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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드디어 입 연 정호용 "노태우가 날 5.18 책임자로 몰아 제거"

5.18 진상규명위에 두 차례 '진정서' 제출... "난 광주 작전지휘권 없었다" 책임론 부인

등록 2021.05.13 19:30수정 2021.05.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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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지난 2월 진정서 형식의 의견서를 5.18진상규명위에 제출했다. 그가 재판을 제외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자신의 공식 의견을 정부기관에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진정서에서 자신의 5.18 책임론을 부인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11월 20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퇴직경찰 모임인 재향경우회 주최 '제52회 경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정 전 사령관의 모습이다(가운데). ⓒ 권우성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정호용(90) 전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5.18진상규명위)에 제출한 '진정서'를 통해서다.

정호용 전 사령관은 5.18진상규명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자신은 광주진압작전에서 배제됐고, 총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은 작전을 지휘하러 간 것이 아니었으며,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을 5.18 책임자로 몰아 정계에서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사령관은 지난 2월 진정서 형식의 의견서를 5.18진상규명위에 제출했다. 그가 재판을 제외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자신의 공식 의견을 정부기관에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송선태 5.18진상규명위원장은 "정호용이 개인 자격으로 조사를 신청했다"라고 전하면서도 "정호용이 조사 요청한 내용에 대해선 아직 밝힐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5.18진상규명위는 정 전 사령관 진정서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증빙자료 조사, 당시 군 인사들의 증언 청취 등을 진행해왔다. 이번 달 안에 정 전 사령관을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허화평·허삼수·허문도와 계속 불화... 5.18 발발하자 고의적으로 적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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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오마이뉴스>가 오랫동안 파악해온 진정서 내용에 따르면, 정호용 전 사령관은 먼저 자신은 '5공 집권 시나리오'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사령관은 "본인은 10.26과 12.12 사건이 종결된 후인 1979년 12월 13일 특전사령관에 보직된 자로 5공 집권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모른 채 특전사령관직을 맡은 자"라며 "국정수습 방안과 관련하여도 그 본질을 감지하지 못하였고, 전두환 장군을 비롯하여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공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쓰리(3)허'(허화평·허삼수·허문도)와의 불화, 갈등, 알력 등을 털어놓았다.

정 전 사령관은 "본인은 1979년 12월 13일 특전사령관에 부임하여 보안사의 지침을 무시하고 최세창 3여단장의 발포를 문책하고, 김오랑 소령 장례식을 부대장으로 거행하고 국립 묘지에 안장하여 허삼수 대령으로부터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980년 2월 창당 자금 모금과 관련하여 허화평 대령과 심한 알력이 있었고, 1980년 4월 허문도가 주도하는 언론통폐합법 제정을 반대한 일로 허삼수 대령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5공 세력인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등 핵심 인물들과 계속된 불화와 갈등으로 5.18 광주 사건이 발발하자 이들은 고의적으로 본인과 거리를 두고 적대시하는 분위기였다"라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이런 사실은 당시 보안반장이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언급한 '당시 보안반장'은 김충립(예비역 소령)씨를 가리킨다. 김씨는 지난 1980년 당시 국군보안사령부(육군기무사령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 소속으로, 특전사령관의 동향을 관찰해 보고하는 '보안반장'과 함께 정호용 신임 특전사령관을 보좌하는 '정보보좌관'을 맡고 있었다.

현재 5.18진상규명위에서 비상임 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김충립씨는 정 전 사령관이 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 20일 광주 방문, 작전 지휘하러 간 것 아니었다"

또한 정 전 사령관은 "이상과 같은 여건으로 5.18 당시 본인은 광주 진압작전에서 배제된 상태였고, 사건 발생 3일이 지난 후 광주와 서울 간 통신보안을 위하여 광주를 방문한 것이었고, 작전 지휘를 하려고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정 전 사령관과 김충립씨에 따르면, 정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확대가 선포된 직후인 지난 1980년 5월 20일 광주 현지를 처음 방문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비상계엄 확대가 선포된 5월 17일부터 광주에 내려와 진압작전을 지휘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는 "네 차례에 걸쳐 총 80여 시간 (광주) 현지를 방문하여 인사, 군수 지원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나에게는) 작전 지휘권이 없었다"라고 거듭 작전지휘권 행사를 일축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1980년 5월 20일(오전~오후 5시)과 21일(17시~22일 16시), 23일(17시~25일 15시), 26일(오후 9시~작전 개시)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헬기를 타고 광주를 방문했다. 광주에 머문 시간은 총 10일 약 80시간이었다.
 
