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리도에 대한 중화주의 주장은 타당한가

[강리도로 역사를 새로 쓴 외국의 사례들] 유네스코 역사서 표지에 오른 강리도

등록 2021.05.14 09:22수정 2021.05.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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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국내 역사학자가 서기 600년부터 1492년(콜럼버스 항해)까지를 다루는 방대한 역사서를 쓰면서 그 1천년 간의 역사를 대변할 문물로 조선의 강리도(1402)를 지목하고 그것을 표지에 올린다면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아마 틀림없이 국뽕이라는 비아냥을 자초할 것이다. 헌데, 유네스코에서 출판한 방대한 역사서(불어판)의 표지를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사 불어본 역사서 표지에 강리도 ⓒ 공개된 이미지

 
이 책은 보다시피 600년부터 1492년까지의 중세를 다루고 있다. 복수의 세계적 석학들이 편집한 것으로서 총 약 1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이다. 2000년에 초판이 나온 아래 영어본, 소련어본이 나와 있다.

헌데 우리의 강리도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또한 강리도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서양 학계에서는 강리도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함장하고 있는 세계사적 기록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러한 추세는 더해가고 있다. 유네스코 책자는 강리도로 역사를 새롭게 쓰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마치 18세기 말 이집트에서 로제타석이 발견. 해독됨으로써 이집트 고대사를 새로 썼듯이 강리도의 발견으로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스미소니언에서 2014년에 발간한 <1,000개의 문물로 본 세계역사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에서는 강리도를 로제타석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외국 학자들이 한국의 국뽕이 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지금 국내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강리도에 대한 많은 교육용 강의가  뜬다. 거의 한결같이 중화주의적 세계관이라고 요약하여 쪽집게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해외 학계에서는 탈중화주의적인 혁신성을 조명하고 탐구하며 평가하는데 우리는 중화주의라고 고집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도 그런 논고가 실려 있다. 

비서구권의 과학사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으로 Encyclopa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Non-Western Cultures가 있다. 무려 4,000여 쪽에 달하는 대작으로 미국, 유럽, 호주, 중국, 인도, 일본, 이집트 등의 다국적 학자들이 참여하여 펴냈다. 총 1,000개의 항목을 싣고 있는데 <강리도>의 면모를 설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강리도>는 얼른 보면 왜곡의 집합체 같다. 중국과 인도는 나뉘지 않은 채 압도적인 형세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유럽과 아프리카는 서쪽에, 한국은 동쪽에 매달려 있는데 한국의 크기가 유럽과 아프리카를 합친 것만큼이나 커 보인다. (중략) 그러나 <강리도>는 동방의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나아가 지중해와 아라비아 반도 및 홍해를 싣고 있는 동아시아 최초의 지도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기원을 여는 성취(epochal achievement)다.
-Helaine Selin, Encyclopa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in Non-Western Cultures, Springer(2008), p. 1313.

다음은 국사 편찬위원회 사이트 우리 역사넷에 실린 글이다. 
 
"그러나 이 지도의 기본 관념이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탈피한 것은 아니다. 지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바로 오른쪽에 있는 조선은 면적을 크게 확대하여 그려 놓았다. 이것은 조선이 문화적으로 중국에 버금가는 중화국이라는 소중화 의식 또는 문화적 자존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작게 그려진 데다가 방향도 잘못되어 있으며, 류큐와 동남아 제국(諸國)에 관한 묘사는 편차가 더 심하다. 또 여진족이 살았던 만주 지역도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다. 요컨대 이 지도에 반영된 세계관은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가 세계의 중심으로서 '화'이고, 다른 지역은 '이'로 자리매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강리도를 서양에 소개한 조지프 니덤(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의 관점을 들어보자. 요약하게 옮긴다.
 
"강리도의 서방부분은 특별히 흥미롭다. 유럽에 약 100개의 지명과 아프리카에 약 35개를 포함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정확한 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고 제대로 남쪽을 향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위치가 유명한 파로스 등대를 그린 우뚝 선 파고다 형상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중해의 윤관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바다색깔을 칠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게 일반적인 바다인지 여부에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둑일과 프랑스가 음을 따서 표기되어 있다('알레마니아'와 '파리시나') 나아가 아조레스 군도가 보인다. 이 지도에 나타난 서방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은 당시 서양인들의 동방지리에 대한 지식보다 훨씬 앞섰음을 보여준다. 강리도는 당시 가장 웅장한 지도로서 동시대 서양이나 아랍의 모든 세계지도를 무색케 해버린다(completely overshadowing all the contemporary European or Arabic world map)" -Needham,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중국의 과학과 문명) 제3권,p.555-556       
 
국내외의 강리도 평가가 선명히 대조됨을 알 수 있다. 보통 우리 문화재는 우리가 해외에 선양하는데 강리도의 경우는 거꾸로 된 형국이다. 강리도는 후손 복을 못 타고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그 핵심에 중화론이 있다. 과연 국내의 중화론은 타당한 것일까? 

강리도를 얼른 보면 누구나 중화주의적 지도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된다. 때문에 중화주의 문제는 까다로운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겠다. 만일 강리도 제작자들이 중화주의를 답습했다면  유럽과 아프리카를 아예 그릴 필요조차 없지 않았을까? 다뉴브 강, 독일, 파리를 왜 넣어야 한다는 말인가?


서방을 일부러 그려 넣고 거기에 많은 지리 정보를 애써 수록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더구나 강리도는 아시아에서 서방을 사실적으로 그린 최초의 지도인데 그것을 중화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 타당할까? 그 시기에 유럽을 그린 것 자체가 중화관을 벗어났다는 방증일 터인데 그 미흡함을 들어 중화주의의 결함이라고 비판한다면 타당한가? 

당시 조선에서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완전히 탈피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으며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서구화를 완전히 탈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필요하지도 바람직 하지도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강리도에 여전히 중화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결함이요, 한계라고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강리도에 중화주의가 반영되어 있는 것은 당시 서양지도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랍지도에 이슬람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논의할 의미조차 없을지 모른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한계라고 주장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 의미없는 공론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강리도는 여느 물고기와는 달리 돌고래처럼 물 위로 튀어 올랐다. 

<강리도>를 논함에 있어 상대적 관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지도들과 대조하지 않은 채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하면 몰역사의 역사ahistorical history에 빠지고 만다. 지도역사학계의 거장  할리(J. B. HARLEY)의 지적이다.
#강리도 #유네스코 #스미소니언 #중화주의 #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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