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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문턱, 계단 사라진 놀이터... '무장애 도시' 아시나요

자체 조례 제정 등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실현 나선 지역들

등록 2021.04.20 10:12수정 2021.04.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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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무장애 놀이터 ⓒ 월간 옥이네


[관련기사] 이 경사로를 오를 수 있는 사람, 없는 사람 http://omn.kr/1sw0n

발밑 조그만 턱은 누군가에겐 별문제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좌절과 무력감이 된다. 이런 현실이 '정상'이 되는 것은, 힘 있는 다수가 어떤 것이 문제가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안온함이 보장될 때는 오로지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틀 속에 안착한, 그때뿐이다.

이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장애'로 규정된 신체가 아니라 장애물로 가득한 거리가 문제라는 인식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애물' 즉 일상 속 물리적‧인식적 차별요소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편의와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 Free) 도시 조성 조례'를 제정해 정책적 실천을 시도하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 일상 속 배제된 사람들의 안전과 인권이 존중되는 공간은 곧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된다. 장애물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다른 지역 사례를 통해, 충북 옥천에서도 모두를 위한 사회로의 한 발이 하루빨리 내딛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편안할 수 있는 곳

'무장애 도시'란 공공시설‧교통‧정보시스템 등 생활 전 영역에 대한 접근권이 모든 주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곳이다. 출입구의 턱과 훼손된 점자블록이 없는 대신, 휠체어 활동에 좋은 넓은 통로와 적당한 높낮이의 표지판, 장애 유형별 다양한 보조기구가 자연스러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생활환경 전체에 적용한 개념인 셈. 스웨덴, 독일, 일본 등에서는 일찍이 관련 법률을 만들어 일상 속에 정착시켜 왔다.

한국도 지난 2015년 BF 인증(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법을 신설했다. 전문기관에서 무장애 환경 실현 정도(편의시설 설치 등)를 심사한 후, 최우수‧우수‧일반 등급으로 분류해 인증하는 방식이다.


앞선 해외 사례를 토대로 만든 심사 기준은 도로‧공원‧건물 등 시설물 형태별로 나뉜다. 건물의 경우 접근로 및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등 매개 시설부터 출입구‧복도‧경사로‧화장실‧승강기와 같은 시설을 단차, 폭, 바닥 미끄럼 정도, 손잡이나 점자블록 여부 등으로 세부화해 살핀다. 기존 국가‧지자체 신축 공공건물 및 공공이용시설로 한정됐던 의무대상은 올 12월 초부터 국가‧지자체가 지정‧인증‧설치하는 공원과 민간이 신축하는 공공건물 및 공공이용시설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국가 차원을 넘어, 무장애 환경을 뿌리내리기 위한 지역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 움직임이 바로 '무장애 도시 조성 조례'로써 각 지역 상황에 맞는 체계를 구축해 생활 속 장벽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현재 이 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 경기도 수원시 ▲ 경북 문경시 ▲ 경기 가평군 ▲ 경기 양주시 ▲ 경기 포천시 ▲ 전남 여수시 ▲ 서울 성북구 ▲ 광주 북구 ▲ 경남 진주시 총 9곳이 있다.

동네 구석구석 장애물 없는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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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무장애 도시 중앙동 위원회 ⓒ 월간 옥이네

 
그중 경남 진주는 2013년 가장 먼저 조례를 세운 지역이다. 진주시는 구역별 무장애 도시 위원회를 설립해 '문턱 낮추기' 사업, 장애인 주차구역 준수와 같은 일상 캠페인, 무장애 생활환경 교육 등 여러 활동을 추진했다. 문턱 낮추기는 식당‧편의점‧미용실 등 소규모 1층 점포의 경사로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해마다 진행되며, 지난해에만 총 214군데에 설치했다.

진주 무장애 도시 중앙동 위원회는 2015년 결성된 이후 활발하게 활동해온 곳 중 한 곳이다. 중앙동 장애인 당사자와 어르신 등 활동에 제약을 겪는 이들의 의견을 모아 파손된 보도블록 보수, 가정 내 화장실‧계단 손잡이 설치 등 곳곳을 개선해갔다. 별다른 지원이 없던 초기에는 위원회에서 모은 기금으로 직접 재료를 사서 제작한 경사로를 각 가게에 설치하기도 했다.

