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2 12:13최종 업데이트 21.04.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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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위안부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본안 심리를 거부했다. 이 법원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21일 오전 김복동(고인)·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및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요건 미비'를 이유로 각하했다(이하 '김복동 사건'). 대한민국 법정에 세울 수 없는 피고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1억 원 배상책임을 인정했다(이하 배춘희 사건). 원고만 다를 뿐 피고와 사건 내용이 똑같은 동종 소송에서 3개월 간격으로 상이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배춘희 사건 재판부는 '일본 정부라고 해서 피고 자격을 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위안부들을 강제 동원해 몹쓸 짓을 강요한 행위는 국제법상의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므로 일본 국가도 이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강행규범(절대규범)은 국제법 질서의 본질과 관련된 규범이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53조는 "그 이탈이 허용되지 아니하며 또한 동일한 성질을 가진 일반 국제법의 추후의 규범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는 규범으로, 전체로서의 국제 공동사회가 수락하며 또한 인정하는 규범"이라고 정의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70년 '바르셀로나 전철·전력회사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국가의 의무에는 국제공동체 전체에 대한 것과 특정 타국에 대한 것이 있다'면서 전자는 강행규범이고 후자는 임의규범이라고 정리했다.

배춘희 사건 재판부는 위안부에 대한 성착취 범죄는 그 같은 국제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절대 이탈해서는 안 될 규범으로부터 일본이 이탈했으며, 일본의 범죄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공동체 전체에 대한 범죄라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국가면제 혹은 주권면제를 명분으로 위안부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게 배춘희 사건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재판부는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이번 김복동 사건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 국가를 재판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재판부는 "대한민국 법원이 오로지 국내법 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국가면제를 부정하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국가면제에 대해 취한 태도와 배치되고 국제사회의 질서에 반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상대국과의 외교관계에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이유로 피고에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요건의 불확실성 때문에 향후 국가면제가 부정되는 범위에 관해 상당한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배춘희 사건 재판부가 국제강행규범 위반을 이유로 국가면제를 부정한 것과 달리, 이 재판부는 국제 관행과 한·일 외교관계 등을 이유로 국가면제를 인정해준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 이해 못하는 법원 

하지만 국가는 타국 법정의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국가면제 법리는 절대 불변의 것이 아니다. 국가의 행위 중에서도 일부의 권력적 행위에 대해서만 인정하는 게 보편적 관행이다. 최근에는 심각한 전쟁범죄에 한해서는 아예 배제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군수공장에 강제징용됐지만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한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2004년에 이탈리아 대법원은 '강행규범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 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역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하게 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라고 결정했다. 이런 판례들은 국가면제가 모든 경우에 관철되는 절대불변의 법리가 아님을 보여줄 뿐 아니라, 위안부 착취 같은 인권침해 범죄에서는 부정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김복동 사건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국가를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없으므로 일본 법원에 가서 피해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가 없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일본 법원이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재판해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의 문을 두들기고 있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알려진 일이다.

피해가 발생한 지 벌써 8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일본 정부나 법원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 역시 피해구제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피해자들을 상대로 '여기서는 재판해줄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리는 것은 상당히 몰인정하다고 느끼게 할 만한 일이다.

국가면제 법리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전쟁범죄에 관해서는 배제하는 판례들이 있는데도 재판부는 국가면제 법리나 한일관계 안정성을 거론하면서 할머니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그러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은 몰인정할 뿐 아니라 본질을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 그러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재판부는 "2015년 체결된 한일합의에 의해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 권리구제 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것은 돈 1억 원을 받을 길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 정부도 얼마든지 피해자들에게 금전을 지급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 국민들도 얼마든지 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진짜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다. 80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10억이나 100억도 아니고 그 정도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관심사가 금전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2015년 합의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합의는 피해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해구제의 주체 및 성격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해 12월 28일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한 공동기자회견에서 피해구제 방안을 이렇게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일본 정부의 자금을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자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주체는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이라고 했다. 이 합의에 의해 박근혜 정부가 설치하게 될 화해치유재단이 지급 주체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금전을 지급하지 않고 "나와 관계없이 네가 주는 돈으로 해달라"며 제3자에게 부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피해자가 이 방식에 만족한다면 모르지만, 피해자가 불쾌감을 표시한다면 가해자는 이 방식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억울함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푸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직접 피해를 배상하며 용서를 구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금을 지급하고 사죄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 같은 피해자들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았다.

또 '피해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라고 하지 않고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라고 했다. 이는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지급될 돈이 배상금이 아니라 지원금임을 뜻한다. '배상하는 사람'과 '지원하는 사람'의 도덕적 위치가 상반된다는 점은 굳이 부언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김복동 사건 재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의해 피해구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합의에 의해 '지원'은 가능할 수 있어도 '배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에게 금전이 지급되는 측면만 보고, 금전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지급되는지는 살피지 않은 결과다.

2015년 합의만으로도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는 재판부의 인식은 금전만 지급하면 다 해결되리라는 안일한 사고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목적이 '금전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금전을 받아내는 것'임을 깊이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그래서 이번 판결은 본질을 벗어난 몰인정한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미국의 합작품 

사실, 재판부만 탓할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 및 외교부의 1월 23일 자 입장문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효력을 부활시켜줬기 때문에, 재판부로서도 이런 입장 변화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만 탓할 수도 없다. 한국 정부가 원칙과 상식을 저버리면서까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는 것은, 한일관계 파탄을 막고 대(對)중국 압박 전선을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도 무관치 않다.

한국인들의 아픔과 상처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우선시하며 한일관계에 개입하는 미국, 자국민 피해자들보다는 미국 및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 이런 것들에 더해 김복동 사건 재판부의 안일한 인식이 이처럼 퇴행적인 판결을 낳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인들이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며 램지어의 위안부 논문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법원이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판결 선고 뒤 이용수 할머니가 울먹이며 "황당하다"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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