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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가장 위대"했다는 조선 지도, 왜 '중국제'가 됐나

[강리도로 역사를 다시 쓴 외국 사례들] 세계적 문화유산 강리도에 대한 오해, 그리고 '홀대'

등록 2021.04.27 10:11수정 2021.04.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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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조명 명저 <그림1> 강리도로 역사를 새로 쓰는 사례들 ⓒ 김선흥

남아공 천년프로젝트 2008년 남아공 국회 천년프로젝트 포스터 ⓒ 남아공 국회의 공개자료


세계사적 가치로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중국제로 통용되고 있는데도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어떨까. 

위 두 번째 그림은 지난 2008년 남아공 국회가 유네스코와 제휴하여 진행한 '천년프로젝트' 행사의 포스터이다. 보다시피 두 장의 지도가 담겨 있다. 이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아래 '강리도'라 칭한다)로 1402년 조선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당시의 기준)이다.


지도 원본은 사라지고 전해 오지 않는다. 1402년 본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필사본들이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현재까지 일본에서만 4종이 발견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 소장본(앞으로 '류코쿠본'이라 칭한다)과 나가사키현 소재 혼코지本光寺 소장본이다.

류코쿠본은 세로 150cm, 가로 163cm의 크기로 비단에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1988년 발견된 혼코지본은 세로 220cm, 가로  280cm로 류코쿠본보다 두 배 정도 크고 종이에 그려져 있다. 이 두 지도는 제작 시기가 다르지만 모두 '1402년 강리도'라고 불리운다. 1402년 본을 모본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도의 제작 경위를 여말 선초의 학자 권근이 지도 하단에 적어 놓아서 그 내력을 알 수 있다.

강리도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동서양을 통털어 처음으로 제 모습의 아프리카를 그렸다는 사실에 있다(유사한 것으로 중국의 '대명혼일도'가 있지만 제작 시기가 불분명하다).

아래 두 그림으로 아름다운 강리도의 이미지와 지리적 개념을 파악하도록 하자. 
 

강리도 류코쿠본 ⓒ 공개된 이미지

강리도 개념도 강리도 지리개념 ⓒ 공개된 이미지


세계는 인정하는데... 한국에서 '삭제'된 강리도?

다시 남아공 국회의 포스터로 돌아가자. 남아공 국회가 2002년부터 <천년프로젝트Millenium Project>의 일환으로 추진한 '새로운 정체성 찾기', '미래를 지도로 그리기' 프로그램에 강리도가 핵심 모티브로 활용되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본다.


헌데, 한 가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강리도가 중국제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에서는 국회에 전시되었던 2002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리도가 중국제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계 학계에서는 강리도가 이미 기념비적인 인류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다. 스미소니언은 인류 역사의 대표적인 문화재 1000개를 선정하여 대형 도록을 냈다. 그 가운데 소수의 작품을 '특대'로 다루고 있다. 마그나카르타, 로제타석 등과 함께 강리도가 '특대'에 속한다(<그림 1>에서 맨 앞의 큰 책).

영국 학자가 쓴 역저 <12개의 지도로 본 세계역사>에서도 강리도는 가장 중요한 지도의 하나로 조명되고 있다. 미국에서 출판된 <지도의 역사> 시리즈 아시아편에서는 강리도가 표지 지도로 올라와 있다(<그림 1>에서 정면에 서 있는 책).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국사사전이나 세계사 연표에서 강리도를 찾아볼 수 없다. 석박사 논문 한 편 나온 적이 없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조지형(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지구사연구소장)은 "세계사적으로 이토록 중요한 지도가 왜 국내에서는 홀대받고 있느냐"고 묻고 스스로 답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세계사의 맥락을 잃어버린 우리 역사문화의 고립주의적 태도 때문이다"(동아일보 2011.5. 14 컬럼, "현존 最古 세계지도 '강리도'를 아십니까")

'우리 역사문화의 고립주의적 태도'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류코쿠 대학은 강리도를 지극한 보물 즉 <지보至寶> 1호로 지정하고, 그 세계사적 가치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처럼 여기에는 역사를 바꿔버릴 대발견이 많이 숨어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실로 거대한 <역사 문헌>이라고 말할 수있다." (관련 링크)

강리도는 현재 외국의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학습 과제로 삼고 있다. 미국의 e-learning 회사 사이트 www. coursehero.com에서 'Kangnido'를 검색해보면 어떤 학교에서 어떻게 연구, 학습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강리도가 가장 빛나는 무대는 학술 분야이다. 관심과 전공이 서로 다른 세계인들이 강리도에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고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강리도는 하나이지만 일천 강에 비추는 달처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실로 <월인천강지도月印千江之圖>가 출현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간 글쓴이는 <지도와 인간사> 연재( 2017.11~2019.12)에서 외국의 강리도 연구 성과와 평가를 단편적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무언가 미흡하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강리도가 중국제로 통용되고 있어도 무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나라 밖에서 강리도가 어떻게 조명되고 있으며 또 어떻게 역사를 새로 쓰게하고 있는지 그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는 까닭이 그러하다.      

먼저 미국에서 판을 거듭하고 있는 지리학 서적 하나를 살펴보는 것으로써 여행을 시작한다.
 

지리학 입문 미국의 지리학 서적 표지 ⓒ 공개된 이미지


<Introduction to Geography: People, Places, & Environment >(<지리학 입문> 제 6판: Pearson, 2013, 총 568쪽). 대학교 교재로 호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지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첫 장을 연다. 흥미롭게도 그 첫 머리에서 서양의 세계지도와 대조하면서 강리도를 당대 가장 위대한 지도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아는 한은, 서양의 세계탐험 이전에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지도는 1402년 한국에서 나왔다. (To our knowledge, the greatest world map produced before European exploration was made in Korea in 1402). 이 지도 즉 <강리도>는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의 지식을 결합한데다 중국에 알려진 이슬람 자료를 포섭하였다. 그 결과 동아시아뿐 아니라 인도, 이슬람 세계, 아프리카, 나아가 유럽까지를 망라한다. 그것은 당시 유럽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광범위한 세계의 지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5쪽)

아울러 이 책은 강리도 도판에 이런 설명을 달고 있다.  
 
"콜럼버스가 출항했을 때에 그는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하지만 당시 가장 훌륭한 지도는 그 나라의 왕궁에 걸려 있었다..."
 
왜 이 책은 강리도가 당시 가장 위대한 지도였다고 단정하는 것일까? 콜럼버스가 보았던 지도는 무엇이었으며 강리도와는 어떻게 달랐을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강리도 #스미소니언 #월인천강지도 #지도의 역사 #류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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