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4 07:54최종 업데이트 21.05.1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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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지난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청년과 노회찬 ③에서 이어집니다.)
 

2018년 7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 이희훈

 
'대한민국 청년을 품은 정치인' : "같은 시대를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2018년 7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의 빈소. 그곳에는 기득권에 거칠게 맞서며 힘 없고 소외된 사람을 대변했던 고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조문객들의 눈물이 뿌려졌다. 교복 차림의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등 청년층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의 영정을 응시했다. 젊은 세대의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한 현실을 감안하면 노 원내대표의 빈소는 여느 정치인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노 원내대표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젊은 시절 긴 투옥 생활을 한 탓에 때를 놓쳐 자녀도 얻지 못했던 그는 대신 대한민국의 청년을 품은 정치인이었다(임춘한 기자, [백브리핑]아! 노회찬, "오보라 믿고 싶어요"…청년층 애도 이어지는 이유, 아시아경제, 2018.7.25.).

노회찬의 떠남을 애도하는 청년들의 추모의 말과 글 가운데 몇 개를 추려봤다. 
 
"막상 그분의 죽음을 마주하니 우리가 얼마나 크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20대 청년 조문객)

"오보라고 믿고 싶었다. 빈소에 쉽사리 들어갈 수도 없었다. 노회찬 의원은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진심으로 분노하신 분이었고 그만큼 깊은 애정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더 큰 미안함과 무력감, 슬픈 감정이 든다. 빈소를 찾는 청년은 대부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취업준비생 방소영)

"정치적 태도나 입장을 떠나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분이었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한 사람이 마음이 접히고 접히고 접혀서 구석으로 갔을 것 같은 그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너무 뒤늦게 알았어요. '괜찮다'고. 그 말을 많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대학원생 황미나)

"그동안 어렵고 힘든 길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그곳에서는 좋은 곳만 가시고 예쁜 것만 보시고 다니실 수 있게 그 길은 잊으시라고 남아있는 저희가 걷겠습니다. 이제는 외롭지 마시고 편안해지세요. 의원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빛나고 멋있는 정치인이셨습니다. 노회찬이 있어서 정의당이라 자랑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의원님의 지지자로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2018.07.23. 박서연)

2019년 7월 노회찬 1주기에 즈음해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위원인 이재랑은 노회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추모했다(노회찬에 대한 지겨운 슬픔: [노회찬 1주기 추모] 진흙탕 속의 진보적 현실주의자, 레디앙, 2019.7.18.).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지금의 20대에게 노회찬은 하나의 권능이었다. 그가 암흑의 시대를 뚫고 만들어낸 발판 위에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진보를 이야기하며 까불어댈 수 있었다.

내가 노회찬을 알게 된 것은, 그를 사랑한 많은 사람들의 이유와 같이 그가 남긴 촌철살인의 말들 덕분이었다. 노회찬 어록을 인터넷에서 키득거리며 소비했던 열일곱의 청소년에게, 노회찬이란 '나도 저이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마음먹게 만든 최초의 어른이었다.

... 노회찬을 기억하는 우리 청년들은 정치판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그가 꿈꿨던 세상을 만들어내겠다는 미련함을 향해 함께 돌진하고 있다. ... 그리하여 당신이 호명한 이 땅의 모든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빛을 찾아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게 되는 그 날, 먼저 별이 된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동지였다고 사람들은 노래할 것이다."


노회찬이 떠난 뒤: '청년 노회찬', '제2, 제3의 노회찬' 육성
 

정의당의 '진보정치 4.0 아카데미' 홍보물. ⓒ 정의당

 
"아무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제2, 제3의 노회찬을 길러낸다."

2018년 노회찬이 떠나고 이틀 뒤인 7월 25일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렇게 강조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청년 정의당'을 꿈꿨던 분이다. 그는 젊은 세대의 정치에 대한 혐오를 없애고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기여한 바가 크다. 그는 돌아가셨지만, 그가 대한민국 청년에게 던졌던 메시지는 불변하다."

두 달 뒤인 2018년 9월 26일 정의당은 '청년 노회찬'을 키우기 위한 청년 정치인 교육 프로그램인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진보정치 4.0 아카데미 개강 안내'는 이렇게 소개돼 있다. 

"푸르른 진보정치를 꿈꾸는 '청년 노회찬'을 위한 자리입니다. 약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 특권없는 세상은 노회찬 의원의 꿈이었습니다. 정의당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청년 노회찬'을 기다립니다. 진보정치 4.0아카데미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9월 29일부터 10개월간 진행된 프로그램을 통해 정의당 교육연수원(원장 강상구)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꿈꿨던 '약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수행할 젊은 정치인들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의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는 2019~2020년 2기를 거쳐 2021년 현재 3기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진보정치 4.0 아카데미 2기'는 40명 정원으로 정당과 정치, 지역과 선거, 정의당과 진보정치, 진보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강좌와 심화토론 및 기획에서 실행까지의 훈련으로 진행됐다. 1기와 2기를 수료한 수십 명의 청년들은, 노회찬의 바람과 당부처럼 "힘들지만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들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
 

노회찬정치학교 1기 기본과정 1박2일 워크숍 단체사진 (2019.11.10. 서울여성플라자). ⓒ 노회찬재단

 
2019년 1월 24일 출범한 노회찬재단은 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3대 핵심사업으로 '노회찬 아카이브' '노회찬정치학교' '6411 미래비전 만들기'를 확정해 추진해 왔다. 

