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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이 정도일 줄이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취임 한 달, 침묵하거나 후퇴하거나 말을 바꾸거나

등록 2021.05.12 07:40수정 2021.05.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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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온라인 취임식이 열렸다. 2021.4.22 ⓒ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극우보수 성향 20대 유튜버를 '8급 별정직'에 해당하는 '메시지 비서'로 채용해 논란이 일었다. 연설문과 축전, 축사 등 '메시지 비서'의 업무는 청와대의 연설 비서관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정치가 갈수록 '메시지 정치'로 기울어진다는 점에서 외부 메시지의 초안을 잡는 해당 업무의 중차대함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 측은 일부 언론에 "청년 입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비판을 의식했는지 해당 유튜버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사실상 폐쇄해 버렸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헌데 불과 4개월 전 오 시장은 이른바 보수 유튜버에 대해 이런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강성 보수 세력을 자처하는 이른바 보수 유튜버들이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무능한 정책을 굉장히 자극적인 내용으로 방송해 우리 우파 어르신들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분노보다 지혜로운 전략이 앞서야 하는데, 분노만 자극해 구독자 수를 늘리는 일부 보수 유튜버 때문에 오히려 중도 외연 확장력에 한계가 생긴다.
- 오세훈  "일부 보수 유튜버 탓에 외연 확장 한계…안철수, 예의 아냐"(<뉴시스>, 2021.1.28)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오 시장이 극우보수 유튜버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던 오 시장은 4.7 보궐선거 이후 이른바 '이대남'의 표심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자 20대 보수 유튜버를 전격 채용했다. 

본인이 과거 '태극기 집회' 연단에 올랐던 기억은 까맣게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중도 표심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의 발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순간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특유의 임기응변에서 비롯된 허언이었을까. 

침묵하거나 후퇴하거나. 그도 아니면 말을 바꾸거나 10년 전 재직 시절 본인의 정책을 부정하거나. 거칠게 요약하자면, 취임 한 달을 넘긴 오 시장의 행보는 대체로 이 정도로 수렴된다. 유세 기간 훨씬 이전부터 강성 발언과 정책들을 쏟아냈던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 임기 1년짜리 시장에게 한 달이 넘도록 일종의 '허니문' 기간을 허락한 것처럼 보인다.   

달라진 오세훈?
 
TBS 설립 목적이 있다. 교통·생활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 재임 시절에는 <뉴스공장> 같은 시사프로그램이 없었다. 박원순 전 시장이 만든 것이다. 이제 TBS를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 오세훈 "김어준, 계속 진행하되 교통정보 제공하시라" (<연합뉴스> 2021.3.8)

이른바 '김어준 때리기', 'TBS 흔들기'는 지난 선거 기간 오 후보 및 보수야당 서울시장 후보와 국민의힘의 단골 메뉴였다. 해당 발언 역시 "김어준씨가 (<뉴스공장>을) 계속 진행해도 좋다, 다만 교통정보를 제공하라"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에 앞서 오 시장은 "시장이 되면 TBS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이란 취지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랬던 오 시장은 아예 TBS 관련 보고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해당 사안에 대한 오 시장과의 대화 내용을 페이스북에 소개한 바 있다. 조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오 시장은 "공영 방송의 보도가 선거(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비판 대상이 된 것 자체를 (교통방송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TBS의 '자정'을 강조했다고 한다. 

취임 이후 오 시장은 TBS와 관련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선거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출연료 등을 문제 삼으며 TBS와 김어준 때리기에 열을 올리면서 지지층을 자극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김어준 퇴출'과 같은 강경 노선이 실정법이나 서울시 의회 상황 등 현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정치적으로도 이익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기왕에 초·중·고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지난 4일 유치원 무상급식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오 시장의 발언이다. 이날 오 시장은 "선별이니 복지니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라며 "정부도 빠르게 추진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10년 전 시장 직을 걸고 반대했을 당시 "무상복지 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무릎을 꿇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었다. 


부동산 정책은 어떠한가. 후보 시절 오 시장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대폭 완화를 통한 공급 물량 확대'로 요약된다. 그랬던 오 시장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 수요에 대해 "일벌백계"를 경고하고 나섰다. 

떠올려 보자. 선거 직후 '오세훈 당선 효과'가 서울시 집값 상승으로 연결됐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됐다. 어느새 오 후보의 핵심 공약이었던 '한강변 아파트 재건축 35층 이하 규제 폐지' 정책은 자취를 감쳤다. 목동, 여의도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버리자 심지어 반자본주의적이란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에서 도시계획과 부동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 교수는 10일 <한국경제>에 "오세훈 시장의 설익은 부동산 정책으로 도시 전체가 망가진다"라며 "(오 시장의 악수가) 땅값은 올리고 공급은 가로막고 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대개가 이런 식이다. 지지층을 자극했던 공약들이나 구호들은 대개 자취를 감췄다. 실정법과 동떨어진 '김어준 퇴출'은 둘째치더라도, 무상급식이나 투기세력 퇴출과 같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오 시장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만하다. 현 정부 정책과의 엇박자는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고 섣부른 '박원순 지우기'도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취임 직후 연일 서울시 독자 방역을 주장했다 역풍을 맞았고, '오세훈 서울시의 박원순 지우기' 보도에서 거론된 '따릉이 100억 적자' 주장엔 경제적 효율성 대신 교통복지 및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 감소 등 사회적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이 잇따랐다. 

정리하자면, 오 시장이 이른바 '박원순 체제 10년'의 공공성이 담보된 적지 않은 정책들을 당장 해체하거나 뒤집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오 시장의 과거 재임 시절과는 복지나 청년정책 등 시대정신 또한 천양지차고 이를 거스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들은 당장 반발이나 비판이 거세다. 임기 1년짜리 시장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물론 이와는 다른 견해도 없지 않을 터. 지난 8일 포털에 공개된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362호에는 기현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대표의 칼럼이 실렸다. 처음엔 제목이 '정작 위로는 오세훈에게 받았다'였으나 본문에 관련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오세훈 서울시장의 청년 정책 공약과 4월 현재 서울시 정책의 후퇴를 걱정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제목이 엉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같은 날 오후 '오세훈, 무상급식 논란 지우고 복지 시장 거듭나려면'이라고 제목이 수정됐다.

일부 언론은 선명했던 본인의 선거 구호와 달리 정책 면에서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정책들조차 무딘 칼로 달달함을 이어가는 중이다. 임기 1년짜리 시장에 대한 기대가 적어서일까, 오히려 선거 당시 구호나 정책을 실현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여겨서일까. 

'재선' 오 시장을 소환한 것은 서울시민의 준엄한 민심이 맞다. '여당 심판' 정서가 우세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부 혹은 다수 언론의 '허니문'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서울시민들이 오 시장의 오락가락, 갈팡질팡 정책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아둔하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 이와 관련, <한겨레21> 정은주 편집장은 12일 <오마이뉴스>에 해당 칼럼의 제목은 인터넷 담당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다른 기사의 제목과 혼동했다는 것.  정 편집장은 "인터넷 담당자가 두 기사의 제목을 바꿔 놓는 실수를 했고, 제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라며 "저희의 단순 실수가 독자 분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 듯합니다. 앞으로 보다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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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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