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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대화? 대화의 그릇을 만들어보세요

[인터뷰] <질문이 있는 교실>의 저자 고현승 선생님

등록 2021.04.20 09:12수정 2021.04.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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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식탁에서 가족 대화를 하는 모습입니다. ⓒ 정진우

 
가족 대화를 꾸준히 하고 있는 한 교사가 있다. 궁금하다. 어떤 사연으로 가족 대화에 뛰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고자 2년간 가족 대화를 지속해서 실천하고 있는 <질문이 있는 교실>(중등편, 경향BP, 전성수․고현승 공저)의 저자 고현승 선생님의 사연을 들어본다.

- 현재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아내는 인천에 위치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초2, 초6 남매를 둔 맞벌이 부부입니다. 사는 곳은 남양주이지만 아내 직장이 인천이어서 아내는 새벽 5시에 출근을 하여 저녁 7시 30분에 귀가하고 있고요. 매일 왕복 120㎞를 오가며 출퇴근을 하고 있어요."

- 2년간 가족 대화를 약속한 시간에 진행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가족 대화란 무엇이고, 현재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가족 대화를 진행하고 계시나요?
"그냥 가족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면 되지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고 할 수 있어요. 어떤 가정에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일 수 있어요. 형제자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때가 가끔 있긴 하지만 식사나 산책,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이와 어른 관계없이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지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문화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가족대화란, 대화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담으려면 그릇이 필요하듯이 가족들의 삶을 담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한 거죠. 여기서 말하는'그릇'은 한 가족이 살아가는 동안 주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자유롭고 편하게 나누는 반복된 경험이에요. 이렇게 그릇이 만들어지면, 이제는 그릇에 음식을 담기만 하면 돼요.

대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녁 식사 후에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약 30~40분 정도 그날 하루 있었던 소소한 경험을 나눕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5분 동안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밤 8시에 대화하기로 했다면, 그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거실에 있는 식탁에 모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시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나서,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가족 대화 시간에는 다른 가족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때 어른들은 조언하고 싶어하지만 가족대화 자리에서는 그저 적절히 리액션만 하면서 경청합니다.

대화의 방법을 캐치볼로도 비유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화도 캐치볼을 하듯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캐치볼을 하면서 상대방과 상황을 신경 쓰듯이 가족 대화를 하면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안내할게요.


1. 가는 공이 좋아야 오는 공이 좋듯이 서로의 말을 주고받아요.
2. 연습을 할수록 캐치볼 실력이 늘어나듯이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야 해요.
3. 둘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해요. 억지로 하면 재미가 없어요.
4. 실수에 대해 구박하거나 윽박지르기보다 격려 받을 때 더 잘돼요.
5. 상대의 수준에 따라 말하는 내용의 난이도와 캐치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어요.
6. 캐치볼 할 때 아이컨택을 하지 않으면 공을 받을 수 없듯이 대화할 때 아이컨택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요.
7. 상대방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는지, 공을 받을 준비가 됐는지 확인해요. 그렇지 않으면 불통이 되거나 공에 맞아 다칠 수 있어요.
8. 캐치볼 할 때 상대방과 떨어진 거리에 따라 던지는 힘을 조절해야 하듯이, 상대방과 정서적 거리,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말하는 내용과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요."

- 가족 대화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몇 년 전부터 학교에서 강의식 방식보다 아이들끼리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는 토론하는 하브루타 방식의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의 저자이며 우리나라에 하브루타 교육 방식을 널리 전하는 데 일조하신 부천대학교 교수였던 고 전성수 교수님과 함께 <질문이 있는 교실>(중등 편)을 2015년에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교육계에 하브루타 교육 바람이 불면서 하브루타 수업 이야기를 전국에 있는 여러 학교 선생님들께 강의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학교 수업 외 강의는 주로 토요일이나 평일 저녁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정에서는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두 아이의 육아 부담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제게 학교 수업이나 강의에서 대화가 있는 하브루타 소통 방식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가정에서는 대화 자체가 없고, 아이들 돌봄은 자신에게 맡긴 채 나 몰라라 하냐고 울면서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가정 안에서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의하고 다니면서 정작 저는 대화가 없는 남편이자 아빠였다는 사실을 아내의 하소연과 눈물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매주 토요일마다 들어왔던 하브루타 강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 하브루타 대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강의 현장에 건강한 대화를 삶으로 실천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정에서부터 실천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가족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몇 년간 하브루타 방식으로 수업을 해 왔기에 가족 대화도 충분히 잘해 낼 것으로 여겼습니다. 비록 8살, 4살로 아이들이 어렸지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족 대화를 하려고 했을 때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학교 수업은 어쨌든 정해진 시간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만 가족 대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가족이 모여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해 본 일이 없는 두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가족끼리 대화를 한다고 하며 아빠가 부르니 얼마나 생뚱맞았겠어요. 아내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아이들도 자유로운 시간이 빼앗긴다고 여겼겠죠. 이 당시 저의 고민은 대화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느냐?'였어요.

