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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를 증명하라'는 게 아시아나 뿐일까?

[이슈] 생리휴가 역차별? "남녀 모두 아프면 쉴 수 있어야"

등록 2021.04.27 17:05수정 2021.04.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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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7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생리 휴가 신청 노동자에 입증·사전 승인 강요 건강보험 고객센터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및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회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생리대 사진을 찍어서 제출하는 회사도 있는데, 확인 서류 내는 게 어려운 일인가요?"

'생리휴가를 쓰겠다'고 하자 돌아온 답은 '생리를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준정부기관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정아무개(43)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2020년) 팀장에게 들은 말"이라면서 "2016년부터 일한 회사에서 처음 사용한 생리휴가였는데, 대뜸 서류부터 떼오라니 당황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흔을 넘기며 생리통이 심해졌다. 그런데 팀장은 '나는 생리통을 안 겪어 봐서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내 생리통을 회사에 설득·증명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되물었다.

생리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아본 게 정씨 뿐일까. 항공사 승무원들도 비슷한 요구를 받아 재판을 진행했다. 지난 25일 승무원들의 생리휴가 신청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시아나항공 전 대표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김수천 전 아시아나항공 대표는 2014년 5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승무원 15명이 138차례에 걸쳐 낸 생리휴가를 받아주지 않은 혐의로 2017년 기소된 바 있다. 김 전 대표 측은 재판과정에서도 "노동자에게 생리현상이 존재했는지 검사가 증명해야 하는데 (관련해)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은 73조는 '여성 노동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줘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여성들은 실제 이 제도를 누리기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생리휴가를 쓰려다 불이익을 받거나 생리휴가를 사용하고 싶어도 조직 분위기 때문에 연차휴가로 쓴다는 말도 있다. 여기에 생리휴가를 여성들의 '특혜'로 치부하는 일부의 주장이 생리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무급 생리휴가 쓰는데도 눈치 봐야"


생리휴가는 한국에서 68년간 이어진 제도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생리휴가를 '청구 시 유급'으로 규정했다. 무급일 경우 임금 감소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후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유급 생리휴가'는 '(무급) 생리휴가'로 바뀌었다. 주 40시간제가 시행되면서 휴식일이 확보된다며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한 기업·경영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생리휴가 무급화에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생리휴가는 오래된 제도이지만, 실제 일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일부 생리휴가를 쓰려다 불이익을 당한 이들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해(2020년) 12월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생리휴가 신청 시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경인3센터에서 일한 상담사 일부는 생리휴가를 쓰려다 결근으로 처리되거나 성과 평점이 감점됐다.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여성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하고 이에 불이익을 주며 제한을 가한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생리휴가 증빙을 요구받은 정씨는 "생리휴가가 내 권리라는 걸 자각하며 매달 쓰고 있다. 생리휴가가 무급휴가라 월급에서 8만 원이 깎이지만 내 몸이 더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진짜 생리하는 거 맞냐'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토로했다.

생리휴가를 '여성의 특혜'처럼 생각하는 조직 분위기 때문에 생리휴가를 제때 사용하지 못했다는 이들도 있다. 대기업의 건설 분야에서 일하는 최아무개(30)씨는 "직업의 특성상 상급자부터 동료들이 모두 남성이다. 이들이 아시아나 전 대표가 승무원들의 생리휴가를 거부해 벌금을 받은 뉴스를 두고 '아니 그걸 어떻게 믿고 휴가를 줘'라고 말한 걸 들었다"라면서 "내가 생리휴가를 신청해도 저렇게 이야기하겠구나 싶어 생리휴가를 쓸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정아무개(32)씨는 "회사에서 한 달 전에 스케줄을 신청하며 같이 생리휴가를 신청하라고 한다"라면서 "사실상 쓰지 말라는 말 같아서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7년째 한 번도 생리휴가를 쓰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생리휴가, 남녀 문제 아니야"

실제 여성들이 생리휴가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 3월 통계청의 '여성 노동자의 생리휴가 사용률'에 따르면, 2014년 "지난해 생리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23.6(553명)%에 불과했다.

이 통계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00인 이상 기업 대리급 이상의 여성 노동자 2347명을 대상으로 '여성 관리자 패널 조사'를 실시한 결과로 실제 생리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한 비율은 해가 갈수록 감소했다. 2016년 21.9(513명)%, 2018년에는 19.7(462명)%만이 지난해 생리휴가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이 연휴에 생리휴가를 붙여 쓴다"거나 "남성의 입장에서 역차별로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를 두고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 건강연구센터장은 "일각에서 생리휴가를 남녀의 문제로 바라보는데, 문제의 본질은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지금 해야 할 건 유·무급 병가제도인 상병 휴가를 활성화하자는 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의료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들에게 생리휴가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외려 절대 쓰지 못하는 분위기"라면서 "누군가는 생리를 혼자 버텨내고 만다. 생리휴가는 어디에서 일하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건강권"이라고 강조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생리휴가를 특혜라고 하는 건 생리휴가를 여성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생리휴가는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생리통이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감내하며 일하라는 건 여성의 건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생리하는 신체적 조건에서 생리휴가가 보장돼야 차별 없이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생리휴가 #노동권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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