중앙동 위원회 김성규 회장은 "우리도 기분이 좋고, 상점 주인분들도 좋아하셨다"며 "휠체어나 지팡이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계단 오르기가 힘든데, 경사로 덕분에 편하게 가게를 이용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한편 국가 인증과는 별도로 진주형 BF 인증제도도 따로 설립해 운영 중이다. 진주시가 자체 마련한 인증기준은 도로‧공원‧건축물과 같은 전체 시설물과, 음식점‧편의점처럼 건물 일부만 차지한 시설에 각각 달리 적용된다.

특히 더 엄격한 전체 시설물 기준의 경우 필수/선택 항목을 구분해 경사로 설치‧주출입구 단차 제거 등 기본적 사항은 필수, 자동문 설치‧모든 출입구 단차 제거 등은 선택으로 두었다. 각각 100%/70% 이상 충족해야만 인증이 부여된다. 장애인 당사자가 이용에 실질적 편의를 느낄 수 있도록 한층 촘촘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

하지만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별다른 보상도 없어 참여율이 크게 높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인증 획득 시설은 총 4곳. 하지만 진주형 BF 인증을 받은 시설이 '장벽 없는 진주'에 일정부분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주시 노인장애인과 복지시설팀 김화진 담당자는 "무장애 도시 조성 조례는 지역 장애인 인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단은 해오던 사업을 그대로 추진함과 동시에 장애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하려는 중"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수원‧춘천, 일상의 모든 영역에 무장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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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 비치된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책자 ⓒ 월간 옥이네


수원은 올해 3월 무장애 도시 조성 조례를 제정했지만, 그전부터 장애물 없는 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한 지역 중 하나다. 그동안 수원시 장애인복지과는 다른 부서 사업에도 무장애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서로 조율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을 총괄해 처리할 방법이 없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조례제정을 통해 무장애 도시 조성을 체계화하려는 첫걸음을 뗀 이유다.

수원시의 무장애 도시 정책은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뉜다. 먼저 모두가 편한 ①시설물 접근‧편의시설을 위해 공공기관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 물리적 환경을 개선한다. 편의시설은 설치로만 끝내지 않고 꼼꼼한 사후점검을 통해 지속적 유지‧관리에 힘쓰고 있다.

저상버스 및 특별교통수단을 통해 모두가 편리한 ②교통이동 환경도 구축했다. 현재 일반버스 약 1100대 중 397대의 저상버스를 전체 노선 91개 중 29개 노선으로 운행 중이다. 특별교통수단으로는 휠체어용 특별택시 90대와 비휠체어 탑승 일반택시 45대가 운행된다.

수원도시공사 교통약자지원팀 이경환 담당자는 "장애인 콜택시와 관련해 다른 지역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특별교통수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고 전했다. 전동휠체어용 급속충전기 또한 50여 개 설치해 이용자의 교통편의를 도왔다.

수어통역센터, 보완대체의사소통(AAC, 말·글·몸짓 등을 통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에 대안이 되는 의사소통 수단. 문자→음성 변환 기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보조기기 개발 및 보급을 통해 ③의사소통‧공감 체계도 세워가는 중이다.

수원시에서 보급한 보완대체의사소통 보조기기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그림을 모아둔 스크랩북 형태로 현재 장애인 관련 기관과 주민센터를 비롯한 90여 개의 공공시설에 마련돼 있다. 소리내어 말을 하기가 어려운 장애인 당사자는 이를 통해 원하는 업무, 숫자, O.X, 화폐 단위 등을 나타낸 그림을 지시함으로써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물리적 장벽 제거를 넘어 ④차별인식의 전환을 위해 어린이집‧학교‧기관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펼치거나,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광교호수공원을 산책하는 걷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⑤제도개선을 위한 '인권영향평가'도 진행된다. 수원시인권센터가 맡아 진행하는 이 평가는 공공시설물 건축이나 정책 사업, 조례제정 등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며 장애인 인권에 저해되는 요소를 찾아내 개선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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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무장애 놀이터 ⓒ 월간 옥이네

 
수원의 무장애 놀이터 2곳은 장벽 없는 세상에 대한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좋은 예시다. 수원시 팔달구의 양지말어린이공원과 서호꽃뫼공원에 자리한 무장애 놀이터는 각각 2018년과 2020년 개장했다.

