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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도망친 소년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넘버링 무비 202]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파이널 라운드>

21.05.01 09:53최종업데이트21.05.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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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회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십 대 소년 라시드는 복싱 도박 경기 선수다. 10살 때부터 이 경기를 해왔다. 지브롤터 해협의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가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인데,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꿈이다. 정식 복싱 선수가 되겠다는 원래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 꿈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유럽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필요한 경비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4만에서 6만 다르함 정도가 필요하다. 현재 환율로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이다. 파이팅 머니는 경기당 500 다르함에서 2000 다르함 정도다. 하지만 일주일에 여섯 번을 경기에 오르는데도 돈은 쉽게 모이지 않는다. 이 도박장의 주인이 경기에는 꼬박꼬박 서게 하면서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갖은 핑계를 갖다 붙인다. 이 도박 경기에 오르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을 아는 어른들의 수작이다.

그의 곁에는 친구 살렉이 있다. 두 사람은 함께 길 위에서 살았고, 쓰레기장에서 죽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생활했다. 가끔 고물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하고, 구걸을 하러 사원에 나가기도 했다. 살렉은 라시드가 하는 말이라면 모두 믿고 따른다. 그래서, 그의 꿈도 바다를 건너는 게 되었다. 어떻게 유럽에 갈 수 있는지, 그 거리가 얼마나 먼 지, 유럽의 어느 나라로 갈 지는 두 사람 모두 몰랐다. 간절한 꿈과 달리 현실은 악순환의 반복. 매번 돈을 주지 않고 경기를 굴리는 도박장 사장의 돈을 훔쳐 모로코 북부의 항구도시 탕헤르로 향한 것은 하루 빨리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파이널 라운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2.
브뤼셀과 바르셀로나가 주민을 추방해 모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넌다고 상상해보자. 이는 유럽으로 오려는 연간 이민자 수와 같다. 2020년에도 220만이 넘었고, 2019년에는 240만이었으며, 2017, 2018년도 240만이었다. 이 중 수천여 명은 유럽 땅을 밟지 못하고 이동 중에 죽음을 맞는다. 해마다 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파이널 라운드>는 각각 모로코와 스페인 출신인 모하메드 페크란, 구스타보 코르테스 부에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해마다 2백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유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모티브로 해 연출된 이번 작품은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불법과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망가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부모에게 먼저 버려져 거리를 떠돌게 된 이들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 작품이 픽션의 위치에 있음에도 그 실재가 얼마나 가혹한 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에 직접 출연하고 있는 일리라는 소년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들의 상황과 무리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라시드의 모습을 증언하는 듯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차용도 인상적이다. 극의 내용이 조립된 하나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실과의 간극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작품 속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세 소년 가운데 일리가 그 대상으로 나서게 되는 것 역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을 더욱 강조하고 부각시키는 장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 있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겠다는 꿈은 단순히 더 좋은 나라를 향해 삶의 터전을 옮기겠다는 '이동'이나 '이주'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과 '생존'을 건 바람이기 때문이다.

03.
인생이란 그런 거다. 익숙해 질거야.

탕헤르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라시드와 살렉을 먼저 알아 본 것은 그보다 먼저 버스에 올라있던 일리였다. 서로 같은 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일리의 사정 역시 그들과 비슷했다. 아빠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후, 엄마 역시 더 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다며 남은 돈을 모두 쥐어 떠나라고 한 것이 지금 이 상황의 시작. 그렇게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길 위의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서 강도를 당하는 것은 둘째치고,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는 이 버스에서조차 옆자리에 앉은 어른이 느닷없이 핸드폰을 빼앗고 폭력을 가해온다.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에는 라시드와 살렉도 그런 일리에게 박하게 굴며 거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탕헤르의 거리 역시 별반 다를 건 없다. 거리를 떠도는 불량배와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 남의 것을 빼앗아 기생하는 도둑과 부랑자들. 저 해협을 건너기 위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이 항구 도시의 거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불법 도박장의 복싱 경기도 예전과 다르다. 승리를 거두면 거둘수록 높아지는 경기 수당으로 인해 경기는 이전보다 더 거칠고 경쟁적이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파이널 라운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4.
이전 도박장에서 훔친 돈과 이 도시에서 번 돈, 어떻게든 모은 돈으로 탕헤르의 밀항꾼을 찾아가지만, 그들이 사람을 다루는 법은 훨씬 거칠다. 흥정의 시세는 기준도 없이 부르는 게 값이고, 그마저도 상대가 겁을 먹었다 싶으면 더 크게 올랐다. 상대가 아이들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타인의 곤란함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이 거래의 결말이 무사히 지브롤터 해협을 건널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용서가 가능하다. 무사히 저 바다를 건널 수만 있다면.

어둡고 추운 밤을 웅크린 채로 몇 시간, 또 몇 시간을 기다린다. 무사히 건널 수만 있다면 몇 달이라도 그렇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밀항을 기다리던 밤에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눈 앞에 배를 두고 시세가 두 배로 올라, 일리를 버리고 두 사람만 배를 탄 것도 이 바다만 건너면 모두 해결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꿈의 길목에서도 어른들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바다를 무사히 건너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배는 해협을 돌고 돌아 다시 탕헤르의 바닷가로 되돌아 오고, 밀항꾼들과 사전에 모의라도 되어 있었던 듯 육지에서는 경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믿음.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에 설 수 없었기에 믿었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꿈을 그릴 수 없었기에 믿었고, 또 자신의 힘만으로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믿었던 것뿐인데. 어른들은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손쉽게 아이들의 믿음을 배신해 버린다.

가까스로 도망친 소년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다시 또 어른이다. 이 도시의 패거리들은 처음부터 골목마다 이들을 미행 중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관망만 하고 있다가 이렇게 해협 횡단에 실패하고 나면 접근해 달콤한 유혹을 시작한다. 유럽으로 건너가 봤자 실제로는 별 거 없다며 이 도시에 남으라고 하면서. 관광객들의 물건을 훔치고 사기를 치고, 대마를 파는 법까지 가르쳐 준 뒤에는 두 번 다시 바다를 건널 수 없게 된다. 아마, 라시드 무리가 탕헤르에 도착하고 계속해서 부딪히는 아이들 역시 그렇게 머물게 되었을 것이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파이널 라운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떠나기 전엔 일단 하늘을 봐야 해요. 구름 없이 푸른색이면 건너가기에 제일 안 좋을 때죠. 구름이 없다는 건 바람이 세다는 거니까요.

어른들의 갖은 회유와 유혹에도 세 소년은 바다를 건너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사정에 휘둘리며 경험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다시 한 번 바다로 향한다. 반드시 해협을 건너 유럽에 닿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일리도 함께다. 과연 세 소년은 육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 날의 바다는 계속해서 화창했고, 바람은 시원하고 부드러웠다고 한다.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파이널라운드 난민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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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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