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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18 북한 개입설' 퍼뜨렸던 외무부... 대외비 문서 첫 확인

중남미 15개 국가 대사관 공식 기록... 해당국 정부·언론·재계 광범위하게 접촉, 신군부에 보고

등록 2021.05.10 07:09수정 2021.05.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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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입수한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외무부가 전 중남미 지역 대사관에 '최근 아국사태의 반응'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대외비 문건이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5.18민주화운동 직후 외무부(현 외교부)가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옹호하며 '5.18 북한 개입설'을 세계 각지에 전파한 정황이 담긴 대외비 문서가 처음 확인됐다. 특히 이 문건들은 외무부는 물론 전두환이 수장으로 있던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이란 제목의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엔 1980년 5~6월 당시 외무부가 중남미 15개 국가의 한국대사관에게 5.17비상계엄 및 5.18 진압과 관련된 각국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각 대사관은 ▲ 각계 반응(정부·의회·언론·경제계) ▲ 교민 및 반한단체 동태 ▲ 북한의 책동상황 ▲ 대사관의 조치사항 ▲ 효율적 홍보 등 대책에 관한 의견 등을 정리해 외무부에 보고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다수 국가에서 5.18과 북한을 연계시키는 보도가 여럿 나왔으며, 이를 몇몇 대사관이 자신들의 "언론접촉 강화" 때문이라고 보고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무부와 해외 각지의 대사관이 '5.18 북한 개입설'이란 허위사실을 전파 혹은 묵인하며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힘을 보탠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은 '5.18 북한 배후설'이 아르헨티나 언론에 보도됐고, 이 기사가 자신들의 "언론계 접촉강화" 때문에 나왔다고 내세웠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당시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이 외무부장관에 보고한 문건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5월 28일자 유력지 LA NACION은 국제정치상 한반도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광주사태를 북괴가 악용할 여지를 경계하는 사설을 게재하였음. 동일자 유력지 LA PRENSA 광주사태가 북괴의 간첩책동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한국의 안정이 긴요하다는 내용의 해설기사를 게재함. (중략) 언론계 접촉강화로 전기(앞서 기술한) 사설 및 해설기사 게재.
 
이 문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언론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5.18을 안보 위협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LA NACION), 5.18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허위사실까지 기사화했다(LA PRENSA). 뿐만 아니라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은 이러한 기사가 생산된 이유를 자신들의 "언론계 접촉강화" 때문이라며 허위사실 유포를 마치 공적인양 내세우고 있다. 다른 국가의 보고 문건에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주멕시코 대사관은 "여러 일간지 및 방송이 대사관이 배포한 자료에 따라 광주사태가 북괴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함"이라고 보고했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주멕시코 대사관 : 수개 일간지 및 방송이 당관이 배포한 자료에 따라 광주사태가 북괴의 배후 조정(조종의 오기로 추정 - 기자 주)에 의한 것이며 계엄 하에서도 한국 정부는 외국인의 경제 활동 및 국민의 일상생활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음을 보도함. (중략) 유력 일간지 EL HERALDO와 기자회견, 멕시코 국영TV 및 XEDF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국 사정 설명 및 주요 신문사 등 언론기관에 보도자료 배포.
주칠레 대사관 : 사태에 북괴의 배후 조종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기사 게재(5월 26일 MERCURIO). (중략) 주요 언론기관 등에 관계 자료 송부.
주콜롬비아 대사관 : 사설에서 광신적인 김일성 독재정권의 남침기도 경고(5월 25일 EL TIEMPO). 아국 정부의 조치가 북괴의 남침과 관련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도(5월 21일 EL ESPERTADOR). (중략) 언론계 홍보로 좋은 반응을 얻음.
주파나마 대사관 : 최근 LA ESTRELLA DE PANAMA가 사설을 통해 최근 사태가 북괴의 대남 도발을 위한 호기로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함. (중략) 유력지 언론인들을 오찬에 초대해 최근 사태 홍보. (중략) 친한(親韓) 언론인을 통한 북괴 비난 기사 게재. 
  

코스타리카 언론 'LA NACION'의 1980년 5월 28일자 1면에 실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 LA NACION (구글 뉴스 아카이브)

  
각국 고위층 만나 '신속' 홍보

이러한 '홍보' 활동의 대상은 언론에 그치지 않았다. 아래는 각 대사관이 해당 국가의 고위층 인사를 만나 신군부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문건 내용 중 일부다.
 