장애 어린이를 포함해 모든 이가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무장애 놀이터에는 턱과 계단이 없다. 휠체어 탑승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트램펄린‧회전 놀이대 등 장벽을 없앤 놀이기구와 함께 경사로‧점자블록‧음성유도기 등 편의시설 또한 설치되어 있다. 양지말어린이공원은 지난 2018년 BF 인증 최우수등급을 획득해 그 기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수원시 장애인복지과 장애인정책팀 김충영 담당자는 "무장애 도시 조성을 위해서는 관에서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주민 스스로 인식하고 생활 속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함께 한다면 더 좋은 무장애 도시가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강원도 춘천시 역시 생활 영역 전반에 무장애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춘천시는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제정한 최초이자 유일한 지자체다. 지난해 9월 제정된 이 조례는, 지역 사업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단체‧전문가로 구성된 인지적 정책 추진 위원회의 자문을 필수로 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적용 분야로는 지역 행사와 공공시설 공사뿐만 아니라, 공공 안내문과 같은 정보소통 등이 있으며, 위원회와 각 사업 관련 부서가 간담회를 열어 사업별 발생할 수 있는 차별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도록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지역사회에 그대로 녹여냄으로써 실질적인 무장애 공간을 확립하기 위해 세워진 정책인 것. 전담 위원회의 존재는 체계적 소통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통을 통한 변화의 예로 보도정비를 들 수 있다. 춘천은 지난해 인도에서 건널목으로 향하는 경사로의 폭을 최대한 넓히는 등 총 250곳의 도로를 정비했으며, 올해도 280곳 정도가 정비될 예정이다. 장애인 당사자와 건설 업체, 도로과가 함께 현장을 다니며 살핀 후 협의한 결과 진행된 공사였다. 춘천시 도로과 이재형 담당자는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행할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도 보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개선해 나가려 한다"고 전했다.

춘천은 장벽 없는 도시 캠페인을 펼쳐 경사로 설치에도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한 봉사단체 기부금으로 번화가인 명동거리에 경사로와 도움 벨 등을 설치했다. 또한 후평동 은하수 거리의 상가 50곳 정도에도 '춘천 시민 천원 나눔'으로 모인 기금을 이용해 경사로를 놓았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무장애 도시로 가는 길을 한층 더 앞당겼던 셈. 올해는 도비와 시비를 합친 예산 5천만 원으로 주요 관광지 주변 상가 70곳에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춘천시 장애인복지과 장애인권익증진팀 엄서희 담당자는 "장애 인지적 정책은 오직 장애인 당사자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약자나 이동에 불편을 겪는 분들을 위한 편의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일반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라며 "정책이 잘 추진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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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장벽없는 도시 조성을 위한 협약식' ⓒ 월간 옥이네

 
옥천에 세워진 장벽은 언제쯤

장애물 없는 환경을 위한 지역의 시도는,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며 모두의 편의가 보장되는 지역사회를 일궈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의 실천을 넘어선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 움직임이 함께할 때 그 변화의 물결이 더욱 빨라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옥천 곳곳의 장벽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장애물 없는 지역사회를 위한 노력을 언제까지나 활동가와 주민의 손에만 맡겨두어도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발 빠른 지역 정책이 제시돼야 할 차례다.

옥천군 장애인복지팀 윤성희 담당자는 "옥천군의 경우 건물을 신·증축할 때 관련 법률에 맞춰 편의시설을 검토하고 BF 인증도 잘 추진하고 있지만, 소규모 점포 대상 경사로 설치 지원은 따로 하고 있지 않다"며 "일단 진천군을 포함해 다른 시군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본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예산이 필요한 부분이고, 어떤 공간을 대상으로 할지 등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하니 당장에 지원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에 추진한다면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편의시설 모니터링을 참고하며 설치가 필요한 곳을 선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옥천군의회 이의순 의원은 "옥천의 약국이나 식당 같은 경우 입구 폭도 좁고 경사로도 없어서 휠체어 사용 장애인 당사자가 출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신축 건물은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지어야 하고, 이전에 지어진 건물도 이동식 경사로 같은 것을 마련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옥천군에서 설치비를 일부 지원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로 역시 정비가 필요"하다며 "점자블록이 신호대기 영역에만 있고 통행하는 인도 위에는 잘 없기에 그것도 보완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삶을 가로막는 장벽을 걷고 모든 주민에게 두 팔 벌려 환대를 건네는 옥천을 상상해본다. 그곳을 향한 한발 한발을 함께 내딛어간다면, 생각보다 금세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월간옥이네 통권 46호(2021년 4월호)
글·사진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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