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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수업을 하는 교사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의미보단 재미 위주... 돈으로 교사 길들이려는 '촛불 정부'도 문제

등록 2021.04.22 19:14수정 2021.04.2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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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업은 '나쁜' 수업에 가깝다. 초임 시절부터 20년이 넘도록 수업을 잘한다는 동료 교사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배웠지만, 수업 시간 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 연합뉴스

  
"선생님 수업이 제일 재미있어요."

교사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다. 교사에겐 오래전 졸업한 제자가 찾아오는 것 못지않은 최고의 보람이다. 짐짓 태연한 척하며 "실없는 이야기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나무라지만, 아이들 앞에서 만면에 웃음 띤 얼굴을 감추긴 어렵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 초임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경구다. 온갖 잡무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역할 중 수업 준비가 팔 할이라는 이야기다. 아이들로부터 저 말을 듣기 위해 세상의 모든 교사는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민망함과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고백하건대, 재미있는 수업일지는 몰라도, '좋은' 수업이라고 자신할 수 없어서다. '좋은' 수업이란, 교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이끄는 수업이다. 단원마다 학습 목표와 성취 기준이 제시되는 까닭이다.

내 수업은 '나쁜' 수업에 가깝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개방적 태도를 갖추어 나가야 하며, 이는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 역사와 다른 국가, 민족의 역사를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기를 수 있다.'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의 머리말에서 발췌)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국사의 교육 지향점이다. 상급 학교로 진학해 배움이 쌓일수록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계 시민으로서의 개방적 태도가 길러져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 효과가 없는 것이거나 잘못된 교육을 수행한 셈이 된다. 말하자면, '나쁜' 수업을 한 것이다.

아이들 앞에 면구스러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매시간 수업이 끝날 때마다 자문한다. 수업 내용과 방식이 그들의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는지를 반성하려는 것이다. 그저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한 수업이라면, 거기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여선 안 된다.


내 수업은 '나쁜' 수업에 가깝다. 초임 시절부터 20년이 넘도록 수업을 잘한다는 동료 교사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배웠지만, 수업 시간 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해가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났고, 교사로서 열패감도 덩달아 깊어져만 갔다.

늦은 저녁 '인터넷 강의' 앞에서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이 학교만 오면 하나같이 퀭한 눈의 '좀비'로 변했다. 마치 야행성 동물의 그것과 같았다. 수업 중 교실을 돌아다니며 졸거나 자는 아이들을 깨워봐야 채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속절없이 책상 위로 쓰러졌다.

칠판 수업을 벗어나 다양한 기자재를 활용해보기도 하고, 관련 동영상을 가져다 주의를 끌어보려고도 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아이들은 한두 번 신기한 듯 힐끗 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다. 주위에선 암기 과목인 한국사 교과의 한계라고 말해주었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역사 교육의 지향과 성취 기준을 운운하기에는 수업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다. 당장 수업 내내 아이들을 깨어 있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했다. 실력 부족이라 자책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은 나이 50이 넘도록 찾지 못했다.

의미는 사라지고 재미만 추구,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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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인터넷 강의' 앞에서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이 학교만 오면 하나같이 퀭한 눈의 '좀비'로 변했다. 당장 수업 내내 아이들을 깨어있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했다. 실력 부족이라 자책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은 나이 50이 넘도록 찾지 못했다. ⓒ 연합뉴스


그나마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교실에까지 적용되어 모둠학습이 금지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지금은 책상 간 간격도 최대한 넓히도록 하고 있어 짝꿍도 없는 상태다. 하물며 비대면 원격 수업의 경우는 수업의 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남우세스러운 일이 됐다.

내 수업은 두 시간을 블록으로 묶어 퀴즈 게임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시간은 강의 수업이고, 두 번째 시간은 해당 강의 내용을 퀴즈로 복습하는 시간이다. 한 시간에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곧장 이어지는 퀴즈로 인해 첫 시간에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다.

