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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라야 할 '흑역사'가 고스란히... 근데 왜 반가울까

[싸이월드- 나만의 선곡표] 내 청춘 일부였던 싸이월드 부활을 기다리며 옛날을 추억하다

21.05.16 18:42최종업데이트21.05.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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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재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긴 180억 장의 추억(데이터)도 조만간 다시 소환될 예정입니다. 여기서 잠깐, 싸이월드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으니 바로 BGM 아닐까요. 누군가는 '대체 싸이월드가 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 청춘을 함께 했던 싸이월드 오픈 소식에 설레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텐데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싸이월드를 기다리며 그 시절 나만의 BGM 추억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편집자말]
 

싸이월드 로고와 미니미 ⓒ 싸이월드

 
요새 나이가 들긴 부쩍 들었나보다, 옛날 생각 옛날이야기를 하면 그렇다는 증거. 몇 년 전부터 TV 프로그램의 '뉴트로 열풍'으로 싸이월드 BGM으로 사랑받았던 가수들이 방송에 출연해 주목받으며 역주행을 시작했다. 싸이월드 부활 이야기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최근 MBC의 <놀면 뭐 하니?> 중 'MSG 워너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멤버가 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며 부른 노래는 물론, 그룹명의 모태가 되어준 'SG 워너비'가 소환되었다.

SG 워너비는 활동 당시 뭇 남성들의 그야말로 '워너비 가수'였다. 노래방에서 이 그룹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고, 당연히 싸이월드 BGM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SG 워너비 히트곡 중 가장 많은 BGM으로 선택된 곡이 '내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그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추억팔이라도 좋아, 그때 그 감성
  

싸이월드 미니홈피 ⓒ 싸이월드

 
2000년대 지금의 SNS보다, 한발 앞선 한국 SNS 싸이월드는 일촌이란 개념으로 친구를 맺고 일촌을 타고 넘어 다른 사람을 탐색하는 파도타기를 가능하게 했다. 스크랩을 통해 좋은 글과 사진을 공유하고 미니홈피를 꾸며갔다. 순간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구남친, 구남친의 현여친의 미니홈피까지 탔다가 덜컥 이벤트에 당첨되기도 했다. 당시 미니홈피에 누가 왔는지 알 수 없었기에 '000번째 방문자'라는 팝업창을 띄워 방문자를 탐색하기도 했었다. 훗날 불법 방문자 추적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구남친 구여친이 내 미니홈피에 들어오는지, 그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던 거다.

미니홈피에는 아바타 미니미가 있고, 오늘의 기분이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이모티콘, 스킨, BGM으로 개성과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촌이 많을수록 투데이 숫자가 높을수록 그 사람의 '인싸'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내 모습을 사랑하기보다 타인이 보는 내가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BGM을 신중하게 선곡했고, 미니홈피 BGM과 핸드폰 벨소리, 컬러링까지 맞추는 것도 유행이 되었다.
 
지금은 흔한 연예인 가십거리를 인스타그램에서 인용하지만 그때는 연예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는 게 당연했다. 그만큼 미니홈피는 그 사람을 나타내는 정체성이자 부케이면서, 취향, 현실도피처, 사이버 케렌시아였다. BGM으로 미니홈피 주인이 연애 중인지 이별했는지, 군대 갔는지, 짝사랑 중인지 현재 심경을 알 수 있었다.

미니홈피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다이어리를 통해 묵은 감정을 토해내며 하루를 다독였다. MP3에도 담지 못한 노래들은 도토리가 부자인 사람들의 미니홈피로 가 BGM 리스트를 무한정 듣기도 했다.
 
필자의 흑역사는 미니홈피에 꼭꼭 저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불태워 버려야 마땅한(?) 과거 사진과 일기가 미니홈피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창 꾸미기 좋아했을 무렵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을 스캔하거나 사진으로 찍어 미니홈피에 올리는데 열 올렸고, 도토리를 구매해 자주 BGM을 바꿔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요샛말로 힙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던 거다.
  

