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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자마자 '야~', 너 잘 걸렸다... 당신은 어떤 고객인가요?

[내가 만난 진상고객 ④] 은행 아웃바운드 상담사 은영씨 이야기

등록 2021.06.22 07:37수정 2021.06.2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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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는 우분투비정규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내가 만난 진상고객-콜센터 상담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하청·파견노동자로 고용이 불안하고 경력과 상관없이 여전히 최저임금 노동자이지만, 콜센터 상담사들은 늘 밝은 목소리로 고객을 만납니다. 기관과 기업을 대표해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고 문제와 요구를 해결하려 애씁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관과 기업의 방패막이로 온갖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잠시 헤드셋을 내려놓고 자동콜 시스템 부스 밖으로 나온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터뷰와 기록은 2016년 <기록되지 않은 노동>을 발간해 비정규·비공식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알린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에서 맡았습니다. 인터뷰에는 직장갑질119 스태프가 함께했습니다. 이 기획과 기록은 사무금융 우분투 재단에서 지원받았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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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금융회사 콜센터. 2014.2.7 ⓒ 연합뉴스

 
봄날 저녁 근무를 마친 은영(가명)씨가 카페에 들어선다. 약속 장소로 정한 카페는 은영씨가 추천한 곳으로, 오래된 건물의 외관은 살리고 내부만 인테리어를 한 특색 있는 이 지역의 '핫 플레이스'다. 은영씨는 이런 특이하고 예쁜 카페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제약이 많아 아쉽다고 했다. 거리두기가 안 되는 콜센터에서 종일 마스크 쓰고 고객 응대를 하다가 모처럼 카페에 나온 은영씨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은영씨는 행복은행(가명) 고객센터에서 3년 동안 아웃바운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웃바운드는 회사나 기관의 필요로 안내와 확인, 영업 등 상담사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진행하는 상담을 말한다. 반면에 인바운드는 고객이 자신의 필요와 목적으로 건 전화를 받는 상담을 말한다. 은영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카드사 고객센터에서 인바운드 상담사로 근무했다.

"처음에 자격증을 따서 서비스 업종에서 일을 했는데, 주말 공휴일에 못 쉬다 보니 열흘 정도 계속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몇 년 그렇게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적당히 일하고 6시 칼퇴 하고 주말 공휴일엔 쉴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그 일을 하게 된 거죠."

주말과 공휴일에 쉬는 대가는 참혹했다. 말마다 숫자가 들어가는 욕을 하는 고객부터 본인이 다 쓰고 나서 "결제 금액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따지는 고객, 연회비를 왜 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고객, 카드 내역 핸드폰 문자 안내 서비스 비용 월 300원을 안 내려고 상담사를 괴롭히는 고객까지 진상고객이 참 많았다. 처음부터 불만이나 의문을 품고 작정하고 전화를 하는 인바운드 진상고객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결국 너무 힘들어서 1년을 못 채우고 카드사 고객센터를 퇴사한 후에 지금 근무하는 곳으로 이직을 했다. 이번에도 6시 '칼퇴근'과 주말 공휴일 휴무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진상고객이 조금 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지금 은영씨는 행복은행에서 대출받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필수 안내를 잘 받았는지, 서명은 직접 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업무를 한다. 예금이나 적금 만기가 도래한 고객에게 이를 알려주는 일도 은영씨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카드사 고객센터보다 '악성 진상고객'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다. 전화를 받게 될 고객의 성향이 어떤지, 그 고객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상담사들은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은영씨는 행복은행과 계약을 맺은 도급업체 소속이지만, 고객에게 전화를 걸 때는 "행복은행 고객센터 은영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라고 이야기한다. 고객들도 당연히 은영씨가 행복은행 직원일 거로 생각한다. 도급업체가 1년에 한 번 행복은행과 재계약을 할 때마다 은영씨도 계약서를 새로 쓴다. 지금까지 고용불안 문제는 없지만, 원청인 행복은행의 고객센터 운영방침 변화에 따라 이 업무가 사라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해요

