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가족들이 잡혀갈지도 모르지만 멈출 수 없어요"

[밍글라바 미얀마 ②] 미얀마인 이주노동자 딴조투

등록 2021.05.21 07:22수정 2021.05.21 07:22
0
미얀마의 현재는 과거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수원 지역에서도 매주 일요일마다 미얀마 이주민들이 현지 상황을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밍글라바 미얀마 : 미얀마 이주민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밍글라바'는 미얀마어로 '안녕하세요'입니다. [편집자말]

수원역 거리 피켓팅 미얀마 청년들과 수원시민이 함께 피켓을 들고 수원역을 돌며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수원역 문화광장의 일요일 풍경이 달라졌다. 지난 2월 6일부터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피케팅 부대가 생겨났다. 그 시작은 15명의 미얀마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을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그늘 하나 없는 9일 일요일 오후 수원역 문화광장에 50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이다. 미얀마어를 넣어 만들어간 피켓을 유심히 보던 미얀마 청년이 다가와 "대단해요" 하며 엄지를 추어올렸다. 수줍어하던 그의 칭찬에 끙끙대며 어렵게 만든 수고가 값져졌다.

피켓을 반겨준 사람이 또 있었다. 미얀마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한 딴조투씨다. 딴조투씨는 선전전을 시작하는 날부터 빠지지 않고 광장에 나왔다. 피케팅을 하는 3시간 동안 미얀마 동료들 활동을 영상에 담고,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쳤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물을 나눠주는 등 청년 딴조투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원원 단장처럼 보였다.

인터뷰가 부담스럽지 않냐 물으니 그렇지 않다며 얼마 전 자신의 모습이 담긴 JTBC 뉴스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고, 국제연대를 요청하고 싶다. 지금 한국에 있으니 미얀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속상하다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다.

코로나 감염보다 더 무서운 것 
 

미얀마 이주노동자 딴조투씨 딴조투씨는 한국에 있지만 미얀마 민주화투쟁의 승리를 염원하며 매주 수원역 문화광장에서 피켓을 들고있다. ⓒ 다산인권센터

 
딴조투씨는 2017년 10월에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가전제품에 부착될 유리 위에 인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수공예 인쇄 디자인 일을 한 경험이 있지만 처음 한국에 와서는 많이 힘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직장상사는 엄하게 일을 가르쳐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많이 위축되었다. 불량을 내지 않기 위해 신경을 너무 써서 한동안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에 같이 일을 시작했던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이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 가지 일이라도 열심히 배워서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견뎠다. 네 번 정도 울었다고 멋쩍은 듯 웃었다. 창피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작년에 1년 10개월 비자를 연장하여 같은 직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최근 사장님으로부터 작업의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칭찬을 들었다. 긴 시간을 한 회사에서 생활하니 엄하고 무서운 직장상사도 딴조뚜씨가 스스로 일을 챙겨서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준다. 이제는 일이 익숙해져서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최근 코로나 상황으로 딴조투씨 회사도 일이 많지 않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기본급 정도만 받고 일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사장님은 딴조투씨가 일요일에 수원역 피케팅에 나가는 것을 모른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니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사장님 말이 신경은 쓰이지만 그에게는 코로나 감염보다 미얀마 군부독재 상황이 더 무섭다.

"저와 같이 일하는 2명의 미얀마 노동자에게는 여기에 같이 나오자고는 안 해요. 회사에 피해를 저도 생각해요. 이렇게 나와서 활동하는 것 사장님 모르지만 알아도 상관없어요. 저는 매주 여기에 있을 거예요. 문제없어요. 만약 사장님이 나의 미얀마 투쟁을 반대해서 회사를 나가라고 해도 나는 두렵지 않아요.

지금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되찾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봐 더 두려워요. 미얀마에 있는 우리 부모님과 동생들을 생각하면 두렵지 않아요. 제가 지금 하는 활동 영상을 엄마에게 보내드리면 엄마가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하세요."


두렵지 않다고 다부지게 말을 이어가던 딴조투씨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니 헛기침을 하고 잠시 말을 멈춘다. 그의 가족은 모두 10명이다. 부모님과 위로 누나가 1명 있고 그가 둘째다. 그리고 6명의 동생이 있다. 쫑알쫑알 귀엽게 말하는 막내는 6살이다. 그는 한국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가족들에게 보낸다. 가족들은 딴조투씨가 보낸 돈으로 시내에 집을 한 채 마련했다.

아버지는 시위에 참여하기에는 연세가 많으시고, 그 외 가족은 모두 여성들이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성폭력 위험에 빠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 안에서만 생활한다. 아버지만 잠깐씩 외출하여 통제시간 전에 장을 봐서 돌아온다. 집 밖으로 나올 때는 핸드폰을 가져가면 안 된다. 군인에게 핸드폰을 검문 당해서 시위에 참여한 사진이나 관련 내용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잡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식료품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었는데 5월부터 몇 군데가 문을 열었다. 시장에 가도 물건이 없다. 채소만 조금씩 사와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수원역 거리 피켓팅 미얀마 청년들과 수원시민이 함께 피켓을 들고 수원역을 돌며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딴조투씨의 가족은 현재까지는 모두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가 보내는 돈으로 아버지가 친척들도 챙겨준다. 하지만 미얀마 민주화투쟁 중에 사촌형이 사망했고, 친척 중에 부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잡혀갔다.

아직 친척 부부의 소식을 모른다. 부부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4월 초 또 사망하셨다. 담담하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는 그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인터뷰를 멈췄다. 손을 모으고 천장을 봐라보는 딴조투씨에게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사실 지금 내가 수원역에서 미얀마 민주화투쟁 하는 것을 군부가 알면 우리 가족들은 위험해요. 집에 가서 가족을 잡아갈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가 귀국하면 그때 또 저를 구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이 일을 멈출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미얀마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시위를 하는데 한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나는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어요. 두려워만 하고 움츠러들어 있으면 나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미얀마를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못 하겠냐 생각하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딴조투씨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의 경험이 미얀마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매주 수원역 시위에 참여하는 한국 사람들이 미얀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요일 피케팅 시위에 딸과 함께 참여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딸이랑 같이 와서 고맙다고 했더니, 민주주의는 계속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니 딸에게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얀마에 있는 동생들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미얀마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100일의 시간이 지났다. 계절도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다. 군과 경찰에 의해 숨진 미얀마인이 800명을 넘어섰지만 미얀마의 저항은 아직도 뜨겁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우리 국민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성과는 아니다. 광주항쟁을 해외에 알려낸 외신기자들과 국제사회의 연대가 있었다. 미얀마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미얀마 민주주의는 세계인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의 시민들이 평화의 세 손가락을 들어, 딴조투씨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인사할 수 있기를. 밍글라바, 미얀마. 밍글라바, 딴조투.
 

수원역 거리 피켓팅 미얀마 청년들과 수원시민이 함께 피켓을 들고 수원역을 돌며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있다. ⓒ 다산인권센터

#미얀마민주주의 #민주화투쟁 #미얀마이주노동자 #다산인권센터
댓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