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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가 사라진 민주당, 정의를 만지작거리는 정의당

[取중眞담] 예정됐던 '이준석 대표 시대'건만... 한숨, 침묵, 또는 추상명사만

등록 2021.06.15 20:07수정 2021.06.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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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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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대원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얀센)을 접종한 뒤 시민들의 요청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잔치는 모두의 예상대로 끝났다. 지난 11일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로 뽑힌 사람은 만 36세·0선의 이준석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분석이 나온 터라, 말 한 줌 더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이준석 대표가 책 <공정한 경쟁>에서 말한 이상향에 동의하지 않는다. 

"친구끼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인 세계는, "약자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보증은 심각한 불공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세계는, "여성의 특수성을 인정해 배려 차원의 할당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이 꼬인다"는 의견이 지배하는 세계는, 한국 사회가 오래 전부터 거부해온 '과거'다. 우리가 어렵게 헤쳐 나온 '어제'다. 그런 줄 알았다. 

정치인 이준석은 우리의 발 앞에 다시 '어제'를 가져왔다. 그런데 '어제의 어제'와는 조금 다른 '오늘의 어제'다. 

이준석이 가져온 오늘의 어제

무한경쟁을 부르짖고, 해고의 자유와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보수야당의 젊은 대표는 첫 공식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전두환씨의 재판 불출석과 당내 5.18 망언을 비판했다. 14일 KBS라디오 '열린토론'에선 차별금지법 관련해 "대부분 사안에 공감을 갖고 있다"며 "보수진영에선 동성애와 제도적 동성혼 자체도 혼재됐다"고 말했다. 5.18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고, '동성애 반대'식으로 반응하며 차별금지법 언급조차 피하던 과거 지도부와 사뭇 다른 태도다. 

누군가 그런 이준석 대표를 모순이라거나, 가짜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대중은 일단 이 대표에게 기회를 줬다. 보수진영도 '내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모아 그를 밀어 올렸다. 분명한 현실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보진영은 환영과 견제, 비판을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시선'만 있고, '행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를 기준 삼아 반 발자국 왼쪽으로 가보자. 더불어민주당이 있다. 송영길 대표는 이 대표 취임을 축하하며 "적대적 공생이라는 구시대의 문법에서 탈피해 큰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뜻밖의 고백이기도 했다. '적대적 공생'은 여권을 독선·오만 프레임으로 몰아간 국민의힘이나, 야당을 구태·발목잡기로 비판해온 민주당이나, 서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정치적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는 현실 인식이 담긴 표현이니까.


그렇다면 민주당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힘과 같은 출발선에서 뛰어 치고나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아니 적어도 '바람이 달라졌다'고들 느꼈던 2~3주 전부터는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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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최근 '이준석 대표 시대'를 맞닥뜨린 민주당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요?"라고 물었을 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한숨, 침묵, 아니면 '쇄신·유능' 같은 추상명사였다. "당의 혁신과 개혁이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A의원), "이준석에 맞설 해법은 다양성"(B의원)이라는, 지극히 맞는 말씀들은 있는데 여전히 내용은 없다. 정치의 언저리에 머무는 기자가 이렇게 느끼는데, 국민이라고 다를까?

설상가상으로 당내 가치 경쟁은 보이지 않고, 권력 투쟁만 뜨거워져 간다. 대선경선기획단 출범이 늦어지면서 대권주자 사이에선 경선 연기 여부를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허영 의원은 페이스북글에서 "기획단이라도 일찌감치 운영하면서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을 개발해 예비경선부터 흥행의 불을 지폈다면 좋았을 것을..."이라며 "이대로 우리는 패배의 길로 갈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이준석 대표를 기준으로, 한 발자국 왼쪽에 있는 정의당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여영국 대표는 14일 당 대선준비단 공개회의에서 "솔직히 아직 정의당 대선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다만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에 맞서는 한국 사회의 일대 전환을 담은 비전을 통해 대선을 맞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반기득권 정치 동맹'을 위해 일시적으로 당명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기득권 정당'이라는 명제를 반대할 사람은 찾기 어렵다. 불평등과 기후위기, 차별이 우리 시대에 당면한 과제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드물다. 또 정의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초자산제, 대선 의제로 준비 중인 국가일자리책임제의 경우 이름과 세부 내용은 달라도, 민주당 역시 큰 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정의당표 정책'이라고 각인시키기 어렵고, '이것이 진보정치'라고 선명하게 구분할 지점들도 흐릿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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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여영국 대표(오른쪽)와 박원석 대선준비단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대선 준비단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해는 한다. 청사진이든, 상세한 계획이든 자판기 음료수처럼 뚝딱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계속 흐르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상황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15일 송갑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2019년 8월과 2021년 4월 2030세대에게 '민주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물은 결과를 비교해보니 "없어진 연상이미지들이 있다"며 "민주적,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 용법은 원색적인 비난에 가깝지만, 정의당도 오랫동안 '정의 없는 정의당'이란 말을 들어왔다. 당명 개정을 논의하는 배경에는 그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고민도 깔려 있다.

민주 없는 민주당, 정의 없는 정의당...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카운트 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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