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아들이 내놓은 시든 카네이션, 부모님의 놀라운 반응

고사리손으로 산 카네이션, 그저 고맙다던 부모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등록 2021.05.07 14:39수정 2021.05.07 14:4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께 보낸 아내의 선물 댄스파티 수국 ⓒ 정지현


최근 아버지 오른팔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셔서 전화로만 들었던 아버지 오른팔 상태를 많이 걱정하지는 않았다. 당신께서는 왼팔처럼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게 열심히 운동하고, 한방치료를 병행한다고 하셨다. 행여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먼저 선수를 치셨다.


나도 아버지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는 '괜찮은가 보다'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아내가 작은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아버지 팔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 말씀을 안 해주신 아버지가 서운했고, 미리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아 속상했다. 

그날 저녁 난 아버지와 통화하며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고스란히 아버지께 쏟아부었다. 너무도 속상하고, 미안해서. 
 
"아버지, 작은 어머니에게 아버지 팔 상태 전해 들었어요. 그 상태를 얘기 안 하시면 어떡해요."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한방 치료하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니, 걱정 안 하게 생겼어요. 이미 아버지 왼팔 상태를 봐왔는데 오른팔마저 그렇게 되면 어떡해요."
"그렇게 안되려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한방 병원도 열심히 다닌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버지께 쏟아부었지만 정작 그 소리는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한 내게 외친 소리였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지금의 아버지 팔을 보시고 펄쩍 뛰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라고 잔소리를 했을 텐데. 아버지 고집은 어머니밖에 못 꺾으셨으니 지금 아버지 곁에 어머니가 계셨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

카네이션 두 송이의 추억 

이제 곧 어버이 날이다. 내가 처음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던 기억이 문득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전에도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꽃을 달아드려야 한다고 선생님이 가르쳐서 아마 그림으로 그려서 드리기도 했지만 내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꽃을 사서 달아드린 기억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날의 의미를 조금씩 알 때쯤, 내게 카네이션 한 송이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등굣길에 명절 세뱃돈으로 모아놓은 저금통을 뜯었다. 저금통에서 곱게 접힌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꼬깃꼬깃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고 등교했다. 학교 등굣길에 그렇게 큰돈을 가져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교문 앞에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2000원 주고 샀다. 빨간 카네이션이 어찌나 예쁘게 활짝 폈는지 그 순간 부모님께 달아드릴 상상으로 가슴까지 콩닥콩닥 뛰었다. 난 비닐봉지에 꽃을 넣고 조심스레 들고 가다 꽃이 다치지 않았는지 몇 번을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40여 분을 걸어 집에 가서 꽃은 봉지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평소 같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저녁 시간이 다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그때까지 어머니께 꽃을 사 왔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있던 난 아버지 퇴근을 어머니께 재촉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 퇴근을 기다리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고 자꾸 물어보셨다.

난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주인 할머니 집 마당으로 빠져나왔다. 마당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오셨고, 마음이 급했던 난 아버지 손을 끌다시피 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난 내방 책상 위에 검은 비닐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섰고, 그 속에 들어있는 빨간 카네이션 두 송이를 '짠' 하고 꺼내놓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처음 샀을 때와 같은 붉은 빛깔의 활짝 핀 카네이션이 아니었다. 봉지 속에서 꺼낸 꽃은 긴 시간 공기가 통하지 않았던 검은 봉지 안에서 마치 생명이 꺼질 듯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난 마치 내 꽃을 누가 바꿔치기한 것 같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는 그제야 저녁 내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아버지를 재촉한 내가 이해되셨는지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시며 등을 쓸어내려주셨다. 

'괜찮아. 우리 아들 마음이 너무 예뻐서 엄마, 아빠도 너무 기뻐'

그제야 난 울음을 그쳤다. 내가 울음을 그친 걸 보시고는 두 분은 다 시들었지만 아들이 처음 사온 카네이션을 저녁 내내 가슴에 달고 계셨다. 그때 웃으셨던 두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식을 키우면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나도 내 아이들이 처음 카네이션 선물을 했을 때가 너무도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너무 어렸을 때라 그 꽃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겠지만, 받는 내 마음은 아이들 마음을 백 배, 천 배는 부풀려 받은 듯하다. 사랑의 저금을 일 년 치 정도는 저축해놓는 기분이었다. 아마 시든 꽃이라도 그 날의 내 부모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이면 어버이날, 이젠 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빈지리가 우리보다 아버지께 더 크게 느껴지는 하루이지 않을까 싶다. 식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올해는 아내가 카네이션 대신에 예쁜 나비 수국 화분을 보냈다. 화분을 받고 아버지는 좋아하셨고,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나비 수국 예쁜 자태처럼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어버이날 #아버지 #카네이션 #아들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