한마디로, 조는 아이가 없도록 하려는 거다. 코로나 이전 모둠별 대항전이었을 때는 서로 역할 분담을 하는 등 첫 시간부터 활동적이었는데, 지금은 개별적으로 문제를 선택해 푸는 방식이라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도 떠들썩한 수업에 졸거나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해 전에는 한 방송사에서 내 수업을 촬영해가기도 했다. 당시 담당 피디는 고등학교 수업 중에, 그것도 한국사 시간에 졸기는커녕 이렇게 활기찬 교실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아이들이 퀴즈를 풀며 손들고 박수 치고 웃고 떠드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 역시 '좋은' 수업이라며 칭찬했지만, 솔직히 그때도 적잖이 민망했다. 졸거나 자는 아이가 없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단답형 퀴즈에 역사 교육의 '의미'를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주장을 전개하거나 반론해보라는 건 퀴즈 문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25개 퀴즈 문항 중에 한두 개는 엉뚱한 내용을 끼워 넣는다.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다. 해당 문제를 뽑은 아이는, 이게 수업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따질 법도 하건만 운이 나쁜 탓이라며 흔쾌히 감점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수업이라기보다 차라리 놀이로 여긴다고나 할까.

교사로서 거듭 곱씹어보게 된다. 역사 교육의 목표라는 '의미'를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아이들이 졸지 않도록 '재미'를 선택한 것을 '좋은' 수업이라고 할 수 없다. 거칠게 말해서, 시청자에게 일회성의 값싼 웃음만 건네는 자극적인 예능 프로그램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비유컨대, 수업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아이들이 종국에 깨달아야 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비판적 책 읽기와 상호 토론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역사 교육의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재미있는 수업에만 매몰된 것 같아 초라하다.

더욱이 내 수업이 다른 동료 교사에게 본의 아닌 폐를 끼쳐 송구한 마음이다. 철딱서니 없는 한 아이가 한 선생님을 찾아가 "한국사 선생님처럼 수업해달라"고 요구했단다. 순간 당황스러웠을 그 동료 교사는, 내가 아는 한, 학교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분이다.

그의 수업은 교과의 성취 기준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을 정도로 계획적이며 내용이 알차고 풍성하다. 일주일 내내 그의 수업만을 기다리는 '찐팬'들이 학급마다 있을 정도다. 비록 아이들 다수의 졸음을 쫓지 못한다고 해서 '나쁜' 수업으로 폄훼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는 경구는 옳다. 하지만 '좋은' 수업과 '나쁜' 수업을 칼로 두부 자르듯 단정할 수는 없다. 교과의 특성마다 다르고, 교사의 스타일마다 다른 게 수업이다. 학급의 분위기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아이들 개개인의 태도와 성향에도 영향을 받는다.

오늘은 아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내일은 본령에 충실하지 못한 수업이라고 손가락질받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면 당연히 '의미'여야만 한다. 이는 교사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퇴근 후 내일 수업에 쓸 퀴즈를 만들고 있다. 오늘도 둘 사이에 고민하느라 노트북 모니터의 커서만 종일 깜빡이고 있다. 지금 내는 퀴즈가 아이들의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에 도무지 보탬이 될 것 같지 않다. 수업 중 졸거나 자는 아이가 없다는 것으로 위안 삼는 나태함이 싫다.

돈으로 평가된 수업

바로 그때, 성과급이 입금됐다는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올해는 'A'등급이란다. 해마다 'B'등급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한 등급이 올랐다. 학교마다 기준이야 마련돼 있지만, 그걸 합당하다고 여기는 교사는 거의 없다. 성과급이 교육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가 없어서다.

참고로, 교사의 성과급은 연수를 몇 시간 받았는지, 상담을 몇 시간 했는지, 수업은 주당 몇 시간인지, 보직 교사인지 등을 정량 평가해서 등급을 S, A, B로 나눠 차등 지급한다. 굳이 A, B, C가 아닌, S, A, B로 명명한 것부터가 교사의 자존감을 해치는 천박한 발상이었다.

정작 문제는 그러한 정량 평가로 과연 교육력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연수와 상담, 수업 시간만으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과거 0교시에다 밤 10시가 넘도록 모두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셈이 된다.

'좋은' 수업과 '나쁜' 수업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듯, 교사의 교육력을 '양'이라는 어설픈 잣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만용을 당장 멈춰야 한다. 성과급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됐지만, 기대효과는커녕 학교 현장에 분란만 커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조차 돈으로 교사를 길들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교원성과급제 #역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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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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