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나도 다 큰 남자인데, 자꾸 왜 내 걸 만져요"

[도가니는 끝나지 않았다 ①] 반복되는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 "허울뿐인 인권지킴이단"

등록 2021.04.20 17:55수정 2021.04.20 17:55
2
원고료로 응원
2011년,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이른바 '도가니' 사건이 영화를 통해 알려진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일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회에 걸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왜 인권침해가 반복되고 있는지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편집자말]
a

2019년 장수벧엘의집 시민대책위원회가 벧엘의 집 거주 장애인과 함께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벧엘의 집 대책위

 
"얼굴하고 눈에 멍이 들었어요. 목사님이 앉아서 막 때렸어요. 그래서 멍들었어요. 밤에는 자꾸 내 XX를 만졌어요. 계속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울기도 했어요. 나도 다 큰 남자인데, 자꾸 왜 내 걸 만져요. 그런데 왜 그러냐고 말 못 했어요. 무서웠어요."

발달장애인 박아무개(51)씨는 '장수 벧엘 장애인의 집(아래 벧엘의 집)'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사님'을 언급할 때는 '나쁘다'는 말을 반복했다. 박씨가 말하는 목사님은 그가 살았던 장애인 거주시설 '벧엘의 집' 이사장을 뜻한다.

이사장은 박씨를 포함해 15명의 남성 장애인을 2017년부터 2019년 3월까지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사과를 심고 동물을 키우던 농장에서 장애인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고 부패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였다. 벧엘의 집 안에 교회를 지어놓고 거주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 장애수당 중 8900여만 원(2018년 1~12월)을 교회 헌금 명목으로 착취했다. 남성 장애인 4명의 성기를 손으로 잡아당기며 추행하기도 했다.

아프고 다쳐도 말할 사람이 없었다. 박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엄마가 죽어서 장애인 시설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집을 떠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누나가 있었지만 몇 명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가족은 10대 때 안양에서 함께 살았던 엄마뿐이었다. 

박씨는 "벧엘의 집에 오기 전에 다른 시설에도 있었다. 언제 벧엘의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인 50대 박씨가 기억할 수 있는 건 벧엘의 집에서 '오랜 시간 많이 맞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벧엘의 집에서)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맞았다. 아프다고 하면 약만 발라줬다. 아무도 우리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2019년 폐쇄 명령을 받은 벧엘의 집을 떠나 현재 전주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박씨는 "요즘에도 벧엘의 집에 갇혀 있는 꿈을 꾼다"면서 "그럴 때마다 '아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깬다. 무섭다"라고 말했다.

반복 또 반복
 
a

2019년 구성된 장수벧엘의집 시민대책위원회가 벧엘의 집 폐쇄명령을 촉구하며 벧엘의 집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지냈다. 사진은 벧엘의 집에서 대책위 활동가들이 장애인들과 영화를 보는 모습. ⓒ 벧엘의 집 대책위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닫지 않은 산중에 위치한 벧엘의 집에서 벌어진 일들은 2019년 내부직원의 고발이 있기 전까지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2011년 5월 법정 시설로 전환돼 운영된 벧엘의 집은 인권침해 사실이 확인된 2019년 시설 폐쇄 명령을 받아 문을 닫았다.


양혜진 장수벧엘의집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폐쇄된 공간인 벧엘의 집에서 이사장과 그의 아내인 원장은 오랜 시간 왕처럼 군림했다"라고 말했다. 전주지검 남원지청은 2020년 7월 장애인복지법 위반, 업무상 횡령,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이사장과 원장을 불구속기소 했다.

벧엘의 집에서 벌어진 장애인 폭행·강제노역·성추행은 '제2의 도가니, 장수판 도가니'로 불렸다. 2005년부터 5년간 광주 인화학교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폭력 사건, 이른바 '도가니' 사건에서 드러난 잔혹성이 벧엘의 집에서 반복됐다는 뜻이다.

벧엘의 집만이 아니다. 장애인 폭행 등의 인권침해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매년 발생했다. 2011년 도가니 사건이 알려진 후, 장애인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일명 '도가니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비슷한 사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2015년에는 전북 자림원에서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벌어졌고, 2018년에는 울산 울주군에 있는 동향원이 장애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남성 교사가 여성 거주 장애인을 성폭행해 문제가 됐다. 2019년에는 경기 성심동원에서 장애인 학대와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다.

2020년에는 가평 루디아의 집 직원들이 장애인들을 상습 폭행했다. 장애인들의 문제행동을 고친다며 고추냉이 섞인 물을 강제로 먹이거나 대변을 많이 본다는 이유로 밥양을 줄이는 식으로 학대했다.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a

2019년 장수벧엘의집 시민대책위원회가 거주 장애인과 함께 벧엘의 집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벧엘의 집 대책위

 
당시 루디아의 집 특별조사단과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한 조아라 활동가는 "대변을 봐도 기저귀를 바꿔주지 않고, 장애인을 일부러 바닥에 넘어뜨리고 종아리를 때리는 등 알수록 기가 막힌 일들이 루디아의 집에서 벌어졌다"면서 "대부분 중증 장애인이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같은 해 평택 사랑의 집·무주 하은의 집에서 발생한 장애인 폭행 사건도 폭로됐다.

장애인에게 가해진 폭력 등 인권침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문제가 된 장애인거주시설은 모두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장애인복지법 제60조 4에 따라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은 '인권 지킴이단'을 뒀다.

벧엘의 집과 루디아의 집에서도 인권 지킴이단이 매월 시설을 점검했고, 보고서를 썼고, 인권침해 여부를 파악했다. 벧엘의 집에서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박아무개씨는 "가끔 사람들이 시설에 왔는데, 그럴 때마다 원장이 '말 잘해야 한다. 그래야 돈이 잘 나온다'라고 말했다"면서 "사람들이 잘 지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했다"고 말했다.

인권 지킴이단은 멍든 장애인의 눈을 문제 삼기보다 장애인 혼자 넘어지고, 부딪혀 다친 거라는 원장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과거 인권 지킴이단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시설에서 인권 지킴이단은 명목상으로 운영될 뿐이다. 운영 주체가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라면서 "다 시설과 연관된 사람들이라 설사 문제가 있는 듯 보여도 내부회의에서 '잘 운영하라'는 정도로 말하고 끝난다"라고 지적했다.

('도가니는 끝나지 않았다 ②'로 이어집니다.)
#장애인 #도가니 #시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