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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학교로 만드는 법,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변방의 마을학교 이야기 4]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듣는 마을 역사 이야기

등록 2021.06.13 12:01수정 2021.06.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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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험 한 가운데 놓인 농촌의 현실이 위태롭습니다.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교육은 지역 재생 발전의 핵심 요인입니다. 지역의 교육이 살아야 지역의 삶은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현장 '활동가'의 눈으로 그려낸마을교육공동체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깨움 마을학교'의 이야기입니다. [기자말]
"와... 여기, 이런 곳이 있었네요?"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눈 앞에서 이런 곳을 매일 보면서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찬찬히 들여다보자 비로소 존재감이 살아난다. 묘량중앙초등학교 3학년 마을교육과정인 '우리마을역사탐험대' 활동. 아이들이 동네 서원(묘장영당)으로 역사 탐험을 떠났다. 

7백년 넘는 시간을 거슬러 마을의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재잘거리는 목소리, 사각사각 다다다다 움직이는 발걸음들이 '서원'이라는 낯선 공간에 꽉 들어찼다. 수백년 세월 동안 '시간의 숲'에서 잠자고 있던 이야기들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마을 인문학 여행
 

걸어다니는 마을 박물관 동네 어르신은 누구보다 탁월한 마을 역사 해설가이시다. ⓒ 이민희


'묘장서원'(畝長影堂)이라고도 불리우는 '묘장영당'(畝長影堂)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49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 곳은 조선 건국 공신인 전주 이씨 양도공(襄度公) 이천우(李天祐, 1354-1417)의 영정을 봉인한 사당으로 광해군 8년(1616년)에 창건됐다. 태조 이성계의 친형 완풍대군 이원계의 둘째 아들인 이천우는 고려말 '황산대첩'을 이끄는 등 수차례 왜구를 토벌하며 무장으로 활약했다. 묘장영당은 고려말에서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목숨을 걸고 혁명을 선택했던 선현의 뜻을 기리고 있다. 

묘장서원은 마을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기관과 향촌자치기구 역할을 담당했다. 서원의 건축물은 선현을 배향(配享)하는 '사당', 교육을 실시하는 '강당', 수학하는 원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이루어진다. 묘장서원도 조선시대 전형적인 서원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毁撤) 명령에도 불구하고 신학문 보급과 인재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긴 주민들에 의해 묘장서원의 강학(講學)은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철(金澈: 1886~1934) 선생도 묘장서원에서 공부하며 뜻을 세웠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지역의 학교가 불에 타 소실되자 임시 교사로 활용되기도 했다. 

묘장영당은 조선시대, 근대화 시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랜 세월 지역 교육과 문화의 거처가 되어 왔다. 오래되고 낯선 기억으로의 탐험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국권이 강탈당하는 시련기에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의 문화재를 통해 역사를 만난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역사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사람들의 선택과 그 선택이 빚어낸 서사가 모인 결과이다. 이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관해 생각해본다. 역사가 딱딱한 기록물이 아닌 실재하는 의미로 되살아난다. 

걸어다니는 '마을 박물관'을 만나다
 

우리마을역사탐험대 아이들이 수백년 전 마을의 역사속으로 걸어들어간다. ⓒ 이민희


여행에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생소하고, 어쩌면 학교 교사도 익숙하지 않은 마을의 역사 탐험을 안내해 줄 적임자는 누구일까?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고 묘장영당을 보존하고 알리는데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계신 어르신을 마을 역사 선생님으로 모셨다. 

아이들 수업에 앞서 마을학교 실무자들과 학부모들이 미리 교육을 받았다. 묘장영당 이야기를 아이들과 쉽고 재미있게 나누기 위해 수업의 계획과 내용을 짜는 사전 모임이다. 우리는 서원의 역사와 풍속에 관해 어르신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화수분처럼 이야기가 솟아난다. 

어르신보다 더 풍부하게 이 곳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걸어다니는 동네 박물관이자 탁월한 마을 역사 해설가이시다. '어르신 한 분을 잃는 것은 도서관 한 개를 잃는 것과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여러분이 방금 통과해 들어온 문이 '홍살문'(紅箭門)이예요. 전국의 모든 서원 앞에 세워져 있지요. 우리 조상들은 홍살문이 귀신을 막아주고 액운, 즉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었어요. 여러분이 저 문을 통해 들어왔으니 나쁜 기운은 달아나고 좋은 기운만 여기로 들어온 거예요. 우리 학생들이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서원의 계단을 오를 때 성큼 성큼 올라서는 안 된다. 한복의 도포자락이나 치맛자락이 걸려 넘어질 수 있으므로, 조상들은 계단을 오를 때 한 번에 한 계단 씩만 올랐다.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는 말이다. 계단 오르는 방법 하나를 설명하는데 조선시대 의복과 예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묘장 서원 대청마루에 앉아 조상들이 공부했던 교실인 서원의 대청마루에서 옛 이야기를 듣는다. ⓒ 이민희



정의문(正義門)을 통과해 서원으로 들어갔다. 입구 양쪽에 자리한 기숙사(동재, 서재)와 교실로 쓰였던 대청마루, 오늘날의 교무실로 쓰였던 방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아이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고 어려웠던 시절에도 공부에 매진했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서 먹는 간식도 꿀맛이다. 

서원 곳곳에 미리 보물들을 숨겨 놓았다. 흩어져 보물찾기에 나선 아이들이 구석구석을 누빈다. 찾은 보물에는 묘장영당의 역사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각자 찾은 보물들을 공유하면서 다시 한번 의미를 새겨본다. 

마을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
 

마을의 역사를 배우다 동네 문화재를 통해 만나는 역사는 딱딱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있는 의미가 된다. ⓒ 이민희


아이들이 밥을 먹고 생활하는 삶의 터전은 마을이다. 살고 있는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학교가 마을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교육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자주 학교 밖으로 나가 마을을 알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활동할 때 '마을이 곧 학교'가 된다.  

묘장영당에서 3학년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까? 생소하고 어려운 역사 용어 몇 개를 기억하고 외우는 게 수업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번 '우리마을역사탐험대'의 목표는 '발견'이다. 아이들이 마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품었으면 좋겠다. 마을의 오래된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아이들의 교육활동을 통해 어른들도 마을의 역사 유산을 보존하고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면 금상첨화다.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이 지난 역사의 결과이듯이, 공동체의 미래도 흘러가는 시간의 산물일 것이므로. 시대를 긍정하고 희망을 찾으며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역사만큼 훌륭한 선생님은 없을 것이다. 
#마을역사 #마을교육과정 #마을학교 #묘장영당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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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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