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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인 태안화력 변호사의 질문, 참기 어려웠다

[김용균재판 참관기 ②] 산안법 위반사건의 재판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등록 2021.05.17 10:15수정 2021.05.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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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의 죽음 이후 2년이 되어서야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정에는 원·하청 대표이사를 비롯해 14명의 피고(원·하청 법인 포함 총 16명 기소)와 그들이 고용한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나와서 그들의 책임을 부인하고 변호해주고 있습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여전히 하청사에게 책임을 미루고 개인의 부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벌금 몇 푼에 진짜 권한 있는 책임자는 빠져나가고 말단 관리자만 처벌받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김용균 재판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재판 때마다 온라인 행동, 법원 앞 피케팅을 하면서 재판에 함께 참관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모아 차례로 싣고자 합니다.[기자말]
 

재판때마다 재판 시작 전 서산지원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습니다. ⓒ 김용균재단

  
늘 법원 앞에서 피케팅에만 참여하다가 처음으로 김용균 사건의 재판을 방청했다. 아직 재판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이고 재판부에 제출된 수많은 증거자료에 대해 관련 증인들을 소환,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원청(서부발전)과 하청(한국발전기술)의 변호인들은 치열하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값비싼 변호사들의 입을 통해 고상하고 전문적인 법률용어들로 치장되어 내뱉어지는 말들은, 결국 2018년 사고 당시 사측이 토해냈던 막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김용균 동료들의 증언, 사측 변호사의 되풀이식 질문

이날 증인으로 나선 이들은 지금도 태안화력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용균의 동료노동자들이었다. 사측 변호인들은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이 질문을 통해서 일관되게 확인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연 김용균을 비롯한 컨베이어 운전원들이 설비 안으로 신체 일부를 집어넣으면서 일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냐'는 점이었다.

변호인들은 사고 설비의 사진, 개구부와 컨베이어의 거리를 측정한 사진, 사람이 설비 앞에서 자세를 취한 사진 등을 늘어놓으며 신체 일부를 집어넣지 않고도 점검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은지, 심지어 높이가 낮은 하단 개구부에 사람이 쪼그리고 들어가는 것은 너무 불편한 자세가 아닌지 등을 물어보며 증인들을 추궁했다.

동료들은 재판에 출석한 증인의 의무를 다하느라 조용히 답변을 이어갔지만, 방청석에 앉아서 그 질문들을 듣고 있자니 사측 변호사들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그게 가능하면 왜 그렇게 안 했겠나?', '위험하고 불편한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겠나?'

사건 이후 수많은 노동자가 당시의 작업상황을 설명하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야기했다. 안전장치가 무력화된 설비임에도 발전기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동 중인 상태로 점검하고, 낙탄을 치우도록 업무지시가 내려졌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증언되었고 증명되었다.
 

고 김용균의 스마트폰 속에 있던 점검을 위해 찍은 사진들 ⓒ 김용균재단

  

고 김용균의 스마트폰 속에 있던 점검을 위해 찍은 사진들 ⓒ 김용균재단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명확하게 지적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와 사측 변호인들은 또 이 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사고 당일 서부발전이 어머니에게 했던 망언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용균이가 너무 용감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습니다'라고. 우리는, 그리고 어머니는 왜 지금까지도 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그러고 보니 그동안 산안법 위반사건 판결문은 많이 봐왔지만, 직접 재판과정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특별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재판이 끝나고 한동안 막막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역시 이 나라는 글러 먹었어'라는 막막함. 법률가는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는 한 산안법은 명확하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한 법이고, 이를 위반함으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명확한 사실이 있다면, 그 위반사항에 대해 처벌하는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간단한 구조 안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행동이나 과실은 변수가 될 수 없다. 노동자의 과실이 있다 해서 사업주의 위반 사실이 변하거나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재판에서는 언제나 노동자의 과실이나 책임 거론되고 쟁점이 된다. 사측 변호사들이 고인의 책임을 들춰내려 유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광경이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이게 정상일까? 저런 주장도 피고인의 권리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법조인들이 보면 비웃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노동자과실을 따지는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판사를 보고 싶다.

"변호인, 피해자의 과실 여부는 본 사건과 무관한 사안입니다. 그만하시고, 과실 비율은 민사재판에나 가서 따지세요."

일치단결과 떠넘기기

방청을 하며 또 한 가지 기가 막혔던 것은 원청의 변호인들과 하청의 변호인들이 김용균의 죽음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데에는 일치단결하면서, 일상적인 작업지시와 사고 대응 과정에서의 책임은 서로 떠넘기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하청 변호사는 석탄투입량을 조절하라는 지시가 원청에서 직접 내려진다는 점, 정비 후 벨트를 재가동하는 것도 원청의 결정이라는 점 등을 어필하느라 목소리를 높였고, 원청 변호사는 증인들로부터 원청직원이 작업 지시하는 걸 직접 봤느냐며 사용자성을 부정하느라 애쓰기도 하고, 점검구를 개방해달라고 한 건 하청업체였다며 하청업체의 책임을 강조하려 들었다.

김용균의 죽음에 대해 원청 서부발전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이 재판의 최대 쟁점이기도 하거니와 수많은 노동재해를 다루는 재판에서 원청사용자의 제대로 된 처벌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법정에서의 다툼은 법률가들의 영역이겠으나 이 통곡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더욱 끈질긴 외침과 싸움이 법정 밖에서 이어져야 함을 재판을 보며 다시금 확인했다. 재판은 너무나 길고 세상은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용균재판 참관기 두번째 글은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최진일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김용균재판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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