4인 가족이 대화를 하기 위해 거실 식탁에 모이는 자체가 어려웠어요. 미리 약속을 하고 모이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아 약속 시각을 정해도 정작 약속 시각이 되면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둥 대화를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렵사리 거실 식탁에 모였다 해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장난만 하는 둘째,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언제 끝내느냐고 묻기부터 하는 첫째, 무얼 말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아내, 몇 차례 가족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처음 가졌던 자신감은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가족 대화를 한답시고 아이들에게 화만 내고, 여러 차례 불러도 오지 않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네요. 가족 대화 이야기는 더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큰아이는 11살, 작은 아이는 7살이 된 2019년이 되었을 때, 아내와 제가 '가족'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3년 전과 가장 다른 상황이었죠. 그때는 저만 혼자 가족 대화를 하려고 했다면 3년 후 지금은 아내도 우리가 가족이 되어 제대로 살아가는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같은 물음표를 가지고 가족 대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자체가 가장 든든했습니다.

아내와 한 팀이 되고 나니 아이들의 반응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물론 3년 전과 비교해 많이 크기도 했지만 7살 막내는 가족 대화를 하기 위해 우리가 거실 식탁에 모였을 때 여전히 장난꾸러기 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이런 반응이 더 이상 가족 대화에 영향을 주진 않았습니다. 아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묻게 된 배경은 단순합니다. 인천에서 남양주까지 고속도로를 1시간 30분 동안 달려 온 퇴근길. 피곤하고 지친 몸이지만, 저녁 식사 후 집안에서 4인 가족이 4인 4색의 스타일로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우리 부부는 우리가 진짜 가족일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방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은 채 편안하게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는 일상을 누리는 저녁과 밤 시간, 이래도 괜찮은지 묻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 아내는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저는 아이들 아침 식사를 챙기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저 역시 출근한 후 우리가 다시 만나는 시간은 늦은 7시 30분 정도였고, 아내가 다음 날 새벽 졸음운전을 하지 않기 위해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고작 2시간 30분, 저녁 식사 후 정리를 하면 약 1시간 30분밖에 없는 가족의 시간에 각자 자기 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에 아내와 저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가족이 소중하다면 가족들의 삶 역시 그렇고, 가족들이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가족 한 사람당 3분 정도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4인 가족이니 약 12분 정도는 거실 식탁에 모여 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거실 가족 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 앞으로 학교에 어떻게 가족 대화를 도입하고 싶나요?
"제가 3년 전에 시도한 가족 대화의 실패한 원인은 남편인 제 주도로 노력했고, 아내에게 그저 따라오면 된다는 식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거실 가족 대화가 2년 동안 지속해서 이어져 온 비결은 부부가 같은 질문을 품고, 그 질문에 대해 함께 답을 찾아갔다는 데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가족으로 함께 한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같은 거주 공간에서 먹고 자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살아갈 때 의미가 살아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가족이면서 실제로 서로가 어떻게 지냈는지 일상을 나누지 못하는 가정, 그러나 그렇게 삶을 나누면서 살고 싶은 가정이 학교에 있다면 저희 가정이 조금 먼저 실천한 이야기, 사례를 나누면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가족 대화를 하고 있는 사모님과 자녀들의 반응과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지인들의 반응이 어떤가요?
"거실 가족 대화를 한 지 만 2년째가 되는 요즘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가족 대화는 식사 후에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가족 대화를 시작하는 시간은 서로의 일정에 따라 조금씩 조율되지만 시간 약속이 정해지면, 9살 막내, 13살 첫째 두 아이가 식탁에 먼저 가서 저희를 부르기까지 합니다.

2년 전 처음 시작할 때 한 사람당 1분씩만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 모두 1분도 길다고 했습니다. 몇 초 말해 놓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하던 아이들은 이제는 5분을 훌쩍 넘겨 추가 시간을 더 달라고 하네요. 네 명이 차례대로 5~10분 정도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짧으면 20분 길면 40분 정도 가족 대화가 진행이 됩니다. 그 이후는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이렇게 집안에서 일정한 시간에 모이고 다시 흩어집니다.

예전에는 저녁 식사 후 거의 바로 흩어진 채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곤 했으나 지금은 보물 같은 각자의 하루 일상을 나누니 가족의 의미가 살아나고, 무엇보다 이렇게 아이들이 십 대, 이십 대를 지나고 저희 부부도 중년, 노년이 되었을 때, 서로의 깊은 삶을 담을 수 있는 우리 가족만의 대화의 그릇이 생길 수 있다는 소망을 품기도 합니다."
#가족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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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안 학교 교사 입니다. 별칭은 복남쌤! 아이들로 인해 마음이 가난해지고, 주린 마음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교사가 되고 싶어 기독교사가 되었고, “기독교사로서 교단 에 서는 것은 아프리카 오지에 해외선교사로 파송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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