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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에도 해저 탐사 다이빙, 바다의 잔 다르크를 보라

[환경 다큐 보다리] 넷플릭스 <미션 블루(Mission Blue)>

21.05.17 12:18최종업데이트21.05.1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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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환경 다큐 보따리'라는 제목 아래 환경 주제 다큐멘터리 리뷰를 발표해왔다. 한 편 한 편 글을 쓸 때마다 물음 하나가 내 안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구상에 인간(인류)이 없다면 지구가 덜 위험하지 않을까?
 
산악고릴라가 시름시름 앓든 갑자기 죽어나가든 아랑곳하지 않고 금전적 이익을 쫓아다니는 지구 위 생명체는 인간이었다(비룽가). 아름답고 섬세한 예술품을 만들자고 코끼리를 살해해 상아를 뽑아내는 지구 위 생명체도 인간이었다(상아 전쟁). 부의 상징 샥스핀 좀 맛보겠다고 상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칼질을 해댈 뿐 아니라 어획장비들을 함부로 바다에 대량폐기하는 지구 위 생명체도 인간이었다(씨스피라시).

"지구상에 인간이 없다면 지구가 덜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가정의문문은 어느덧 가정평서문으로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지구상에 인간이 없다면 지구는 덜 위험할 것이고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앉아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낀다. 동시에 절망감이 솟아오른다. 우울해진다. 인간은 백해무익한 것 같아 인간 종에 속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이 든다. 또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의 오염과 훼손과 파괴 문제에 대해 나 하나의 힘은 너무나도 나약한 것 같아 부지불식간에 무기력한 느낌과 불행한 심정에도 사로잡힌다.
 

<미션 블루> 영화 포스터 ⓒ Insergent Media


그래서 궁금했다. 환경문제에 관심 가진 햇수로 아무리 길게 잡아도 십여 년, 환경 다큐멘터리 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고작 너댓 달 경력밖에 없는 '초짜 환경관심자'도 이만큼 우울한데, 평생 환경문제를 위해 일해온 사람들은 얼마나 더 우울할까? 얼마나 더 무기력감을 느낄까?
 
그러던 중 넷플릭스의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사람'을 만났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깊이 걸어두고, 항상 조사하고 심층 연구하며, 자신이 알아낸 내용을 쉼없이 홍보하다가, 마침내는 미국의 정부관료로서 정치적 좌절감까지 맛보았던 분이다. 뜻밖에도 그분은 위기를 엄중히 언급하면서도 희망을 역설하고 있었다. 여성 해양학자, 일명 '바다의 잔 다르크' 실비아 얼(Sylvia A. Earle)의 이야기다. 실비아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미션 블루>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상영시간 94분).
  
여기서 아주 잠깐 여담. 실비아의 남다른 인생역정과 현재의 과업(미션 블루, Mission Blue)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에는 소소한 재밋거리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 Law & Order > 시즌 4(에피소드 1)에 자살당하는(?) 라디오진행자로 출연했던 남자배우가 감독 중 1인으로 참여해 멋진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 그의 영어 딕션은 매우 듣기 좋은데, 그래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영어를 공부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교재목록 중 하나로 들어가도 괜찮겠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둘째는, 영화 <타이타닉>과 <아바타>로 유명한 '영화계의 거장' 제임스 캐머론(James Cameron)이 심해탐험가 자격으로 출연해 바다환경에 관한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의 하얀 머리와 파란색(혹은 회색?) 눈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집중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 스크린샷 제임스 캐머론이 바다와 기후변화의 관계에 관하여 설명하는 모습 ⓒ 넷플릭스

  
물론 이 다큐멘터리의 진짜 재밋거리와 알짜배기 매력은 실비아의 인생과 그녀의 과업 '미션 블루'에 있다. 실비아는 1935년생으로서 올해 85세다. 이 다큐멘터리(2014년)에 출연할 때 실비아는 78세 혹은 79세였다. 그런데, 그 연세(!)에 실비아는 잠수장비를 갖추고 바닷물 속에 몸소 다이빙해 들어가 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바닷속 환경을 취재했다. 그런데다 휴식시간에 (그녀에 비해 한참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은 잠시 엎드려 쉬는데) 컴퓨터 작업을 하는 등, 노익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타고난 건강체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심리적 태도가 그녀의 신체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아닌 게 아니라 실비아에게선 부정적인 표정, 불행과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의 기운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관료로서 내내 발언금지를 당하던 끝에 하릴없이 사임한 직후, 일본의 거대 수산물 거래시장이 매일 자행하는 바다생물들의 대량학살 앞에 섰을 때조차 실비아는 (슬픈 표정으로 물고기들을 애도하면서도) 이 안타까운 상황을 뒤바꿀 행동이 무엇인가 궁리하며 눈빛을 반짝인다. 실비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면서도,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격해지거나 침울해지지 않는다. 자기 감정의 상태를 솔직하게 표현하되, "바다가 버틴다는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예요"라는 말로 작금의 문제점을 충분히 경계하며,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조용히 제시한다. 예를 들어, 생선 필수섭취의 이유로 사람들이 몸에 좋은 '오메가유'를 거론하지만, 실제로 물고기들은 오메가유를 합성하지 못하고 해초섭취를 통해 얻은 오메가유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니, 오메가유가 필요하면 오메가유 합성능력이 있는 해초류를 먹는 게 적합하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 스크린샷 화면 왼쪽에 엎드려있는 사람은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여성이 실비아. ⓒ 넷플릭스

