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기후위기와 차별금지법, 무슨 관계냐고요?

[차별금지법 나만 필요해? ⑤] 불평등 만든 기후위기...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막아야

등록 2021.06.04 13:28수정 2021.06.04 13:28
1
차별금지법이 금지된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차별의 일상을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지역 차별 등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차별의 경험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하기로 했습니다. 5월 25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됩니다. 5월 17일부터 '차별금지법 나만 필요해?' 기획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우리가 바꿀 세상을 제안합니다.[기자말]

청소년기후행동의 결석시위 장면 ⓒ 청소년기후행동

 
나는 3년째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리기 위한 소소한 길거리 캠페인으로 시작했는데, 정부와 국회가 한없이 소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여러 번 열고, 기후위기를 방관하는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 우리가 원하는 기후 정책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99인' 명단에 청소년기후행동을 대표해 이름을 올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렸을지 모른다. 기후위기와 차별금지법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하고 말이다. 

폭염과 불평등
 
a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는 날, 활동지원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중증장애인은 혼자 샤워를 하거나 냉방물품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 김예지

   
사실은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이다. 기후위기는 지구에 발붙이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닥치지만,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 한 편에는 위기를 용케 피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엔 그 충격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아슬아슬 버티고 있던 사람들의 삶을 한층 더 위태롭게 만든다.

쉽게 상상해보자. 기후위기 때문에 폭염 일수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는 날, 누군가는 에어컨을 켜고 집에서 쉬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활동지원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중증장애인은 혼자 샤워를 하거나 냉방 물품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배달기사(플랫폼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 성격의 특수 고용직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은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았음에도 일을 멈출 수 없다. 폭염 폭설과 같은 상황에서 콜 거부를 할 수 있지만, 회사 측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기에 대부분 하지 않는다.

또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족의 억압을 피해 탈가정을 택하지만, 마땅히 머무를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국에 총 147개의 청소년 쉼터가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성소수자 청소년의 입소를 거부하거나, 남성용/여성용 쉼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갈 곳 없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폭염 등 이상기후에 취약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받는 이주노동자들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그래서 소수자들이 좀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기후위기의 타격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폭염 시엔 작업 중지권을 행사하고, 안전한 쉼터에 입소하여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그 시작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그뿐인가.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 없이 기후정책을 추진하다가는 자칫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탈석탄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 중 하나다.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우리 정부 역시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30기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발전소를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재취업 교육 방안이나 지원책이 추후에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산업전환 과정이 과연 평등할까. 일자리가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떠나야 하는 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또,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이 폐쇄되면 어디로 재배치되는지 알 수 있는 정규직들과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 4월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3634명 중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8.7%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대부분 회사가 아니라 언론이나 동료들로부터 알음알음 전해 듣는다.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문제인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평등한 정보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을 예방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아닌 '동등한 시민'
  
a

2019년 9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환경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 주최로 열린 ‘기후위기를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며 정부를 향해 위기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무엇보다, 나는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나이주의적인 사회인지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청소년인 나는, 투표는 물론이고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인을 후원하거나 공개적인 지지선언을 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이곳저곳에서 마이크를 들었지만, 정작 나는 거기 힘을 보탤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학생은 비정치적이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에 발목을 잡힌 기분이었다. 실제로 2020년 10월엔 우리 단체의 청소년 활동가 중 한 명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위원회 참고인 신분으로 국정감사에서 증언을 하려고 했지만, '너무 어리다'며 반대하는 의원들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조차 청소년은 환대받지 못했다. 사실만 놓고 보면 심각한 차별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정치인들도 이런데, 학교라고 다르겠는가. 학생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거나 징계하는 학교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우리가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열었을 때, 적지 않은 참여자들이 학교와 갈등을 겪었다고 전해주었다. 누군가는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서 시위에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위에 나가면 징계하겠다'는 압박을 받았다.

엄격한 교칙과 수직적인 학내 권력구조 앞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은 힘을 잃고 만다.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겪은 이런 일들이 부당하다고, 엄연한 차별이라고 대신 외쳐주는 법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나 같은 청소년들이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청소년들이 더 이상 운동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불릴 수 있기를 바란다.

"왜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 인터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망설이다가 싱거운 대답을 내놓을 때가 많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나에게 기후운동은 단순히 지구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더위를 피하기 힘든 장애인과 노인, 안전한 집이 없는 퀴어 청소년, 생계를 잃을까 불안한 노동자,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기후위기와 맞물려 돌아가는 불평등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싸움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차별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할 책임이 있다. 우리 모두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향해 함께 걸어가자고 말하고 싶다. 

*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노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에서 인용했습니다.

※ 나도 말하고 싶다, 겪었던 이야기!

방법1.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와 함께 경험 적기
방법2. 구글 설문지에 경험 적기! 
https://forms.gle/HVaSZUqgABSgUxqW7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을 목표로 각자의 차별경험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 가기 https://bit.ly/equality100000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쓴 김도현님은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기후위기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
댓글1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