"오늘은 그래도 좋은 고객을 만났어요. 나이가 60대 정도 되는 분이었는데, 처음에는 '저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전화 안 받으려고 했어요' 하셨거든요. 근데 나중에는 '어머 목소리가 너무 이쁘다. 옥구슬 같아요' 이렇게 칭찬을 해주셨어요. 목소리 이쁘다는 칭찬은 일 년에 한 두세 번 들을까 말까 해요. 워낙 목소리가 이쁜 분이 많거든요. 기분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의외로 칭찬에 인색해요. 칭찬 잘 안 해주거든요. 한번은 고객이 잘 듣고 응답도 잘해주고 정확하게 '누구누구씨,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얘기해 주시는데, 진짜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상담원의 이름을 정확하게 듣고 말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은영씨는 고객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집중해서 잘 답변해주고 나서 마무리 인사까지 잘해줄 때 고마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적지 않은 고객이 집중해서 듣지 않고 "잘 못 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라고 하거나 답변을 대충 한다. 고객의 답변 내용이 행복은행 담당 직원의 평가에 나쁘게 반영될 수도 있다 보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은영씨는 힘든 고객은 정말 힘들지만, 아직은 좋은 고객이 조금 더 많다고 했다.

"동료 상담사 중에 언제나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응대하는 분들이 많아요. 거울 보고 표정 연습도 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인사말이나 어감을 연구해서 사용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고객들이 상담을 잘 받고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게 상담사들에게는 활력소가 돼요."

은영씨는 고객으로 다른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 "친절하게 응대해주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한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콜센터 업계에는 상담사가 고객에게 친절하다는 말을 들으면 인센티브나 포상에 반영이 되기 때문이다. 전·현직 상담사 중에는 고객센터 업무가 힘든 걸 알다 보니 은영씨처럼 잘해주려는 사람도 있고, '너도 당해 보라'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아 보상을 받아 내거나 까칠하게 구는 사람도 있다.

"받자마자 듣지도 않고 '야~' 소리를 지르면서 반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야, 너 때문에 내가 중요한 전화 끊었잖아'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해요. '왜 전화했어요?' '내 정보 어떻게 알았어요?' 꼬치꼬치 캐묻고 힘들게만 하고 그냥 끊는 경우도 있고. 받아가지고 '회의 중이에요' '운전 중이에요' '화장실입니다' '밥 먹고 있어요' 많이들 그래요.

'아니, 왜 오늘 전화했어요? 월요일 날 갔을 때는 너무 불친절했는데, 그때 전화 주지. 불친절했을 땐 전화도 안 오고 친절했을 때만 전화 오더라' 이러는 분도 있고. '이거 하면 돈 줘요?' '사은품 있어요?' 이런 사람도 있고, '너 잘 걸렸다' 이런 식으로 본 업무랑 상관없는 불만을 막 토하기도 해요. 바쁘면 안 하셔도 된다고 하는데도 굳이 하면서 '이런 전화 하면 몇 명이 받아줘요? 진짜 해줘요?' 하면서 무시하는 고객도 있고 다양해요."


고객에 관한 특이사항 기재란에는 '꼬치꼬치 캐물음' '따지기 좋아함' '신경질적임' '반말' '욕설' 등 상담 시 주의와 참고를 필요로 하는 고객의 특성이 기재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고객일까?

너무 잘 되는 날도 너무 안 되는 날도 문제

날마다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10명에게 전화를 걸면 평균적으로 대략 4명 정도가 일단 받기는 한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상담사가 정해진 모든 내용을 다 안내하고 고객의 응답이 완료되었을 때, '한 콜' 실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고객이 전화를 받고 통화에 동의하여 90% 이상 진행이 되어도 마무리까지 가지 못하면 실패한 콜이 된다.

