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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망'인 아들이 300kg 철판에 깔려 죽었다"

원청 회사 동방 "업무지시한 적 없다... 안전모 미착용 관리 책임은 인정"

등록 2021.05.06 16:32수정 2021.05.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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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만 23세 청년 이선호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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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만 23세 청년 이선호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고인의 죽음을 설명하는 아버지 이재훈씨. ⓒ 김종훈

 
삶의 희망.

아버지 이재훈(62)씨 핸드폰에 저장된 아들 고 이선호(23)씨의 이름이다.

문구 그대로 아들 선호씨는 이씨에게 '삶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22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부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로 그는 삶의 희망을 잃었다. 아버지 이씨의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무거운 철판에 자식이 깔려 숨이 끊어져 가는 순간을 본다면, 머리가 터져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겠나? 나는 정신을 잃고 미쳤다. 그래서 나는 쓸쓸히 죽어간 내 아들을 위해 내 남은 삶을 길거리에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을 결심했다."

이씨의 아들 선호씨는 4월 22일 오후 4시 10분께 경기도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부두에서 개방형 컨테이너(FRC) 바닥에 있는 작은 나뭇조각 등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다 컨테이너 뒷부분 날개에 깔려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개방형 컨테이너는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형식으로 크기가 조절되는 구조를 가진 컨테이너다. 강철로 된 날개는 무게가 300kg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학생인 이씨는 2019년 해군 병장 만기제대 후 그해 말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방이 평택항에서 운영하는 하역장에서 동식물 검역 및 하역 등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이곳에서 아버지 이씨도 하청업체 소속으로 반장 역할 등을 하며 햇수로 8년째 일을 해오고 있다.

이씨의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사고 이후 보름째 장례를 미루고 있는 상태다. 6일에는 민주노총 평택안성지부와 정의당 경기도당, 재단법인 와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등 13개 단체가 연합해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 주식회사 동방의 이선호군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 ▲ 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 평택항 내 응급치료시설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선호씨 죽음, 막을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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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만 23세 청년 이선호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고인이 사망한 현장을 아버지가 찍었다. ⓒ 김종훈

 
대책위는 이날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정문에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이씨가 처음 하는 작업인데도 현장에는 안전관리자, 신호수가 없었고,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면서 "작업은 원청인 동방의 지시로 이뤄졌다"라고 주장했다.

선호씨가 작업할 당시 반대편 날개에선 동방 소속 지게차 기사 A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를 지게차를 이용해 접기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발생한 진동으로 반대편에 있던 날개가 엎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이씨가 이물질 제거 작업을 진행한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는 불량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장상태가 아니었다면 300kg 날개는 안전핀을 제거했을지라도 진동에 의해 넘어질 수 없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결국 고장난 컨테이너 날개는 진동을 못 이겨 아래쪽에서 쓰러졌고, 작업을 하던 이씨를 향해 그대로 덮쳤다. 이씨는 외부압력에 의한 두부 및 늑골 다발성 골절에 의한 뇌기종 및 혈흉이 이유가 돼 사망했다. 이씨는 사고가 일어난 4월 22일 처음으로 본인이 하던 작업이 아닌 개방형 컨테이너 해체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호씨 아버지 이씨는 6일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안전모도 없이 일을 하다 아들이 떠났다"면서 "회사는 사과는 고사하고 아직까지도 그런 지시(이물질 제거)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8년째 이곳에서 일을 했지만 누구 하나 안전모를 쓰라고 지시한 사람이 없었다. 오직 해수부에서 관리감독 나올 때만 쓰라고 하더라. 선호가 작업을 할 때 안전모를 쓰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인원조차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 안전관리 인력과 지게차 신호수 둘 중 하나만 있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서 이씨는 "형식상 나와 아들이 외부인력업체 소속인 건 맞지만 모든 작업 지시를 동방에서 받고 있다"면서 "3월 1일 이후 동방 본사에서 총괄부장이 새롭게 (평택항에) 내려온 뒤 아들은 검역뿐 아니라 다른 작업까지 맡게 됐다. 인건비 줄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작업환경 만들어놓고 사지로 몰아넣었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 성토했다.

아버지 이씨의 주장은 한마디로 안전관리 미흡에 의한 전형적인 산재사고라는 것. 아버지는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보내줘야 한다"면서 "제발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와서 용서를 빌고 사과했으면 좋겠다. 인간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사지에 몰아놓고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들이 그 위험한 곳에 왜 들어갔겠나. 시키니 들어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원청 회사 동방, 작업 지시 혐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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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만 23세 청년 이선호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 김종훈

 
이에 대해 동방 측은 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버지 이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동방 소속) 지게차 기사가 작업지시 하지 않은 걸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유족이 현장에 함께 있던 외국인 근로자의 녹취를 바탕으로 (동방의) 지시를 받았다 말하는데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유가족과 현장에 있던 다른 근로자가 지난 월요일에 조사를 받은 걸로 안다. (동방 소속) 기사도 조사를 받으면 오해가 불식될 것이라고 본다."

동방 관계자는 안전모 미착용에 대해 "안전모는 작업장에서 다 써야 한다"면서 "작업하는 장소 대기실에 안전모를 비치해 놨다. 하지만 작업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대다수 근로자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작업한다. (동방이) 안전모 착용을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컨테이너가 불량 상태 아니였냐'라는 지적에 "이씨가 작업했던 컨테이너에 문제가 있었던 것 맞다"면서 "컨테이너는 동방 것이 아니고 선박회사 거다. 육안으로 보이는 데미지(손상)가 파악이 안 됐다. 날개는 정상적으로 서 있었다가 넘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3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중량물 등을 취급하거나 그 밖의 작업을 할 때 위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씨가 사망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와 지게차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자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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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만 23세 청년 이선호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 김종훈

  
한편 이선호씨의 고등학교 친구들 수 명은 이씨가 사망한 후 보름이 되도록 돌아가며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친구 배아무개씨는 <오마이뉴스>를 만나 "친구 선호의 죽음은 어쩔 수 없던 일이 아니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면서 "선호는 그저 잔업으로 쓰레기를 줍다가 300kg 쇳덩이에 깔려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다. 안전만 지켜져도 살았는데, 코로나가 끝나면 함께 여행 가자 말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선호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 의문이 풀릴 때까지 빈소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평택항 #컨테이너 #이선호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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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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