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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10만 원 꿀알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주장] 기본소득 끌어와 재산비례벌금제 비판하는 주장을 반박한다

등록 2021.05.07 12:19수정 2021.05.0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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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은 노동개악" 청년들 기습시위 대학생들이 2015년 9월 16일 오전 국회 본청 후면 출입구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 반대한다", "노동개악 추진하는 새누리당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벌이자 국회 방호직원들이 제지하고 있다. ⓒ 남소연

  
몇 해 전 벌금을 내지 않아 지명수배된 지인이 스스로 파출소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죄를 고하고 잡혀간 적 있었다. 그가 대단한 죄를 지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그와 나,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은 2015년 어느 날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합의한 노사정위원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작은 천 쪼가리에는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국회 내부에서 그걸 펼치자마자 나와 지인은 순식간에 경찰에 붙들려갔다. 그 대가로 우리는 각각 30만 원 정도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와 내가 달랐던 점은 나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 금액을 납부했다는 것이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노역을 선택했다.

그 무렵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가는 것도, 벌금을 못 내서 지명수배되는 것도 그렇게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국정교과서 사태, 민중총궐기 등 여러 집회 현장에서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는 것도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활동을 돈으로 막겠다는 심보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박근혜 정권은 무자비한 벌금 폭탄을 던졌다.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알바였던 나의 동료 중에서는 당연하게도 그것을 턱턱 낼 수 있는 형편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노역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노역이 '꿀알바'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하루 일해 봤자 10만 원을 벌기 힘든데 구치소에 있으면 10만 원을 탕감해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정말 '우스갯소리'라서 노역형을 반기는 활동가는 아무도 없었다. 수치스러운 알몸 수색, 자유가 박탈되는 시간, 낯선 장소, 인간적이지 않은 감옥. 이 모든 것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만 원은 누구에겐 껌값이었지만, 누구에겐 징역형의 벌금이었다. 2009년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벌금 1100억 원을 일시불로 납부했지만, 2021년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을 하느라 벌금형을 선고받은 장애인들은 4400만 원이 없어 노역장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노역은 하루에 10만 원이 책정되었지만, 누군가의 노역은 하루에 5억 원이 책정되었다. 전체 노역 시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법에 따라 벌금이 많을수록 하루에 탕감해주는 벌금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돈이 없어서 물건을 훔친 현대판 장발장들은 감옥에 가고, 수천억을 횡령한 기업 회장은 벌금을 일시납 하여 자유로워지는 기이한 현상이 '합법'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랜된 문제의식 : 유전무죄 무전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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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 공동취재사진

  
이 문제가 2021년에 처음 논란이 된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는 자들이 돈이 없기에 더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하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한 사람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재산과 소득과 연계하여 벌금을 '얼마'가 아닌 '날 수'로 정하고, 이 날 수에 하루 치 일당에 해당하는 벌금액을 곱하는 '일수벌금제'는 해외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에서도 19대 국회에서 법안으로 발의되기도 한 제도이다.


엉뚱하게도 재산비례벌금제가 갑작스럽게 다시 뜨거운 화두에 오른 까닭은 이 제도가 기본소득과 함께 비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산비례벌금제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장하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재산과 소득과 관계없이 국가 차원에서 일정액을 지급하자(기본소득)고 해 놓고 왜 벌금은 차등이냐, 하려면 재산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벌금액을 정해야 한다"라고 비판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윤희숙 의원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의견과 정반대로 "현금 지원에 있어서는 형편에 따라 지원해 경제력 차이를 줄이는 '선별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기본소득이 공정한 제도가 아님을 주장했다. 어느 순간 재산비례벌금제 논쟁이 선별 복지가 옳은지, 보편 복지가 옳은지 논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재산비례벌금제를 주장하는 것이 선별복지를 긍정하는 일이자 보편복지를 부정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재산비례벌금제와 기본소득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재산비례벌금제와 기본소득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어떠한 논리적 오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재산비례벌금제는 '벌'이라는 사회적 제재 수단이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아이디어이지, 가난한 사람들의 죄를 무조건 탕감해줘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의 맥락에서 재산비례벌금제의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대표되었던 법 적용의 부조리를 바로 잡는 것과 비슷한 수위의 제도이다. 그래서 이것을 기본소득론자들이 비판해왔던 장애와 가난, 노동 여부 등에 대한 심사를 기본으로 하는 복지 시스템과 똑같은 수위로 비교될 수 없다.

윤희숙 의원의 궤변에 답한다 : 받고, 기본소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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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고용보험도, 기본소득도, 재산비례벌금제도 함께 시행되는 사회는 불가능하지 않다. ⓒ 픽사베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는 것이 모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호를 철폐해야 한다는 생각과 동일하다는 인식은 매우 큰 오해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누구든, 어떤 삶을 살든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말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공존할 수 있다. 이 두 언어를 서로 대치되는 것을 보아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서로 다른 층위의 것들을 같은 층위로 놓고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 누구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를 폐기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늘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강조해왔고, 특수한 이들에게 필요한 특수한 복지를 고민해왔다.

더 나아가, 애초에 기본소득은 토지나 데이터, 지구환경, 지식 등 특정한 개인의 기여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인류 공통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취지에 가깝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은 인류 공통의 권리이자 당연한 것이기에 선별복지를 위해 기본소득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성립되기 어렵다.

윤희숙 의원은 이재명 지사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현금지원을 집중하는 선별지원은 반대하시면서 선별 벌금만 주장하는 철학과 가치는 뭔지 몹시 궁금합니다"라고 물었다. 그러나 기본소득 등의 보편복지를 포기하고 선별복지를 선택했다고 해도, 항상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원이 더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1차 재난지원금과 2차 재난지원금을 비교할 때 그 사실이 단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더욱 많이 돌려야 한다는 논리로 1차 재난지원금은 2차 재난지원금 때부터 선별지급으로 바뀌었지만, 예산은 14조 원에서 7조 원으로 삭감되었다.

사각지대와 사회 혼란은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왔다. 가난한 사람에게 현금지원을 어떻게 두텁게 할 것인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결과적으로 정말 선별복지를 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두터운 복지'를 시행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없이 "가난한 사람에게 더 지원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모든 논쟁에서 윤희숙 의원은 "사회정책에서 보편과 선별의 원리는 모두 중요하고 상호보완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2월, 이재명 지사도 SNS를 통해 "선별복지는 나쁘고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은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이재명 지사가 한 말은 기본소득론자들이 10년 넘게 계속해서 강조해온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기본소득과 함께 시행될 수 있는 제도들을 마치 기본소득과 상충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시도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국민고용보험이 먼저인지, 기본소득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이 타올랐던 2020년도, 지금의 재산비례벌금제와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도 비슷하다. 언제나 이러한 논쟁이 타오를 때면 나는 "받고, 기본소득 더!"라고 외쳤다. 전국민고용보험도, 기본소득도, 재산비례벌금제도 함께 시행되는 사회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 세 가지를 한 번에 상상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더 많은 이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윤희숙 의원도, 기본소득을 반대하기 위해 일률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사회 제도를 가지고 오는 많은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를 쓴 신민주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이재명 #윤희숙 #기본소득 #재산비례벌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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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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