바쁜 고객님들의 인내심과의 싸움에서 산을 몇 번 넘어야 성공한 한 콜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한 콜 완료하고 나면 심호흡이 절로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당장 급한 일이 없어도 이런 전화가 오면 갑자기 바빠지거나 바빠져야 할 것 같다. 별일이 없는데도 "빨리빨리"가 튀어나온다. 누군가의 노동 성과를 위한 일에 보상 없이 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다.

"대출거래 서비스 평가는 보통 3분 정도 걸리는데, 그래도 고객들은 '왜 이렇게 길어요? 빨리 좀 해주세요' 해요. 10초나 30초 안에 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우린 질문 개수를 알지만, 고객들은 모르니까 답답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2개가 더 남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1개가 남았습니다' 하고 알려드려요."

은영씨 나름의 콜 성공 비법이다. 그래도 고객이 바쁘다고 한 문항을 남겨두고 끊어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다행히 실패한 콜도 상담사 업무 평가 기준 중 하나인 콜 시간에는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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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사들에게는 하루에 성공해야 하는 콜 수가 정해져 있다. ⓒ @callToon


"하루에 전화를 걸고 성공해야 하는 콜 수가 정해져 있어요. 팀장님들은 그냥 맞추라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어떨 때는 1시간 가까이 했는데 하나도 못 하고 있으면 조바심이 생겨요. 메신저로 오거든요. '너가 끝에 있어. 하위권이야' 이런 식으로 알려줘요.

그렇다고 콜 개수만 채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어떤 날은 너무 잘 되는 날이 있거든요. 내가 10개 걸었는데 고객들이 10개를 다 해주면 성공 콜 수는 달성을 한 거지만, 하루 동안 걸어야 하는 총 콜 수랑 콜 시간은 안 나오게 되잖아요. 그러면 팀장님이 시간이 너무 안 나왔다고 또 뭐라고 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총 콜 수와 성공 콜 수 그리고 콜 타임 달성. 은영씨는 날마다 출근해서 8시간 동안 에이아이(AI, 인공지능)도 수행하기 어려운 이 세 가지 미션에 도전한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고 적당히 하기

"30년 이용했는데 대출도 안 해준다고 항의를 하거나 주차비를 받는다고 화를 내는 분들도 있어요. 그땐 감정 없이 '아, 네~ 그러셨어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계처럼 얘기해요. 대출 안 되는 거는 내 잘못도 아니고 그 직원 잘못도 아니고 고객의 조건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고객이 화를 내면 저희는 우선 사과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어요. 우리가 욕받이가 되는 거죠."

이전 카드사에 근무할 때는 고객이 욕을 하면 경고를 3회까지 한 후에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는데, 지금 일하는 곳은 관련된 제도가 전혀 없다. 은영씨는 이 회사에서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와 관련된 공지를 전달받거나 매뉴얼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강성이나 진상 고객과 통화하게 되는 경우 그때그때 본인이 최대한 처리를 해야 한다.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때는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관리자에게 보고한다. 그럴 때는 관리자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상담 내용 녹취를 들어보고 상담사의 응대에 문제가 있다고 오히려 야단을 치기도 한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직장 내 갑질이나 괴롭힘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거나 매뉴얼을 본 적이 없다. 관리자들은 노동자가 업무상 실수를 하면 자기 자리로 불러 마치 본보기라도 보여주려는 듯이 다른 근무자들에게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다그치면서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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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은 노동자가 업무상 실수를 하면 자기 자리로 불러 마치 본보기라도 보여주려는 듯이 다른 근무자들에게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다그치면서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 @callToon


은영씨는 진상고객이나 관리자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로 동료들과 같이 욕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푼다고 한다.

