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워너비 김진호님의 노래, 어머니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가족사진'을 꼭 찍고 싶다던 어머니... 끝내 이뤄드리지 못한 그 꿈

등록 2021.05.04 10:47수정 2021.05.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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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8년, 왠지 마음이 나날이 말랑해지던 계절, 봄의 끝 무렵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앉은자리에서 다시 한번 더 털썩, 주저앉게 된 그런 무대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왔었다. 


주말 저녁을 담보 잡히고 TV에 집중했던 그 시간을 몇 배로 보상해준 무대는, '불후의 명곡, 가족의 달 특집'이었다. 게 중에서도 내 눈길을 오래 잡아둔 바로 그 장면은 SG워너비의 김진호님이 자신의 노래 <가족사진>을 부르며 눈빛으로 오열하던 순간이었다.

가수의 개인사가 노래로 만들어진 배경도 배경이지만, 가족의 달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한 노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내게는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른하늘을 때리는 번개처럼 그대로 가슴으로 꽂혔다. 노래를 들으며 내 어머니가 오매불망 찍고 싶어 하던 '가족사진'에 대한 염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염원을 이뤄드리지 못한 불효에 대한 각성이 있었고.

엄마는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하셨던 걸까.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이태전부터 삼 남매와 그 식솔들까지 모두 참여한 가족사진을 그렇게도 찍고 싶어 하셨다.

"너거들 이번에는 시간 쫌 꼭 내거래~이. 우리도 가족사진 한 장 찍어가, 집집이 걸어놓자. 고마."
"엄마는 촌시럽구로 가족사진이 다 뭐고? 내 바뿌다."


나는 그즈음 몹시도 바빴고 둘러댈 핑계도 줄줄이 이어졌다. 오늘도 바쁘고 내일은 더 바쁠 것이라는 핑계,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 다음에 찍으면 되지!라는 호기로운 약속까지.


그땐 왜 몰랐을까, 다음이란 건 결코 쉬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는 가족사진에 당신과 삼 남매가 살아온 한 세상과, 모든 만남과, 질곡의 역사와, 겪었던 숱한 기쁨이나 슬픔 따위를 구별하지 않고 몽땅 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걸 너무 뒤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남는 건 사진뿐이란 말

세월을 따라, 머릿속 추억은 윤색될 수 있고 가끔은 먼지가 쌓이거나 녹슬기도 하지만, 사진에 담긴 시간과 그 따뜻했던 기억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사진 한 장 제대로 남겨놓지 못한 건 불효 중의 불효일 수밖에.

공연을 보는데, 김진호님의 내력이 뚜벅뚜벅 느린 걸음으로 내게 와 닿는 것 같았다. 감정을 지그시 누르려 노력하는데도 한 소절 한 소절 더해질 때마다, 노래는 이미 흥건한 슬픔이 돼 나를 적시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가엾도록 슬픈데 아름답고, 비장하면서 한편 유려하였으니.

김진호와 부모님, 비로소 완성된 <가족사진>. 그 노래의 가사를 가져와 그날의 감정선을 최대한 되살리며 읽어본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 곳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본인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기에, 진정성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크기는 배가 된다. 부를 때마다 확장돼 서사 또한 풍요로워진다. 그의 가족사진이 어느새 나의, 너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족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을린 그의 부모님의 시간들이, 한 줌 재로 돌아간 내 어머니의 시간에 더해지는걸 가슴 시리게 목도한다. 한 그릇의 밥 같은 노래. 무덤덤하고 담백하지만 씹을수록 허기도 채워지고 단맛의 여운이 길게 남는 노래이다.

목소리는 공기 속으로 퍼져, 오래된 눈물로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앉고 이 노래는 진정성을 자양분 삼아, 듣는 이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 밀도가 높아지면서 뿌리도 깊이 단단하게 파고든다. 새삼 느낀다. 노래 가사의  숨겨진 힘을, 가사 전달자인 가수가 지녀야 할 소통의 힘을, 세월이 흘러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단단한 근육으로 멜로디에 얹혀있는 그 힘들을 말이다.

부모님에게 보내는 순백의 고백, 사랑을 듬뿍 담은 편지. 김진호님의 노래 <가족사진>. 2018년 '불후의 명곡 가족의 달 특집 편'을 혹여 못 보신 분은 꼭 한 번씩 찾아서 보시기를. 노래의 묵직한 힘, 그 힘이 데리고 오는, 깊고도 깊은 울림의 정체를 확인하실 수 있을 테니.

사진 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 그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선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하다못해 공기의 맛까지. 지나고 난 다음엔 재현하려야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불효로 인해 결국 남기지 못한 인생 1회 차의 가족사진 대신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나, 이 셋. 내 인생 2회 차의 가족사진은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가장 초록에 가까운 어느 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됨에 서로가 먹먹해지는 날, 가족사진 찍기를 제안했을 때 그들 모두 흔쾌히 동의해주기를 바란다면 사치일까. 가족사진의 부재 속, 엄마의 빛바랜 증명사진을 꺼내보며 다시 김진호님의 목소리를 그날의 감동으로부터 소환한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 /@ggotdul 에도 함께 실립니다.
#가족사진 #가정의달 #SG워너비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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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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