주아르헨티나 대사관 :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입장표명은 없으나 외무성 경제차관, 의전장 국방대학원 부원장 등은 광주사태 등에 북괴 책동 유무와 중공 및 소련의 동태에 큰 관심을 표명함. (중략) 정부 고위층 및 실무자를 적극 접촉해 사태를 설명·홍보. 경제인, 교포 각계 인사를 접촉해 사태를 설명·홍보.
주파나마 대사관 : (파나마 정부당국은) 최근 (한국의)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면서 안보 및 질서유지를 위한 정부의 일련의 조치를 부득이한 일로서 이해함(북괴 도발 가능성 유의). (중략) 외무성 고위층에 최근 사태를 설명하고 주재국의 이해를 도모함. 외무성 아주국장과 접촉해 직접 설명 홍보. 주재국 상공회의소에 최근 사태를 설명.
주페루 대사관 : (페루 정부당국의 경우) 공개적인 논평은 없었으나 외무성 담당과장은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국내 치안 유지가 어려운 상황 하에서는 이러한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동아시아 평화 유지를 위해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안정이 긴요하다고 말하였음. (중략) 비상 사태에 관한 (최규하) 대통령 각하의 특별 담화문을 주재국 정부기관 및 언론기관에 배포. 정부기관 및 언론기관과 접촉해 우리나라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한 홍보 활동을 전개했음.
주수리남 대사관 : (수리남 정부당국은) 우리나라가 북괴의 공산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조속히 국내 안정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음. (중략) 주재국 외국 인사를 통하여 국내 정세를 신속·정확하게 홍보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함. 
 

<오마이뉴스>가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입수한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주파나마 대사관이 외무부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 외교부 외교사료관

  
몇몇 나라의 정부나 언론의 경우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이에 대한 내용과 대사관의 조치사항도 문건에 실려 있다.
 
주베네수엘라 대사관 : (베네수엘라 정부당국은) 타국 국내문제 간섭의 인상을 주는 발언은 삼가는 입장. 베네수엘라의 기본 대외 정책이 인권을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이므로 한국 사태도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민주화가 바람직하다고 함. (중략) 반한(反韓)단체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 대한 미국 간섭 기자 게재(5월 26일 NACIONAL). (중략) 외무성에 각종 정부 발표문 등을 전달·설명. 반한 기사에 대비해 언론인과의 오찬, 면담, 정세설명 및 자료 전달로 우리나라 입장을 톱기사 및 사설로 게재하게 함(DAILY JOURNAL).
주에콰도르 대사관 : 연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사설·논평·해설 없이 사진과 함께 보도. (중략) 서울발 외신기사가 아국에 유리하게 발신되도록 지도, 조정함이 필요.
 
각 대사관의 문건을 수합한 외무부는 '종합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여기에는 ▲ 유력인사 방한초청 및 경제기술 협력사업을 계획대로 적극 추진하고 우호협력 관계 증진 도모 ▲ 우리나라 실정을 소개하는 홍보자료를 제작하고 현지어로 배포 ▲ 왜곡 보도에 대한 해명 등 적극적인 대응책 수립 ▲ 유력 언론인 등 친한(親韓)인사를 활용해 유리한 기사 게재 등 다각적 홍보활동 전개 ▲ 예술 사절단 파견 및 스포츠 교류 등을 통한 이해증진 도모 등이 담겼다.

보안사에도 보고된 문건들... "행정부가 이미 전두환을 실권자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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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 연합뉴스

 
당시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박정희 사망 관련)을 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재규 구속으로 공석이 된 중앙정보부장 자리(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각 대사관이 보고한 문건들은 외무부는 물론 전두환이 수장으로 있던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까지 보고됐다. 각 문건 하단에는 수신처로 보이는 표가 들어가 있는데 외무부 장관실, 차관실 등과 함께 보안사도 표시돼 있다. 

5.18 연구자인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당시 행정부는 5.18이 북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광주시민의 저항에 대한 신군부의 폭력적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무부와 각 대사관들이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행정부가 이미 전두환을 정치적 실권자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대사관이 보낸 문건의 수신처로 보이는 표에 '보안사'도 포함돼 있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이 같은 외무부의 움직임은 중남미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원장 박지원)은 지난해 11월 5.18 관련 기록물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에 전달했다. 국정원은 당시 정부가 신군부의 정당성과 '5.18 북한 개입설'을 홍보한 내용이 기록물에 담겨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기록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출신의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동남갑)은 "당시 외무부와 각국 대사관이 나서 신군부 권력 장악의 정당성을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5.18 북한 개입설'과 같은 허위 사실을 전파 내지 방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라며 "이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5.18에 대한 허위, 왜곡, 색깔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는 중남미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상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정원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넘긴 자료를 비롯해 5.18 왜곡의 근거가 되는 기록물에 대한 조사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지금도 일부 극우세력이 내놓는 대표적 5.18 왜곡 사례다. 5.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주장 등이 핵심인데, 당시 상황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은 물론 국내외 각종 공식 자료에 의해 모두 허위사실임이 드러났다. (관련기사 : 지만원을 곤란하게 할, 전두환 국방부 문건 http://omn.kr/1hg67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일부 의원은 지만원 등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불러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외무부 #왜곡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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