"저는 그냥 말하고 떠들고 놀고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에요. 진짜 진상고객이면 하루 이틀 정도 생각나는데, 한 3일 지나면 잊히거든요. 오늘 이 고객 아니어도 내일 또 다른 진상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 고객한테 계속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여기는 대체로 다들 열심히 하고 관리자 말도 잘 듣는 편인데, 저는 너무 친절하게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적당히 하자는 주의예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일 정도가 되면 일 못 다녀요. 그걸 참으면서 꾸역꾸역 다니면 너무 힘들거든요. 저는 스트레스 받지 않을 정도로 받는 만큼만 적당히 일하자는 주의인데, 그래도 힘들어요. 목도 아프고 눈이랑 귀는 계속 나빠지고. 우리는 일하는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기 때문에 적당히 한다고 해도 일을 안 할 수는 없거든요. 그냥 인센티브에 마음을 비우는 정도인 거죠."


은영씨가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이고, 그 외 식비도 교통비도 상여금도 없다. 최저임금이 작년보다 130원 인상된 올해 월급은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 오래 다녀도 근속수당이 없어 10년 다닌 사람과 갓 입사한 신입직원의 급여 차이가 만 원밖에 나지 않는다. 명절 때는 작은 스팸 선물세트 한 개가 전부다. 몇 년 전에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챙겨주어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상품권을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콜 시간이나 콜 개수 등 업무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인센티브나 프로모션에 매달린다. 이름과 성과를 적은 성적표를 붙여놓는데, 인센티브에 관심이 있는 노동자들은 종종 성적 순위에 불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은영씨는 임금이 오르고 상여금과 근속수당이 생기면 지금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스크 수당과 감정노동 수당은 꼭 필요하다고도 했다.

동료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은영씨는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게 이 직장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8시간 근무 중 한차례 쉬는 시간이 있고, 10분을 넘기지 않는 범위에서 화장실도 눈치 안 보고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당일 연차나 병가를 쓸 때는 인센티브 삭감 등의 패널티를 감수해야 한다.

이 고객센터에는 20~30대가 거의 없다. 들어와도 금방 떠난다. 은영씨는 고객 응대가 힘들고, 단순 반복인 일이다 보니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일 거라고 했다. 관리자의 닦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남아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이곳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퇴직할 때까지 다니려고 하는 정년이 오래 남지 않은 이들이다.

은영씨도 이곳을 떠날 마음을 여러 번 먹고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남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가끔가다 이런 생각도 해요. 내가 이렇게 눈을 감고 자다가 내일 눈을 뜰 수 있을까? 눈을 떠도 다른 건 없고 또 똑같은 하루예요. 내일 또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은영씨는 "고객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로 시작되는 그 지루하고 지난한 노동을 해야 하는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고 했다.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무한 반복 노동 같다. 미래가 없는데 눈을 뜨면 신기하게도 내일이 와있다.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사람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일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여기서도 일 끝나고 친한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스트레스 풀고 그런 게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 거예요. 나 혼자서 계속 일만 했으면 너무 힘들었을 텐데, 주변에 같은 일 하면서 스트레스받은 거 얘기하면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그런 재미가 없어졌어요."

은영씨는 요즘 기회가 될 때마다 퇴근하고 노동문제와 관련된 강의를 들으러 다닌다.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동조합에 관심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노동에 관한 교육을 하고, 배관공과 의사가 받는 월급이 비슷하다는 외국의 사례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은영씨의 지금 노력이 내일 은영씨의 출근길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요즘 어딜 가든 고객센터는 다 있고 상담사 일이 필요한 직업인 게 맞는데,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직업은 아닌 거 같아요. 환경이 열악하니까 사람이 쉽게 들어오고 또 쉽게 그만두거든요. 고객들이 받는 서비스를 위해 하는 일인데도 '잡상인'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우리는 항상 고객들을 접대만 하는데, 우리도 다른 곳에서는 귀빈(귀한 손님)일 수 있잖아요.

저도 이제 젊은 나이도 아니고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내가 을의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것보다는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나한테 연락을 하고 '내가 알아봐줄게' 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연정은 르포작가다. 공저한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들의 삶>, <섬과 섬을 잇다>, <섬과 섬을 잇다 2>가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 <오마이뉴스> 등에 르포를 쓴다.
#콜센터 #진상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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