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71년만에 드러난 다리뼈... 자식은 흙바닥에 큰절 올렸다

[영상] 진주 명석면 화령골 민간인학살 현장 설명회... "남는 것은 눈물뿐, 유해 보니 괴로워"

등록 2021.05.11 13:34수정 2021.05.11 13:35
1
원고료로 응원

진주 화령골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현장설명회 진주유족회, 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연구소는 11일 오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산 71번지에서 유해, 유품 발굴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 이주영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진주유족회 회원들이 큰절하고 있다. ⓒ 윤성효

      
11일 오전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산 72번지. 71년 전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유족들은 큰절을 올렸다. 이정식(72), 정영우(77)씨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어 절을 두 번했다.

한국전쟁전후진주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진주유족회, 회장 정연조)와 부경대 글로벌지역학연구소 노용석 교수팀은 지난 7일부터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해 왔고, 이날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화령골'로 불리는 이 현장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 등 40명 이상이 군용트럭에 실려와 학살됐다는 증언이 있었다. 발굴 결과 그 실체가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25구의 유해와 희생자들이 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버클 7개, 15개의 단추가 나왔다. 유해는 희생자들의 다리뼈가 대부분이었고, 두개골은 나오지 않았다. 희생자들이 차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무줄 2개와 반지 1개 또한 함께 발굴됐다. 카빈소총 탄피 1개와 탄두 3개도 발견됐다.

노용석 교수는 "유해들은 온전하게 발굴된 것이 아니라 다리뼈를 중심으로 발견됐다"며 "1960~1970년대(추정) 학살지 인근에서 묘지를 조성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고 이때 유해 매장지가 교란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탄두·탄피를 근거로 노 교수는 "당시 현장에서 직접적인 사살이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 교수팀은 탄두와 탄피를 찾아내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활용하기도 했다.

노 교수는 "증언에 의하면 군용트럭 1대를 타고 왔다 한다. 그렇다면 40~50명 정도가 타고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유해 25구가 나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유가족인 이정식씨는 "아버지가 26살에 보도연맹으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하셨다. 유해를 보니 가슴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정영우씨는 "아버지는 31살에 보도연맹 교육이 있다고 해서 간 뒤 돌아오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연로한 유족들... 정부·지자체가 발굴에 성의 보여야"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진주유족회 회원들이 큰절하고 있다. ⓒ 윤성효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 윤성효

 
현장에 함께한 정연조 진주유족회 회장은 "남는 것은 눈물 밖에 없다. 잡초 무성한 산야에 묻혀 있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유해를 보니 괴롭다"고 했다.

정 회장은 "진실화해위(1기) 때 진주 국민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이 있었고, 이후 유족들이 배상을 받았다"며 "그런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현장이 많다. 정부와 지자체가 의무감을 가지고 더 발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NA 감식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 회장은 "유족들과 발굴된 유해를 대조하기 위해서는 DNA 감식이 필요하다. 정확성이 낮더라도 정부에서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유족들이 다 연로하다. 살아 있을 때 채취를 해놓았다가 나중에 과학이 더 발달하면 대조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에 있는 진주유족회의 컨테이너로 이송돼 보관된다. 진주유족회는 2003년 마산 여양리에서 발굴된 유해 163구와 2014년, 2016년 용산고개에서 나온 유해 40여 구를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다.

노 교수는 "발굴된 유해에 대한 위령사업이 필요하다. 국가와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고 사회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며 "4.3, 노근리, 거창함양사건 희생자들에 대해서만 유해 보관을 정부 차원에서 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해는 컨테이너에 방치되다시피 한다"고 전했다.

진주지역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가 23곳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마산 진전명 여양리 4곳, 진주 문산읍 상문리 법륜골 2곳, 명석면 용산고개 2곳은 이미 발굴이 이뤄졌다.

그러나 명석면 관지리 산 31번지와 산 173번지, 명석면 우수리 산 80번지, 우수리 산 219번지(절골), 문산읍 상문리 산 160번지, 문산읍 원촌리 산 82번지와 81번지 등 현장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다.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 윤성효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 윤성효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탄피, 탄두. ⓒ 윤성효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노용석 교수가 현장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a

진주시 명석면 화령골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해, 유품. 진주유족회 회원들이 유품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화령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주유족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