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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에서 시작된 이준익 표 사극의 '무서운' 교훈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

21.04.20 13:36최종업데이트21.04.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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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한국 영화 산업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해다. 먼저 4월에는 '천재'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당시 대표적인 미제사건이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전국 5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살인의 추억>은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웰메이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11월에는 박찬욱 감독의 기대작 <올드보이>가 개봉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안겨준 작품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전국 3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 부진을 만회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역시 200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작품이다.

이런 의미 있는 작품들이 한꺼번에 개봉하면서 한국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한 영화들이 한 해에 대거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은 영화들도 있었다. 삼국시대 황산벌 전투에서 만난 신라군과 백제군이 각각 지역 사투리를 쓴다는 재미 있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준익 감독이 10년 만에 연출한 <황산벌>은 300만에 가까운 흥행수익을 올렸다. ⓒ 씨네월드

 
대한민국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영화 감독

세상의 상업 영화 감독 중 흥행 실패를 전제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은 실패를 경험한다. 봉준호 감독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박찬욱 감독은 복수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복수는 나의 것>에서, '쌍천만' 윤제균 감독은 <낭만자객>에서 실패를 겪었다. 

이처럼 흥행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지만 이준익 감독만큼 파란만장한 행보를 걸어온 감독도 없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다 중퇴한 이준익 감독은 여성지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1993년 어린이 영화 <키드캅>을 연출하며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키드캅>은 김민정, 정태우 등 당시 잘 나가는 아역배우들을 동원해 만들었지만 <나 홀로 집에>의 아류라는 비판에 시달리며 서울 관객 2만이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남겼다.

이후 이준익 감독은 제작자와 수입에 전념하면서 <간첩 리철진>과 <달마야 놀자> 등을 제작했고 감독으로의 재기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03년 10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영화 <황산벌>을 선보였다. 2003년 10월에 개봉한 <황산벌>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사극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전국 277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이 흥행하면서 그동안 영화 수입으로 진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2005년 <왕의 남자>를 통해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약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라디오 스타>마저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음악 3부작으로 이어진 <즐거운 인생>과 <님은 먼 곳에>, 황정민과 차승원이 출연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그리고 감독직을 걸었던 <평양성>마저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하며 상업 영화 감독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꾸준히 이준익 감독의 복귀를 원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는 은퇴를 선언한 지 2년 반 만에 신작 <소원>을 선보이며 전격 컴백했다. 2015년에는 송강호와 유아인을 내세운 <사도>를 통해 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건재를 과시한 이준익 감독은 <동주>, <박열>, <변산> 등 의미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연출하고 있다. 현재는 설경구, 변요한 주연의 <자산어보>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역사 속 전투를 통해 이야기하는 전쟁의 허무함
 

지휘관들이 아무리 멋지게 지휘를 한다 해도 병사들에게 전쟁은 끔찍한 비극일 뿐이다. ⓒ 씨네월드

 
<기황후> <선덕여왕> <태왕사신기> <주몽> 등은 방영 당시 많은 인기를 얻은 사극들도 '고증'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지나친 역사왜곡은 경계해야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작물의 경우엔 만드는 사람의 재해석도 필요한 법이다. 따라서 신라군과 백제군이 사투리를 쓴다는 설정에서 시작한 사극 코미디 <황산벌> 역시 다소의 과장과 재해석은 창작물로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뮤지컬계의 거성'으로 성장한 정성화와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이문식의 욕배틀로 대표되는 사투리 개그는 <황산벌>을 아우르는 최고의 웃음 포인트다. 신라군에서 계백장군(박중훈 분)의 작전을 엿듣고 와 '4번의 거시기와 1번의 머시기'를 놓고 진지한 분석에 들어가는 장면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황산벌>에서 신라 첩자 역을 맡은 배우는 훗날 <도깨비>의 박중헌과 < SKY캐슬 >의 차민혁, <시지프스>의 시그마를 연기한 김병철이다). 

<황산벌>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김유신(정진영 분)과 계백의 인간장기 대결이다. 두 장군은 마주앉아 장기를 두면서 서로의 말을 없앨 때마다 실제로 장기판 무대에 있는 병사들이 서로를 죽인다. 군대에서 지휘관은 병사들을 숫자로 판단해 작전을 세우지만 그들의 명령은 병사들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무서운 교훈이 담긴 장면이다(물론 김유신은 인간장기를 통해 계백과 백제군의 약점을 알아내는 결정적인 성과를 올린다).

김유신과 신라의 장군들이 화랑들을 자살부대로 보내는 장면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서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이라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지만 영화 <황산벌>에서 관창은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화랑의 자살돌격 계획을 세운 김유신조차 "전쟁은 미친 놈들 짓인 기야! 화랑들을 계속 보내! 꽃은 화려할 때 지는 기야"라고 절규하며 이성을 잃는다.

신라군의 진흙 공격으로 무거워진 갑옷을 벗은 백제군은 신라군의 총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큰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계백은 김유신의 눈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최후를 맞는다.

김선아, <황산벌>로 연기에 눈을 뜨다
 

그저 예쁘기만 했던 배우 김선아는 <황산벌>을 통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 씨네월드

 
1993년 <키드캅>으로 데뷔한 이준익 감독은 차기작 <황산벌>을 선보이기까지 무려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그 시간 동안 그저 백수로 지내며 세월만 보낸 것이 아니라 영화사 '씨네월드'의 대표를 역임하며 많은 영화의 수입과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계에서 계속 활동한 이준익 감독은 많은 배우들과 크고 작은 인연을 쌓았고 그 결과는 <황산벌>의 화려한 카메오 군단 출연으로 이어졌다. 

<장군의 아들>에서 각각 하야시와 쌍칼을 연기했던 신현준과 김승우는 백제군의 첩자로 <황산벌> 초반의 웃음을 책임진다. 이들은 현장에 놀러 왔다가 이준익 감독에게 잡혀 밤새도록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의 오프닝을 알리는 고구려, 신라, 백제, 당나라의 '4자회담'에서는 이원종이 연개소문, 오지명이 의자왕을 연기했다. 특히 연개소문은 정통성을 거론하는 당고종에게 "전쟁은 정통성 없는 것들이 정통성 세울라고 하는 기라야!"라며 일침을 가한다.

<황산벌>에 등장하는 카메오들 중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역시 계백의 부인을 연기했던 김선아였다. 계백장군이 처자식을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황산벌 전투에 나섰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부인은 끝까지 자식들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계백의 말에 "호랑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거여"라는 뼈 있는 유언을 남긴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라는 카피로 유명한 화장품 광고로 데뷔한 김선아는 <황산벌>에서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통해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고 <위대한 유산>,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 S다이어리 > 등을 통해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김선아는 2005년 시청률 50% 고지를 돌파한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하며 슈퍼스타로 급부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황산벌 이준익 감독 박중훈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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