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왕 세종에게 배운 어울림

여리고 서툰 임금이 펼치는 '새내기왕 세종'

등록 2021.05.10 10:34수정 2021.05.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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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5일은 세종임금이 태어난 날이다. 세종 탄신 624돌을 맞아 '세종이야기미술관'이 오백 사람에게 물었다. 세종임금 캐릭터 가운데 어떤 것이 좋으냐고. 이름 올린 캐릭터는 종로구 세종마을 '귀요미 세종', 세종시 교육청 '스마트세종', 여주시 '성군 세종대왕', 세종특별자치시 '젊은 세종 충녕'이다.

세종임금 '인품'을 가장 잘 드러낸 캐릭터로는 종로구 세종마을 '귀요미 세종'이 으뜸, 여주시 '성군 세종대왕'이 버금간다고 뽑혔다. 가장 호감이 가고,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을 묻는 항목에서는 종로구 세종마을 '귀요미 세종'이 두 항목에서 모두 으뜸으로 꼽혔다. 
  

세종임금 캐릭터 / 세종 탄신 624돌을 맞아 세종이야기미술관이 오백 사람에게 물었다. ⓒ 종로구, 세종시 교육청, 여주시, 세종자치시

 
세종임금 생신을 앞두고 책을 한 권 읽었다. <새내기왕 세종>이다. 새내기, 풋풋하지만 여리고 서툴러 풋내기라고도 한다. 책을 받아들면서 떠오른 건 운전을 갓 배우고 나서 길거리에 차를 몰고 나왔을 때다. 남이 모는 차를 타고 갈 때는 시속 100km가 넘게 달려도 빠른 줄 몰랐는데 막상 내가 몰다 보니 50km만 되어도 어찌 그리 쌩쌩 달려 나가는지 스치는 풍경을 볼 겨를이 없었다.


운전이 제법 몸에 익었다 싶어 식구들을 태우고 떠난 나들잇길, 굽은 고속도로를 돌다가 중앙분리대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구나 싶어 아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운전대를 어찌나 꽉 쥐고 어깨에 힘을 줬던지 차에서 내리고 나서도 한참 목덜미가 뻐근하고 손아귀가 얼얼했다. 얼마나 혼쭐이 났으면 30년도 더 지났는 일인데도 어제 겪은 일 같을까.

운전 새내기도 이럴진대 새내기 임금은 어땠을까? 왕권을 튼튼히 하려고 사돈을 죽이기까지 한 태종이 상왕이 되어 병권을 쥐고 서슬 퍼렇게 버티고 있었으니 살얼음이 깔린 강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펼쳐 들기 전까지 내게 세종은 여종에게 출산 휴가를 백일이 넘도록 주고도 모자라 남편에게까지 휴가를 줄 만큼 품이 넓은 임금. 노비 출신 장영실을 크게 써서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앞당긴 임금. 조세법 하나 고치는데 국민투표에 부치는 걸로도 모자라 거듭 세금을 내야 하는 백성들 처지가 서로 다름을 헤아리며 스무 해 넘도록 가다듬어 바꾸고, 글을 몰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려고 한글을 만들 만큼 높낮이 없는 거룩한 임금. 우리 국악 틀까지 새롭게 갖출 만큼 나라 살림을 두루 헤아리는 임금이었다. 그런데 새내기라니?

세종은 새내기부터 슬기로웠을까? 아니다. 열두 번째 꼭지 '실책'에는 충청도 결성에 왜구가 병선 수십 척을 이끌고 쳐들어와 우리 병선 일곱 척이 불사르고 우리 군사 태반을 죽였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세종은 우리 수군이 이렇게 약할 바엔 차라리 전함을 없애고 그 힘을 육군에게 보태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대신들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전함을 없앤다면 나라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막아서고, 상왕 또한 육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바다로 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꾸짖는다.
  

새내기왕 세종 / 권오준 지음, 김효찬 그림 / 책담 / 값 13,000원 ⓒ 책담

 
서툴기만 했을까?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풀자는 세종에게 호조참판은 나라 살림도 어렵다며 선뜻 따르지 않는다. 가까스로 쌀과 콩을 육백 가마만 풀겠다고 물러선 호조참판은 밀과 보리가 익으면 구제 사업을 그만둬도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인다. 좌의정 박은이 이 말을 막아서며 백성이 모두 밀과 보리를 심은 게 아니니 저마다 처지를 헤아려 구제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한다.


대전 회의를 마치고 저녁때 상왕과 마주 앉은 세종. 박은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넓은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종에게 박은이 어떤 사람인가. 장인을 역모로 몰아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이 선뜻 나올 수 있었을까? 멍든 마음과 공무를 떼어놓았기 때문이다.

<새내기왕 세종>에서 세종임금과 양녕대군이 보여주는 우애가 남다르다. 조선을 이끌고 가기엔 모자라는 것이 많으니 도와달라는 세종에게 양녕은 정작 나라를 살리는 자들은 사대부가 아니다, 아바마마께서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세자에 올랐다가 밀려난 양녕과 세종은 서로 미워하거나 시기할 수도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양녕과 그 사람을 받아들어 높이 쓰는 세종 사이가 도탑다. 비둘기를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한 마음이 되는 풍경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은퇴한 지 퍽 지났지만 열여덟 해 동안 기업 경영을 하면서 새록새록 깨달은 것이 있다. '경영은 살림'이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맞서듯이 죽임에 맞서는 말이 살림이요. 너를 살릴 때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고 여기며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 살림살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구나 싶어 가붓하니 펼쳐 들었다가 '세종이 거룩한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울렸기 때문이구나' 하며 덮는다.

새내기 왕 세종

권오준 (지은이), 김효찬 (그림),
책담, 2021


#새내기왕 세종 #권오준 #김효찬 #경영은 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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