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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내놔'라는 김기현, 현행 법사위 월권부터 손 보자

[국회, 참 부끄럽습니다] 이번 기회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한 폐지해야

등록 2021.05.03 10:18수정 2021.05.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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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 권한대행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마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법사위 내놓으라는 야당

김기현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법사위원장직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강력하게 하고 있다. 지난 4월 30일 김 원내대표는 "(반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범법자 지위에 있겠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그와 같은 폭거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민주당 스스로 판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경고했다. 

원래 대한민국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미국 의회 방식처럼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됐다.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야당의 요구대로 실제 법사위를 야당에 넘기게 된다면, 국회가 전혀 작동되지 못하고 극심한 정쟁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우리 국회에서 그간 계속 논란을 일으켰던, 그리고 우리 국회를 실제로 극심하게 왜곡시켰던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 유신정권이 만들었다

우리 국회에서 법사위의 힘은 실제로 막강하다. 법사위가 모든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는 모든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상원 아닌 상원' 혹은 '제2원(院)'이라 칭해진다.

그간 우리 국회에서는 법사위를 둘러싸고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법사위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안이든 멈추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 내용 자체를 수정해 상임위 간 갈등이 빚어진 경우까지도 발생했다.


그런데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제헌의회 국회법의 해당 조문은 단지 "제3독회를 마칠 때에 수정결의의 조항과 자구의 정리를 법제사법위원회 또는 의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막강해진 시점은 바로 1973년 유신정권에서 이뤄진 국회법 개정 때였다. 유신정권은 1973년 국회법을 개정해 그간 본회에서 시행하도록 규정돼왔던 법안 축조심사 기능을 소관 상임위에 이전시켰다.

동시에 위원회 심사를 거친 안건에 대해 질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극대화됐다. 이렇게 해 법사위의 '제2원' 기능을 합법적으로 보장했고, 이로써 유신정권의 유정회에 의해 보장된 집권 다수당의 본회의 '문지기'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제도화했다.

'월권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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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당시 모습. ⓒ 공동취재사진

 
본래 의회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위원회의 결정을 다른 위원회가 존중하는 이른바 '위원회 소관주의(Jurisdictionalism)'는 중요한 의회 규범 중 하나다. 우리 국회처럼 법사위가 여타 상임위에서 이미 심사, 의결한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함으로써 위원회 위에 옥상옥으로 군림하는 것은 위원회의 평등성 원리 그리고 국회의원의 평등 대표성 원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세계 어느 의회에도 우리와 같은 법사위의 이러한 '제2원'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에서는 각 상임위원회 내에 '축조심사회의(Mark up)'가 구성돼 여기에서 수정안 작업과 체계·자구 심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체계·자구 심사는 세계 모든 나라 의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은 과거 군사독재 체제가 왜곡시켜놓은 적폐로서 반드시 폐지해야 마땅하다. 이번 기회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법사위의 월권 논란을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조항 폐지를 출발점으로 차근차근 의회의 기본을 갖춰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국회도 비로소 국회다운 국회로 가는 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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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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