"도청 탈환 작전, 조언 해주었을 뿐 실질적으로 방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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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당시 희생된 시민들. 1980.5.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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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사망한 시민의 시신을 끌고 가고 있다. 1980.5.28 ⓒ 연합뉴스

 
특히 정 전 사령관은 자신이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 지휘) 책임자로 매도된 배경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서에서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는 조건으로 야당 JP(김종필), YS(김영삼)에게 본인을 정계에서 제거한다는 각서를 써 준 후 본인을 5.18 당시 작전 지휘를 한 책임자로 몰고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였다"라며 "그 후 본인은 전두환 장군과 같이 5.18의 책임자로 매도되었고 1996년에 처벌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공) 청문회 이후 모든 언론기관에서 본인을 5.18 책임자로 거론하여 매도되었으나, 본인은 실제로 5.18 진압 작전에서 지휘권, 특히 발포와 관련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라고 거듭 자신의 책임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도청 탈환 작전의 경우도 소준열 장군(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사령관)이 묻기에 경험이 있는 부대를 알려주는 조언을 해주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 방관자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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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자신이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 지휘) 책임자로 매도된 배경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이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1991년 서울 가락동 정치연수원에서 열린 민자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당시 박태준 최고위원,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 ⓒ 연합뉴스

 
"5.18진상규명위가 명예를 회복해 달라"

이어 정 전 사령관은 "1996년 재판에서 처벌을 받았으나 본인은 전두환 장군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특전사의) 예하 여단을 타부대에 작전 배속시켜서 작전 지휘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령관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것이 억울하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차제에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에서 5.18에 대하여 재조사하여 진실을 규명한다 하기에 진정서를 제출하오니 잘잘못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여 죽기 전에 다소간에 명예를 회복하여 주기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진정서에는 충정부대 작전명령, 광주 출동 경위, 실탄 분배와 자위권 발동 지시, 작전 지휘 이원화와 지휘소 설치,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에게 전두환 장군 친서 전달, 오인사격 현장 방문과 부상자 위문,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의 광주 출동, 노태우 대통령에 의한 5.18 책임자 매도 등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정 전 사령관이 지난 3월 5.18진상규명위에 추가로 제출한 진정서에는 민주정의당의 창당 자금 모금, 언론통폐합,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립 참여, 보안사령관 보직 관련 노태우 장군과의 갈등, 고건 교통부 장관 입각 추천, 대통령 임기 6년을 7년으로 조작한 사건, 보안반장 김충립 소령 강제전역 사건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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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본인은 10.26과 12.12 사건이 종결된 후인 1979년 12월 13일 특전사령관에 보직된 자로 5공 집권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모른 채 특전사령관직을 맡은 자"라며 "국정수습 방안과 관련하여도 그 본질을 감지하지 못하였고, 전두환 장군을 비롯하여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27일 오후 전두환씨가 전남 광주지방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재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씨와 경호를 받으며 법원을 빠져나가는 모습니다. ⓒ 공동취재사진

 
5.18 책임 부인하는 정호용, 5공에서 '출세가도'

정 전 사령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로 군내 최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의 일원이었다. 12.12 신군부 쿠데타 직후인 지난 1979년 12월 13일 신임 특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수경사령관, 박준병 20사단장,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 참모총장)과 함께 '광주학살 5적'으로 불렸다.  

5.18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육군참모차장·총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13·14대 의원을 지내는 등 5공 내내 출세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기소돼 지난 2006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고, 형이 확정된 이후에는 훈장과 연금도 박탈됐다. 

[관련기사]
"정호용, 스스로 조사 요청"... 5.18 발포 책임 드러나나 http://omn.kr/1t7mc
"장세동은 5·18 수일 전에 왜 광주에 내려갔을까?" http://bit.ly/99vsxi
[인터뷰 전문] "5·18 '북한-미국 개입설'은 사실무근" http://bit.ly/dsudg4
#정호용 #5.18민주화운동 #5.18진상규명위 #노태우 #김충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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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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