'을 능지처참할 기세로 달려들고, 감독들의 성은 강제로 '돌'로 바뀌며, 늘 하위권에 있는 팀의 팬들은 제발 해체하라고 울부짖는" 내용이 담겼다. 야구팬들이라면 뜨끔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글에는 "야구가 인생을 닮아 좋아한다"는 내용이 담겨 팬들에게 공감을 샀다.


그 칼럼을 닮은 유명 트위터리안이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팬을 자저하는 '쌍딸' 씨. 그가 이름을 알린 이유가 어쩌면 이 칼럼을 닮은 것 같다. 팀이 패배할 때에는 '구단이 당장 해체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것처럼' 이야기하다가도 승리만 거두면 선수를 칭찬하고, 구단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 변덕스러움이 있다. 그런 모습이 재미를 이끈 덕분인지 그는 야구팬을 넘어 트위터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결국 책까지 냈다.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팩토리나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입에서 꺼내봤을 직설적인 표현이 그대로 드러난 책 서문에서는 출판의 영광을 '한국 최고의 적폐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에 돌리고 있다.

10억 대 한국시리즈 우승, 당신의 선택은?

주변을 찾아보면 야구에 정말 인생을 내던진 듯한 친구가 한 명씩은 있다. 야구장에 갔다고 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다시 야구장에 가 있고, 그날 승리와 패배 결과에 따라 입에서 응원하는 야구단에 대한 사랑과 찬미, 그리고 분노와 저주가 엇갈려 나오는 친구 말이다. 

저자의 처지가 그렇다. 당장 저자는 '10억을 줄 테니 받을래,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 시리즈를 우승하게 해줄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삼성의 우승을 바란단다. 본인 스스로도 '이거 완전히 미친 사람 아니냐'면서도,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은 100억을 FA에 쓴들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우주의 기운이 한 데 모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듣다 보면 설득되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못하는 팀이라도 144경기 중에서 3분의 1은 거둔다는 승리 예찬론을 편다. '삼성 라이온즈과 나는 별개'라면서도 이긴 날 잠을 청하려다 보면 은은한 미륵의 미소가 떠오른단다. 이렇듯 야구 이길 때의 기분이 너무 행복하다면서 하는 말이 "야구를 의사의 처방 없이 그냥 막 봐도 되냐는" 것이다.

어쩌면 한 지역을 대표하는 팀이기에 더욱 '진하게' 묻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삼성의 '전설적인 외인' 나바로가 홈런을 치는 것이 버스 안 틀어진 라디오에서 중계되자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는 '간증'은 '서울 사람'에게는 신기하고, 야구가 질 때마다 대구의 유명한 총알택시 '레인보우 택시'를 타고 야구장에 머리를 들이받으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에는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그러던 팀이 2016년 이후로는 한국시리즈는커녕 가을야구에도 가지 못하지만 '한 번의 승리'를 위해 핏대 올리고 열심히 응원한다는 '웃픈' 이야기에는 '우리 팀의 순위가 어디까지 와있나' 하고 다시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게도 된다. 정확히는 남의 팀 이야기인 줄 알고 폈는데 모두 우리 팀 이야기가 되어버려 눈물이 난다.

옴니버스 에피소드가 여러 개 묶여 구성된 책에는 '우리 팀' 이야기가 가득하다. 당장 '내가 점찍은 선수는 잘 될 거'라고 '유망주' 하나를 머릿속에 품은 기억이 있을 테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신문 사회면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말에는 괜히 웃음이 나다가도 사고를 쳤던 '우리 팀 선수'를 생각하고 괜히 서글퍼진다.

한국 프로야구만의 특징인 '응원가' 이야기도 그렇다. 원정 응원단이 와서 트는 남의 팀, 남의 선수 응원가가 귀에 익어 따라 부르다 보면 갑자기 그 선수가 적시타를 치는 경험, 우리 팀 선수 응원가를 부르다 그 선수가 초구 아웃될 때는 아웃에 대한 아쉬움보다 '응원가가 끊긴' 아쉬움이 더 큰 경험까지, 어쩌면 '직관'을 자주 간 내 머릿속을 활자로 새긴 것 같다.

야구 팬이라면 공감이 갈 수밖에 

2021 KBO 시즌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기껏 열심히 야구장에 달려가 열심히 응원했거늘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면 머릿속이 어질어질할 때도 있고, 9회 말 한 점 차 일사 만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때리면서 경기가 종료되면 당장 '이 팀을 응원한 내가 잘못'이라며 울부짖고 싶을 때도 많아진다.

물론 어쩌다 찾아간 야구장에 들어오자마자 선수들이 홈런공장을 가동하면서 큰 점수 차로 이기고, 한 점 차 위기에서 올라온 마무리 투수가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내면 그때만큼은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 들고, 우리 팀의 순위와는 상관없이 내가 응원하는 팀이 KBO에서 최고의 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자는 야구를 통해 '죽지 않고 야구를 보려면 건강을 챙겨야 하기에 영양제를 가득 먹고 있다'는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도리어 뜻밖의 선수가 활약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야구를 통해 '내 인생의 주연은 내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의 감독은 나'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당장 우리도 그런 것만 같다. 야구는 패배하면 지긋지긋해서 '야구장 엎고 농사나 지어라'고 소리치면서도, 승리를 하게 되면 '우리 팀 없이는 못 산다'고 이야기하는 변덕스러운 스포츠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밤 TV를 통해, 그리고 야구장에 가서 야구를 보는 것은 정말 야구야말로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성공과 환희를 반복하는 인생을 닮아서가 아닐까.

야구가 일 년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백마흔 네 경기를 치르면서, 어쩌면 우리의 삶에 생각보다 더욱 가깝게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누구보다도 더욱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고맙다.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

쌍딸 (지은이),
팩토리나인, 2021


#서평 #야구 #책 #야구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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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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