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야무지게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리운 감자 음식들

등록 2021.05.10 09:37수정 2021.05.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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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동네 할머님이 자투리땅에 심은 씨감자는 자라서 꽃망울이 나왔다. ⓒ 박진희


우리 동네 할머님들은 참말로 부지런하다. 시유지를 분양받아 농군 못지않게 밭농사를 짓는가 하면 몇몇 분은 소일삼아 동네 자투리땅에 콩도 심고, 상추씨도 뿌리고, 배추며 무도 길러 김장까지 하신다.


며칠 전, 저녁 먹기 전에 슬슬 동네 마실을 나갔더니 감자밭이 눈에 들어온다. 귀가 어두워 늘 배에 힘 '빡' 주고 큰 소리로 대화해야 하는 할머님댁 밭이다. 지난 3월 화분에 심은 우리 집 감자는 멀대같이 키만 컸지 비실비실한데, 할머님댁 감자는 실하게 올라온 줄기도 부러운데 터지기 직전인 꽃망울까지 보인다.
 

5kg 감자 한 박스를 싸게 사 왔다. ⓒ 박진희

 
감자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물이다. 볶든 찌든 굽든 튀기든 그 어떤 조리법으로 만들어도 감자 요리는 죄다 맛있다. 통감자구이, 포테이토 칩, 감자튀김.... 감자는 간식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놔도 자꾸만 손이 간다.

추위가 막 물러갈 무렵부터 마트와 시장에 하우스감자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즈음 싹 난 감자는 화분에 처리하고, 햇감자 3kg짜리 한 봉지를 사 왔었다. 햇감자로 만든 올해 첫 번째 요리는 감자채볶음. 감자채볶음은 감자 요리의 기본으로 여겨지지만,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진짜 맛있는 감자채볶음을 먹고 싶다면 신경 쓸 일은 꽤나 많다.

우선 감자를 일정한 굵기로 채 쳐야 한다. 그걸 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절인다. 너무 절이면 간이 세져서 맛없다. 물이 자박자박 생기면 감자를 두 주먹으로 움켜쥐고 꼭 짜낸다. 그걸 달군 프라이팬에 적당량의 기름을 붓고 볶아낸다. 요즘은 파기름이나 마늘기름을 내서 볶음 요리를 많이들 하는데, 나는 들기름이나 참기름 약간을 식용유와 섞어 쓴다. 참기름을 넣을 땐 처음부터 넣지 않고 감자가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을 때 시간차를 두고 넣는다.

감자채를 가늘게 썰수록 볶을 때 딴짓을 못 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감자가 금방 눌거나 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경 써서 볶은 감자채볶음은 그릇에 담아 통깨를 솔솔 뿌려 밥상에 올리면 된다. 정성 들여 번잡하게 만들지만, 전혀 티가 안 나고 젓가락질 몇 번이면 바닥이 드러난다. 기가 막히게 볶아졌을 때 얘기다.

채가 굵게 썰린 것은 기름을 잔뜩 둘러서 감자채찜처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초보자는 물을 부어가며 타는 것만은 막아보려 애를 쓸지도 모르겠다. 타지 않도록 기름이나 물을 더 넣은 감자채볶음은 젓가락으로 집으면 부서져서 숟가락으로 떠야만 먹을 수 있다. 또한 자칫 덜 익은 것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프라이팬에 다시 볶아야 하는데 몇 번 더 손가는 게 귀찮아서 "생감자도 먹는데, 그냥 먹어" 반 협박을 일삼을 수밖에 없다.


감자채볶음이 이리도 손이 가는 요리임을 안 건 타지에서 내 손으로 밥을 해먹으면서부터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내놓는 감자채볶음은 감자를 썰고 소금 간을 해서 볶으면 그만이니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 치부했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감자의 성질을 이해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먹을 만한 감자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집에서 튀기는 감자는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 박진희

   
'감자튀김'도 그랬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먹을 때는 세심한 손길이 여러 번 간다는 걸 미처 몰랐다. 감자를 채 썰고 기름에 튀기는 조리과정이 다인 줄 알았다.

이틀 전, 농협하나로마트에서 한 상자 만 오천 원에 팔던 걸 반값에 초특가 반짝 세일을 한다기에 톡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 사 왔다. 박스를 개봉해 보니 감자가 너무 실해서 튀김용으로 적당하지 않았지만, 모처럼 감자튀김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감자채볶음과 달라서 튀김용으로 감자를 썰 때는 적당히 도톰하게 썬다. 그걸 가는소금 약간을 치고 골고루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린다. 물기를 말리고 밀가루를 가볍게 입혀 1차로 튀기는데, 귀찮다고 한꺼번에 넣으면 기름 온도가 내려가 감자가 부서지고 최악의 식감을 느끼게 된다. 한번 튀긴 감자는 체에 밭쳐 기름을 빼내다가 기름 온도가 다시 올라갔을 때 한 번 더 튀겨내야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감자튀김이 완성된다. 

언젠가 TV 요리경연 대회에 나온 젊은이들이 채 썬 생감자를 기름에 그냥 넣어 사방으로 기름이 튀고 흐물흐물한 감자튀김을 만들어내서 심사위원들에게 기본도 없다고 지적받는 걸 본 적이 있다. 한 끗 차이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얼마나 다른지 많은 공부가 됐을 테고,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길을 터득했을 것이다.

숱하게 먹었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

감자가 야무지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빠듯한 살림에 값이 싸다며 부엌 한 귀퉁이에 하지 감자를 산처럼 쌓아놓고 국이며 졸임, 볶음으로 삼시 세끼 감자 반찬만 먹어야 했던 때가 떠오른다.

유명을 달리 한 모 연예인은 집안이 기울면서 수제비를 물리도록 먹었다고 했다. 성공하면 수제비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노라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셀 수 없이 먹은 감자 반찬이나 간식이 여전히 좋다.

살림이 어려울 때 감자를 주재료로 만들어 먹던 그 모든 것들은 어찌 그리도 맛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어낼까?' 식구들을 위해 정성을 양념으로 버무린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졌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소박했던 그 옛날의 투박한 감자 요리들이 몹시도 그리웁다.
#감자채 볶음 #감자꽃 #도시락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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