"노회찬의 꿈과 뜻을 이어갈 제2, 제3의 노회찬을 길러낸다"는 목표로 준비된 '노회찬정치학교'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1기 기본과정'과 '2기 기본과정'을 통해 수십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노회찬의 뜻과 꿈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며 특별히 연령 제한을 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20, 30대를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참가해 소중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2021년 4월부터 6주간 프로그램으로 '노회찬정치학교' '1기 심화과정'이 진행 중이다. 
 

노회찬정치학교 1기 수료식 단체사진 (2020.2.8. 노회찬재단 배움터). ⓒ 노회찬재단

 
2019년 10월 26일에 시작된 노회찬정치학교 1기 기본과정은 15주간에 걸친 긴 여정을 마치고 2020년 2월 8일에 마무리됐다. 

노회찬재단과 수강생들이 함께 마음을 다해 진행한 '정치교육'은 생전 노회찬이 하고자 한 꿈 중 하나였다. 1기 정치학교 교장인 조현연(노회찬재단 특임이사)은 "2009년 노회찬마들연구소에서, 2016년 창원 선거 끝나고 바로, 그리고 노회찬정치학교까지 노회찬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교육을) 세 번 시도했다. 앞선 두 번 모두 그(노회찬)와 함께 몇 달에 걸쳐 모색만 하고 실행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없는 가운데 실행했고 그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룬 것 같다"라며 함께 고생한 6명의 운영진과 재단 상근자 및 임원들, 30여 분의 강사진, 가장 중요하게는 "학생들"에게 그를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최용락 기자, 노회찬과 선글라스 그리고 해바라기: [노회찬정치학교를 가다] 1기 노회찬정치학교 마지막 날 풍경, 프레시안, 2020.2.12.). 

준비된 교육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정치학교 교감을 맡은 오진아(노회찬재단 운영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수료식에서, 수강생을 대표해 윤선주 씨는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수업 첫날, 젊은 기운으로 가득한 교실, 유연함과 친절함, 서로를 향한 적극적인 배려, 열의로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는 학생들의 눈빛, (학생들이 던진) 질문의 내용에 놀랐다. (운영진과 교수님들의) 따뜻한 정성과 관심이 소소한 행복감으로 스며들어 공부하는 기간 내내 일상이 풍요로웠다.

… 소심하지만 소란스럽게, 미미하지만 강력하게, 슬픈 현실이지만 유쾌하게,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삶의 자리에서 소신 있는 행동가로, 뜨겁게 살아가는 노회찬정치학교 1기 졸업생이 되겠다. … 함께 한 동무들,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노회찬정치학교 2기 기본과정 수료식을 마치고 진행된 ‘랜선 뒷풀이’ 현장(2020.11.28). ⓒ 노회찬재단

 
2020년 11월 28일 노회찬정치학교 2기 기본과정 수료식에서 26명의 수강생들은 "또 다른 노회찬이 되어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던 고 노회찬 대표의 유지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수료생인 홍주리 씨는 '졸업 에세이'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노회찬정치학교를 수강하면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문장은, '정치는 자원의 정의로운 분배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의로운 분배, 치우치지 않은 분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후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해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죽음의 전 단계인 감염병 코로나가 '그들'에서 '당신'으로, 그리고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 상황에 '공감'이란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라'는 유언은, 제게 한 사람이라도 더 공감하고 '그들'이 아닌 '당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라는 말로 이해됩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화가 나고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나가 보려 합니다. '그들'이 '당신'이 되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그게 노회찬 의원님의 정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 뜻을 이어받아 저는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보려 합니다."


수료식에서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이 건넨 축하 인사로 '청년과 노회찬' 기록 이야기를 마친다. 

"코로나 상황에서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돼 걱정했는데, 출석률이 높았습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6411번 버스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언젠가 20대와 관련해 두 가지를 묻자, 노회찬은 이렇게 답한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사진은 2011년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 남소연

 
- 질문 :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20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선택, 아니면 다른 어떤 선택을 했겠습니까?

- 답변 :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타임머신을 탈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만약 타임머신을 두 번 탈 수 있다면 두 번째는 다른 길을 택해보고 싶습니다. 시간 제한이 없다면 19세기 말로 돌아가 동학군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우리 근대사부터 다시 쓰고 싶으니까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절제와 절도를 생활화해야 하고 더 높은 공적 가치에 충성해야 하는 직업군인의 길도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 문 : 20대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꼽으라면?

- 답 :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첫째, 화이트칼라로 살아갈 예정이라면 반드시 6개월 정도 공장노동자 생활을 해볼 것. 둘째, 자신이 번 돈으로 1년 정도 해외 배낭여행을 할 것. 셋째, 외국어 중의 하나를 대화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습득할 것.


기록 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 다음 기사 '노인과 노회찬'은 5월 18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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