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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10만 명이 찾는 명소, '이걸' 하기 딱 좋습니다만

노을이 춤추는 섬, 무의도를 걷다... 자연이 훼손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등록 2021.05.09 13:51수정 2021.05.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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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되 섬이 아닌 섬

노을에 비친 섬의 실루엣은 길게 흩날리는 무희의 옷소매를 닮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감기우는(조지훈 '승무' 중)' 형상이다. 섬의 왼편 끝자락은 길게 늘어지며 바다에 잠긴다. 무의(舞衣)라는 이름이 그 이상 잘 어울릴 수는 없다.


지명엔 여전히 섬 도(島) 자가 붙어 있지만 그곳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커다란 다리로 뭍과 한 몸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 덕에 몸은 편하게 됐는데 마음은 조금 불편하다. 혹시라도 자연에 해가 될까 봐서다.
 

무의도 해상 탐방로 밀물 땐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해상탐방로. 갯벌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지금은 전면통제 중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이다. ⓒ 이상구


그래도 무의도는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아름답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공기는 더없이 상쾌하며 계곡의 물은 맑고 싱그럽다. 갯벌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곳곳에 자연이 빚은 아찔한 비경이 즐비하다. 그걸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가상하다. 주말이나 공휴일엔 자동차의 입도를 제한하고 사람들이 마구 갯벌을 밟지 않도록 해안선을 따라 해상탐방로를 놓기도 했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발걸음마저 뜸하지만 말이다.

섬은 호령곡산과 국사봉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그게 무의도의 척추인 셈이다. 섬의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수직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의젓하게 앉아 먼 바다를 응시하는 사자바위나 대중을 굽어 살피는 부처바위에서는 영험한 기상마저 느껴진다. 오랜 시간동안 바닷물에 깎인 해식동굴도 있고 세상사를 함축해 놓은 만물상도 보인다. 서쪽바다는 얕고 잔잔하다. 실미해수욕장에서 실미도까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사자바위 의연하게 앉아 서해바다를 지키는 사자바위 ⓒ 이상구

 
해변을 따라 바다 위를 걸어다니는 인공탐방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아쉬운 대로 호룡곡산 아래의 '환상의 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은 소무의도가 가까이 보이는 남쪽 끝까지 이어진다. 소무의도까지는 또 하나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다. 거기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건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다.

소무의도는 이름처럼 크기는 작지만 역사는 깊다. 그 작은 섬은 또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볼 만한 것들을 추려 이른바 '누리 8경'을 만들었다. 마을의 당제를 지내던 부처깨미, 전 대통령 가족이 휴가를 즐겼다는 명사 해변 등을 포함한다. 그 여덟 풍경은 모두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다 둘러보는 데 걸어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한 해 10만 명이 찾는 명소다.

이 섬의 대표적인 해수욕장 이름인 '하나개'는 큰 갯벌이란 뜻도 있고 유일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갯벌은 정말 넒다. 끝 간 데를 모른다. 가늠조차 어렵다. 그 갯벌은 온통 진흙이 아니다. 모래 성분이 더 많다. 무의도 바다가 서해의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바닷물이 맑은 건 그 때문이다. 그 바닥은 단단하고 완만하다. 동죽이나 고둥, 각종 게 등이 지천으로 산다. 가히 생명의 보고다.
 

호룡곡산에서 바라본 노을 하늘과 바다에 두 개의 붉은 태양이 떴다. 그 풍경이 장쾌하다. ⓒ 이상구

 
서해의 섬이 으레 그렇지만 무의도는 특히 노을이 아름답다. 그건 보는 장소에 따라 느낌이 각각 다르다. 호룡곡산이나 국사봉의 정상에서 보는 노을은 장쾌하다. 그 풍경이 시시각각 각양각색으로 변하면서 한편의 서사시가 된다. 하늘의 태양이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바다에 또 하나의 태양이 뜬다. 눈부시도록 강렬한 붉은빛이다. 차라리 불덩이다. 두 태양은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서서히 바다에 잠긴다.

실미도의 노을에는 가슴 저미는 이별의 순간이 어려 있다. 태양은 바다에 잠기면서도 제 흔적을 쉬 거두지 않는다. 서쪽 하늘을 물들인 붉은 기운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여운이 무척 길다. 황금빛 석양은 또 몽환적이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눈은 부시지만 그 미세한 움직임에 지루한 줄 모른다. 해변 한편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석멍(석양 보며 멍 때리기)'도 좋다.


개발과 보존의 현명한 균형
 

무의대교 무의도는 이웃 섬 잠진도와 연도교인 무의대교로 하나가 됐다. 다리는 인간에겐 이롭지만 자연에겐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 이상구

 
지난해 5월 정식 개통된 무의대교는 무의도와 잠진도를 연결한다. 그 잠진도는 오래 전에 용유도와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용유도와 이웃 섬 영종도 사이의 바다는 매립해 세계적 규모의 국제공항을 건설했다. 영종도는 두 개의 거대한 다리로 육지 인천에 가 닿는다. 결국 소무의도를 포함해 모두 5개의 섬들은 이제 다리와 방조제로 촘촘히 연결된 단일한 운명체, 모두 섬이되 섬 아닌 섬이 된 것이다.

그게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함부로 이게 맞다, 아니다 단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서는 의당 그래야 하지만 자연과 환경의 보존을 위해서는 피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일단락 됐다. 다리가 놓였고, 모두 하나가 됐다. 남은 과제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개발과 보호,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가치 사이의 균형이다. 한번 상처 난 자연이 다시 회복하려면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국사봉의 공사현장 국사봉의 허리깨를 파헤친 공사현장. 새로 길을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 이상구

 
솔직히 다리를 건너자마자 맞닥뜨린 섬의 첫 인상은 불안했다. 섬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길을 넓히거나 새로 내고 상수도를 들이고, 주차장을 만들고, 이런 저런 편의시설들이 끊임없이 짓고 있었다. 섬의 곳곳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신음하는 듯했다. 특히 국사봉의 허리께를 길게 파헤쳐 놓은 공사현장은 그냥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지만 그것을 위해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줘야할 자연을 깎아 내는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섬을 떠나 육지로 접어들면서 문득 사람과 섬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인간의 고독을 섬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 <어바웃 보이>(About Boy)의 주인공 윌(Hugh Grant 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섬이 아니다. 섬이라 할지라도 줄지어 늘어서 있는 열도(列島)다. 모든 섬은 바다 밑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외쳤다. 그 말처럼 무의도와 그와 하나가 된 섬들은 물 아래로 유사 이래 계속 이어져 있었다. 굳이 물 위로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무의도 #하나개해수욕장 #실미도 #사자바위 #소무의도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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