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규제에 학생 아우성...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

서울시교육청, 두발·복장 규제 '학교 구성원 의견 수렴해 제·개정' 공문 보내

등록 2021.04.22 14:18수정 2021.04.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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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발송한 공문 ⓒ 서울시교육청

 
지난 3월 9일,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의 복장을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되었다. 지난해 2월 25일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학교 규칙에 기재해야 하는 사항 중 용의 규정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에 3월 19일,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들에 공문을 발송했다. 이 공문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고 각 학교들에만 발송되었는데,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이를 입수했다.
 
이 공문은 "따라서 교복과 관련한 학생생활규정은 기존과 같이 학교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위 조례 개정의 취지에 맞추어 학생생활규정이 제·개정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끝맺고 있다. 구성원 즉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면 된다며 두발‧복장 규제를 유지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 규제가 다소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학생들의 기본권을 학교가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이번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의 취지는 학생의 두발과 복장은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대상이 아니라 각 학생이 결정할 영역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학생이 원하지 않는 용의 규제는 할 수 없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진행하는 용의 규제 설문조사에 서울에서만 38개 학교에 대한 제보가 있었고 이중 23개 학교의 학생 생활 규정에서 인권 침해적 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학교들 대다수가 상세한 용의 규정 및 상‧벌점 규정을 따로 정한다고 하고 학교 알리미에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들 어떤 움직임도 없다… 교육청이 적극 나서야"

실제 학생생활규정에 대한 공론화 과정은 어떨까. S여중의 한 학생은 아수나로에 복장 규제를 제보하면서 "학교가 간담회 등의 일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더라도 거의 5분 동안 그 의견에 대한 꼬투리를 잡습니다"라고 덧붙였다.

M여고의 한 학생은 "학교구성원 의견 수렴한다는 게 그냥 위에서, 교사들과 일부 학부모들이 다 정해 놓고 학생들에게 안내문 뿌려서 동의 여부 설문하는 게 고작이었다. 교육청에서 그냥 알아서들 하라고 하니, 학교에서는 당연히 학생들 의견 수렴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말이 좋아 자율이지 학생들의 자율이 없는 이상은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말했다. 공론화가 이미 정해진 답에 학생의 동의를 받았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것이다.

한편 지난 18일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학생 청원 게시판에는 한 학생이 올린 "학생인권 침해하는 용의 규정, 개정하도록 교육청이 나서주세요"라는 청원이 게시됐다. 이 학생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학교들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서울교육청에서 각 학교들에 관심을 가지고, 학교들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용의 규정을 인권조례에 의거하여 규정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합니다"라고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4일만에 서울 학생 2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 청원은 학생이 청원해 학생 1000명의 동의를 받으면 교육청이 공식 답변을 하는 참여 제도이다.


한편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서울에서도 이렇게 변화가 더딘 원인 중 하나로 초‧중등교육법에서 학칙 제‧개정을 학교장 재량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이 꼽힌다. 이 조항은 이명박 정부 때 학교 자율화를 명분으로 개정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을 개정하도록 지도‧감독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법률을 개정하고 학생 인권 보장의 기준을 법에 명시해 전국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학생인권 #서울시교육청 #용의규제 #두발규제 #복장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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