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6 13:37최종 업데이트 21.05.06 13:37
  • 본문듣기
지난 4월 30일, 조선일보에 "싱가포르 방역 실패 탈출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오는 6월 싱가포르에서 아·태 지역 주요국 안보 수장들의 '샹그릴라 대화'가 열리고, 8월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데, 이런 잇단 국제회의 개최는 싱가포르가 "세계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는 싱가포르가 초기에 확진자가 쏟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경을 빠르게 헤쳐 나오는 능력"이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능력을 보여" 주는 등 "방역 모범국의 전범을 보여준다"며 한껏 치켜 세웠습니다.

조선일보가 싱가포르를 이렇게 극찬한 이유는 마지막 문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작년 봄 위기를 겪었"는데 "방역 모범국 운운하며 미리 샴페인을 터뜨렸"고 그 결과로 "지난해 12월엔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로 치솟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백신 접종률은 5%대, 일일 확진자 수는 여전히 700명대에 이른다"며 "위기에서 배우는 학습 능력이 부족하면 '만년 열등생'을 면할 수 없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싱가포르의 방역 상황을 이용하여 한국 정부를 비판하겠다는 목적이 읽히는 기사입니다.
 

<조선일보> 4월 30일 자 기사 '싱가포르 방역 탈출 실패기' ⓒ 조선일보

 
다음 날인 5월 1일, 민영통신사 뉴스1은 "코로나 다시 창궐,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는?"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놓습니다.

BBC가 "코로나 탄력성(회복성) 랭킹 순위에서 최근 싱가포르가 뉴질랜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싱가포르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은 백신접종이 앞섰기 때문"이며 "현재 싱가포르는 전 국민 대부분이 백신을 맞았다"고 썼습니다.


"지난해 4월 외국인 이주 노동자 때문에 코로나19가 창궐했었"으나 "이후 엄격한 거리두기 조치, 백신의 조기 접종 등을 통해 코로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국가가 됐다"며 싱가포르의 방역 상황을 치켜 세우는데 동참했습니다.

한국도 6위

우선 두 기사에서 잘못된 표현 하나씩만 골라내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방역 상황을 두고 "위기에서 배우는 학습 능력이 부족"한 "만년 열등생"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BBC가 인용 보도한 블룸버그의 코로나 회복성 랭킹 순위에서 1위는 싱가포르지만, 한국도 6위입니다. "방역 모범국의 전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년 열등생"으로 폄하할 것 까지는 없습니다.
 

블룸버그의 코로나 회복력 지수 순위. 싱가포르가 1위, 한국은 6위, 미국은 17위 ⓒ 블룸버그 홈페이지 갈무리

   
순위를 보면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싱가폴, 뉴질랜드, 호주, 이스라엘, 대만 말고는 없습니다. 중국은 12위, 미국은 17위, 캐나다는 19위 입니다. 180여 나라 가운데 몇 등을 해야 열등생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뉴스1이 "현재 싱가포르는 전국민 대부분이 백신을 맞았다"고 쓴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싱가포르 보건부의 자료에 따르면 4월 말까지 86만여 명이 접종을 완료 했고, BBC 기사에서도 싱가포르 인구 15%가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되어 있습니다("About 15% of our population has been fully vaccinated"). 15% 정도의 백신접종 완료를 두고 "전국민 대부분이 백신을 맞았다"고 하는 건 너무 성의없는 보도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뉴스1이 코로나 방역 세계 1등 국가로 치켜 세운 싱가포르의 실제 상황은 어떨까요? 두 언론의 기사만 보면 싱가포르에서는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 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싱가포르는 아직도 코로나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싱가포르 방역 실패 탈출기"를 내놓았던 4월 30일, 싱가포르 정부는 하루 확진자가 지역감염자만 9명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전날은 '무려' 16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뉴스1이 싱가포르가 세계 1위라고 보도 하던 5월 1일에는 9명이 발생했고, 2일과 3일은 각각 14명과 10명으로 연속해서 두자리 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올해 들어 4월 27일까지만 해도 하루에 평균 한 명도 안 나오던 확진자가 갑자기 두자리 수를 넘나 드는 바람에 싱가포르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다시 비상 걸린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대형 병원인 탄톡생 병원 한 곳과 연결된 확진자 수만 일주일 사이에 40명으로 현재 일부 병동이 폐쇄되고, 병원 전체 인원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입니다. 병원뿐만 아니라 창이 공항 이민국에서 11명, 이주노동자 기숙사와 관련된 경우도 7건 등 4월 말 이후 8개의 활성 클러스터가 생길 정도로 동시 다발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5일 긴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5월 8일부터 30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데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집합 최대인원 5명으로 제한 (기존 : 8명)
- 일일 가정방문 최대인원 5명으로 제한 (기존 : 8명)
- 다중시설 최대 수용인원 정원 대비 50% (기존 : 65%)
- 출근가능 직원 정원 대비 50% (기존 : 75%)
- 종교행사 및 공연/영화관 - 사전 검사 미시행시 최대인원 100명으로 제한 (기존 : 250명)
- 실내 헬스장 임시 영업중지


내용을 보면 작년 12월 말, 코로나 상황이 안정화 됐을 때 완화했던 각종 규제들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극약 처방입니다. 일단 5월 30일까지라고는 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연장될 것임을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푸드코트에서 거리두기 단속 요원이 인원과 마스크 착용에 대해 안내하고 있는 모습 ⓒ 이봉렬

 
그 와중에 인도에서 발생한 변종바이러스가 싱가포르에서도 발견 되면서 해외에서 싱가포르로 입국할 때 적용되는 자가격리를 기존 14일에서 21일로 일주일 더 늘렸습니다. 코로나 고위험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호주, 브루나이, 중국, 뉴질랜드, 대만, 홍콩,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인도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된 이후 인도를 포함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의 나라를 여행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입국 및 환승도 중단된 상태입니다.

지난 일주일간의 갑작스러운 상황변화가 놀랍기만 합니다. 지난 4월 25일에만 해도 싱가포르와 홍콩 간의 자가격리 없는 자유로운 여행, 이른바 "트래블 버블"을 실시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코로나 상황이 좋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이미 실시하기로 했으나 갑작스러운 코로나 재확산으로 취소가 되었는데 이번에 양 쪽 모두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어 5월 26일 부터 다시 시행 하기로 한 것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져서 싱가포르와 홍콩 간 격리없는 자유여행 (트래블 버블)을 알리는 싱가포르 안내 사이트. 11월 1차 연기에 이어 이번에도 코로나 재확산으로 다시 연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 트래블버블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발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다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트래블 버블은 시작도 하기 전에 또 다시 연기될 것 같습니다. 올 해 들어 네 달 가까이 하루 평균 한 명 이하의 확진자를 유지해 왔던 싱가포르가 트래블 버블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이렇게 다시 거센 재확산 사태를 맞게 된 건 상황 좋아졌다고 너무 방심하지는 말라는 경고 같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코로나는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이 잘했다고 칭찬 받을 때도 있었고, 대응을 제대로 못해 비판을 받은 때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방역 모범국에서 방역 실패국으로 또 다시 세계 1등으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또 어떻게 바뀔 지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한국 언론들이 "방역 모범국의 전범",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 같은 말로 치켜 세울 때 거기에 취해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싱가포르가 아니라 한국 이야기입니다.

확진자가 우리보다 더 많은 일본과 영국을 두고도 거리에 사람이 많아서, 공원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한 게 한국 주류 언론입니다. 한국의 방역 당국이 정파적 언론 보도에 휘둘리지 않고 제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갈 때 코로나는 결국 안정화 될 것입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