비단 환경문제에 대해서만 실비아의 긍정적 태도가 빛을 발하는 게 아니다. 실비아는 자신이 경험한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를 보인다. 실비아를 아는 어떤 이(제레미 잭슨, Jeremy Jackson)는 실비아의 이혼(들)을 두고 "유능한 과학자 아내의 유명세를 남편 입장에선 견디기 어려웠을 거예요"라고 평가하면서 남편들의 열등감을 은근슬쩍 비판한다. 그렇지만, 실비아는 자신이 꼭 해야 했던 해저탐사, 연구업무, 홍보활동 때문에 좋은 아내, 좋은 엄마 노릇이 두 번째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남편과 함께하는 길이 아닌, 갈라서는 길을 선택했노라고 덧붙인다. 남편(들)을 비판, 비난하지 않는 동시에 불필요한 죄책감에 짓눌리지도 않는 것이다(사실 이혼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실비아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라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  
 
물론 아쉬워하는 기색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실비아는 '나는 불안하면 안 되고 나는 불행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인생에 명(明)이 있다면 어차피 암(暗)도 있다는 것을 순조롭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 같은 실비아의 태도를 보면 기독교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있는 고요함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바꾸기 위해 나설 용기를,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실비아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을 바꾸기 위해 용기있게 나선다. 1990년대 정부관료로 일할 때 실비아는 걸프전 환경피해에 대한 조사를 과감하게 단행했고,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실비아는 정치적 고려보다는 환경적 고려를 앞세우는 태도를 견지했다. 맨날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바람에 발언을 금지당했을 때에도 실비아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비아는 더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관료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사임 이후, 실제로 더 자유롭게 발언하기 시작했다.
 

▲ 스크린샷 물고기 옆에서 물고기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실비아. ⓒ 넷플릭스

  
실비아는 키가 작고 몸집도 자그마하며, 수줍게 미소짓고 조용히 말한다. 그야말로 '연약한 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비아는 해양학자로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기존의 해양학자의 이미지(희끗희끗 수염을 기른 노인)를 해체했다. 그뿐 아니라, 산소탱크를 번쩍번쩍 들어나르고 짊어지면서 자신의 외모에서 포착되는 연약한 여성 이미지가 외모에 대한 선입견임을 입증했다.

실비아는 제임스 캐머론이 개발한 심해 다이빙 장비 체험자로 자원했고, 바닷물 속에서 늘 겸허함을 배운다고 고백했으며, 한번은 다이빙을 마치며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난 전갱이(jack mackerel)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 실비아는, 육지환경 보호구역(12%)에 비해 바다환경 보호구역(1% 미만)이 보잘것없이 작은 것을 지적하며, 보호구역을 20%로 높이는 과제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것이 실비아의 '미션 블루'다. 
 
일반인들에 비해 바닷물 속에서 우울한 광경들을 그토록 많이 접했는데도 불구하고 실비아는 결코 우울과 침울을 선택하지 않고 희망을 선택하고 대책을 궁리할 뿐 아니라 '미션 블루'라는 과제를 실천한다.

실비아의 과제명을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삼은 <미션 블루>도 실비아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 <미션 블루>는 환경운동에 필요한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요약, 전달해주는 다큐멘터리에 머물지 않는다. 실비아의 희망적 태도를 적극 전파한다. 두렴 없이 우울 없이 '바다의 잔 다르크' 실비아 얼을 따름이 어떠한가, 제안하듯!   
 

▲ 스크린샷 10층에서 아이가 떨어진다면 그 밑에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장면(10층에서 아이가 떨어지고 있는 순간이란, 바다가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임) ⓒ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션 블루 실비아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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