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0 07:22최종 업데이트 21.05.10 07:22
  • 본문듣기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투기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픈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근본대책 마련에 실기한 것과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장담하면서도 도시재생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임대주택등록제를 확대하는 등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함께 추진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수요 억제 정책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올해 2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는데, 이 또한 실패를 만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투기로 인해 수요가 급팽창해서 생긴 문제를 공급확대로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될 리가 없고, 공급확대 자체가 새로운 투기수요를 촉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LH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신도시 정책을 재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칼럼을 통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를 다시 언급해 봐야 중언부언이 될 뿐이다. 이 글에서는 접근을 약간 달리해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배경에 모종의 프레임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신년사 발표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월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 연합뉴스

 
소수 투기꾼이 준동해서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모종의 프레임이란,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고 부동산값 폭등은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 기인한다고 보는 인식 틀을 가리킨다. 2017년 6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을 필두로, 정부 여당 인사들은 4년 내내 투기꾼 타령을 계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최근 들어 여권 인사들이 정책 실패를 반성하면서도 투기 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그 프레임의 영향이다. 

부동산값 폭등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프레임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할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악당'을 특정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그래서 정치인들도 정책을 펼칠 때나 정책 실패를 반성할 때 대중의 이런 성향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단시간에 대중을 설득하는 데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후 줄곧 이 프레임에 기대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역풍을 맞고 말았다. LH사태가 투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국민 앞에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범인'이 문재인 정부 공기업 안에 있었으므로 국민의 분노가 정부 여당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의 정신에 배치되는 임대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갖다 부었다.

엉터리 프레임이 초래한 결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핀셋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이상 징후를 보이면 그 지역을 콕 집어서 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상대적으로 강한 투기 억제 장치를 가동했고, 이것저것 해보다 안 통해서 뒤늦게 착수한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도 다주택자와 규제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4.7 재·보궐선거 후 논란이 일고 있는 보유세 부담 증가 문제도 집값 급등으로 인한 공시가격의 이례적 상승이 없었다면 규제지역에 부동산을 가진 극소수 다주택자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한때 투기꾼을 잡겠다며 부동산 특별사법경찰, 자금출처 조사 등 유치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거론한 것을 보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 탓으로 돌리는 정책 프레임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던 것 같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는 '핀셋'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엄청난 '괴물' 같은 존재였다. 우습게도 문재인 정부는 4년 내내 핀셋을 들고 이 괴물을 잡겠다며 허둥댔다. 결과는 역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 효과였다. 강남을 규제하니 투기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번지고, 마용성을 규제하니 '노도강'(노원·도봉·강북)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언론은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산·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등의 신조어로 이 현상을 풍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 권우성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몇 사람의 '악당'이 저지르는 악행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경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누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소위 '수요-공급의 법칙'이 근본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이 원인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행동이 민첩한 데다 정보 접근이 쉬운 까닭에 이 법칙을 누구보다 먼저 이용하는 악당들이 더 눈에 띈다. 이 경우 악당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인을 다뤄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투기 광풍이 격화된 원인은 간단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유동성 확대 정책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바람에 유동성 과잉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했던 까닭에 과잉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투기적 가수요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주택공급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는데도 투기적 가수요가 급격히 팽창하는 바람에 집값은 폭등했다. 

투기적 가수요의 대열에서 제일 앞줄에 선 수요자는 민첩한 전문 투기꾼들과 부동산 기득권층이었다. 그 뒤를 따른 것은 중산층이었으며, 2030세대가 맨 마지막에 합류했다. 요즘 2030세대가 몰두한다고 알려진 '영끌구매'나 '패닉바잉'은 투기 장세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이성적 과열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처럼 떼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엉터리 프레임에 기대어 정책을 펼친 탓에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역풍을 맞고 있다. 부동산값 상승과 공시가격 현실화로 새로 종부세 대상자가 된 1주택자들이 '나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는데 왜 투기꾼에게 물리는 종부세를 내라고 하느냐?'라고 항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부세를 투기 세력에게 매기는 벌금처럼 취급했으니 이들의 항변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춘 항변이 표출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두가 엉터리 프레임을 선택한 정부 여당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을!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 1차 회의. 2021.4.27 ⓒ 공동취재사진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틀은 어떤 내용이라야 할까?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어 투기꾼을 징벌하는 식은 곤란하다. 누구든 경제여건에 따라 실수요자도 투기꾼도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부동산 시장에 정의의 여신이 있다면 보유주택 수, 소득, 연령 따위는 보지 않고 오로지 가격만으로 판단할 것이다. 시장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집약되므로 가격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가격이 아닌 보유주택의 수와 유형에 따라 차등 과세한다든지, 소득과 연령을 기준으로 자꾸 예외를 만들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경제적 왜곡이 불가피하다(소득이 없는 노령층에 대한 배려는 과세이연(원활한 자금운용을 위해 자산을 팔 때까지 세금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 제도 등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1주택자를 실수요자로 간주해 세 부담을 가볍게 하고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간주해 중과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형태로 투기가 행해지고, 시가 상응 과세의 원칙도 무너져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사회의 자원이 특정 지역의 고가주택 쪽에 과다 배분되는 비효율까지 초래된다.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이 심해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현재 정부 여당 인사들이 보유세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이 이쪽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엉터리 프레임이 '정책의 실패'만이 아니라 '정권의 실패'까지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나날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