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유재석의 말을 듣고

등록 2021.05.10 10:55수정 2021.05.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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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Old Nostalgia ⓒ pixabay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나온 지석진씨가 MC인 유재석씨에게 물었다. 20대의 유재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고. 유재석씨의 대답은 "아뇨. 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인 그에게는 너무도 고생스러웠던 20대였고, 지금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20대로 돌아가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하겠지만 그에게도 큰 매력이 없는 듯 보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삶이 고되고, 힘이 들어서 혹은 지난 삶이 너무도 후회스러워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다고 선뜻 답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고,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이 되어서 오늘과 내일의 삶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난 잃을 게 없어. 그래서 무서울 게 없어'라는 대사를 가끔 듣는다. 살면서 자신이 기대했던 삶이나, 바랐던 인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잃을 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예 그런 기대한 삶을 이루지도 못했거나, 혹은 바랐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거나, 잃어버렸을 것이다. 정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은 인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50, 60대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글의 서두에서 물었던 '20대의 당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비슷한 반응으로 엇갈릴 것이다. 돌아간다는 사람과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지나온 삶과 인생이 후회스러워서일 수도 있고, 현재 자신의 삶이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혹은 단순하게 지금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살면서도 어제를 후회하고, 또 하루가 지난 내일이 되면 오늘을 반성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현재의 자신과 또 다른 삶을 산다는 보장도 없을 테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대의 젊은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세월이 다시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시 언젠가는 지금의 자신과 마주할 것이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20대의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현재에서 자신이 이룬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게 싫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잃을게 너무 많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20, 30대의 자신의 삶이 너무도 고되고, 힘이 들어서 다시 그 삶을 사는 게 두려워서 일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더 존중한다. 지금의 시간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오늘을 사는 것도 자신이고, 어제를 살았던 것도 자신이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칭찬하고, 지금처럼 나이듦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얼마 전 아내와 산책길에서 비슷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영희씨, 혹시 30대 초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희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전 30대로 돌아갈래요. 미리부터 건강관리 잘해서 지금처럼 골골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 건강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게요. 아마 지금 하는 가드너 준비도 미리부터 시작할 거고요. 그러는 철수씨는요?"
"음, 난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치열했던 그 시절은 나름대로 내게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시절이었지만, 다시 한번 그렇게 치열하게 살 자신은 없어요. 그리고 지금 영희씨와 함께 여유 있게 산책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충분히 좋아요."


난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며 산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룬 건 아니지만 지금 누리는 평범한 시간들을 감사한다.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살지 않게 해 준 것을 감사하고, 두 아이 모두 잘 자라 주는 것을 감사하고, 아내와 지금처럼 아껴주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삶을 감사한다.

물론 아내의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아내의 대답에는 지금의 시간을 약속한 상태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현재의 삶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큰 욕심내지 않으면 지금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삶이라면 내일 나의 삶부터 만족할 수 있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 또한 앞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좋은 기획이 되지 않을까. 

'돌아갈래', '돌아가지 않을래.'

불가능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해 보는 일이지만 이런 질문만으로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조금은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시간에 감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또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잠깐의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다. 짧지만 오늘을 사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기사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과거 #돌아갈래 #행복 #만족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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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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