싸이홈 배경화면 ⓒ 싸이홈

 
이렇게 내 청춘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싸이월드는 2010년 스마트폰의 보급,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급성장에 그 자리를 잃어갔다. 결국 토종 SNS의 명맥을 잇지 못하고 SK텔레콤이 손 떼면서 재정 악화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2015년 모바일 최적화 버전 싸이홈을 개편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가 2019년 10월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결국 몇 번의 서비스 종료 공지를 번복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그렇게 2020년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싸이월드 유저들은 어엿한 소비력도 갖췄지만 싸이월드 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흑역사를 건지기 위해 부랴부랴 싸이월드 비밀번호 찾기가 대세였다.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귀중한 자료를 간직하기 위해 어렵사리 비밀번호를 찾고 눈물의 백업을 했었다. 그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방명록과 댓글, 다이어리 등을 구하지 못하고 오직 사진만 백업했지만 소중하고 감사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묻고 싶었던 과거일지라도 내 일부인 것 같았다.
 
"내가 이때 이랬었구나..."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 것 같은 중2병 감성의 글과 사진을 보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싸우고 헤어짐을 반복하던 한 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저장된 타임캡슐이 싸이월드였다. 다행히 비밀글로 되어 있어 나만 볼 수 있지만 지금 보면 부끄러워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벌어졌던 일은 새벽 감수성을 타고 부풀려지고 센티해져만 갔다.
 
내 도토리를 탈탈 털었던 배경음악
    

스위트 박스 4집 앨범 ⓒ 스위트박스

   
다시 개인적인 라떼로 돌아가 보자. 구남친은 SG 워너비 노래의 중독자였다. 이 노래만 나오면 특유의 창법으로 되지도 않는 고음과 소떼를 인솔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물론 그때는 지긋지긋했던 노래였지만 시간이 지나 방송에서 만난 SG 워너비는 찬란했던 20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고마운 가수였다. 지금 연인이 이 노래를 무한반복해 듣는 상황이 펼쳐지자 기분이 묘했다. 좋은 노래는 언제나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자의 싸이월드 BGM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노래가 드디어 생각났다. 파헬벨의 캐논 샘플링이 인상적인 'Sweet box'의 'Life is cool'이다. 듣자마자 귀를 확 사로잡는 도입부는 누구나 잘 아는 클래식을 편곡했다. 클래식 선율을 기반으로 부드러운 현악기와 일렉트로릭 요소를 결합한 팝송. 노래는 제목처럼 삶의 긍정성을 예찬하고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가 인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랬던 걸까. 아마 가사의 의미보다 곡이 주는 세련됨과 통통 튀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쿨하게, 인생은 멋지게,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길 바랐던 것 같다. 두려움과 막막함이 교차하던 시절, 한껏 고조된 감성, 앞으로 펼쳐질 희로애락을 즐기고, 단단하게 이겨내길 스스로 다독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소위 '있어 보이는 음악'을 골랐을 수 있다.
 
어쨌거나 드는 생각은 오랜만에 물건을 정리하다 'Sweet box' CD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테이프도 아닌 CD를 사다니, CD 플레이어도 없으면서 덜컥 CD를 샀다고? 그럴 정성이었다면 인생 모토로 생각했다는 뜻이 맞을 것 같다. 이제 30대가 훌쩍 넘는 나이가 되니 세상의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으면 좋은 것, 개인의 습관과 취향도 그렇게 형성되어 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내가 너무 좋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싸이월드는 5월 중 서비스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벌써부터 반갑다. 옛 감성을 끌고 들어와 향수를 자극할지, MZ 세대를 포옹하는 서비스는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싸이월드를 다시 한다면 어떤 노래를 BGM으로 선택할까? 남 눈치 보다가 허송세월 보내는 바보짓은 이제 그만. 내가 좋아야 남도 좋은 법이라는 것을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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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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