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6 12:53최종 업데이트 21.06.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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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법원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위안부 및 강제징용에 관한 최근의 퇴행적 판결들에 경종을 울리는 법원 명령이 나왔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4부(김정곤 부장판사)가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일본 정부는 판결을 이행하지도 않고 판결에 항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강제추심을 목적으로 한국 내 일본 재산을 공개해달라며 재산명시 신청사건(2021카명391)을 법원에 청구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채무자는 재산 상태를 명시한 재산목록을 재산 명시 기일에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승소 피해자들이 강제추심을 할 수 있도록 한국 내 일본 재산의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이 명령은 지난 9일 내려졌고, 15일 자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번 재산명시 신청사건의 재판부는 재산목록 제출 명령을 내리면서, 4월 21일의 위안부 각하판결 및 6월 7일의 강제징용 각하판결에 담긴 오류를 짚었다. 1월 8일 위안부 승소 판결 뒤에 있은 문재인 대통령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발언(1월 18일) 및 외교부의 '정부 차원의 불개입' 표명(1월 23일) 이후로 나온 일련의 판결들에 담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중대한 인권침해는 주권면제 예외 

각하판결을 내린 재판부가 내세운 논리 중 하나는 주권면제(국가면제)다. 주권국가인 일본을 타국 법정에 세울 수 없으므로 피해자들의 청구를 물리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 재판부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살인·강간·고문 등과 같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공동의 이익이 위협받게 되고 오히려 국가 간 우호 관계를 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점, 어떤 국가가 강행규범(반드시 지켜야 할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경우 그 국가는 국제공동체 스스로가 정해놓은 경계를 벗어난 것이므로 그 국가에 주어진 특권은 몰수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는 청구권협정과 무관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됐고 그에 더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한다. 6월 7일에 강제징용 각하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7조를 내세워 '한국 국내 사정을 근거로 청구권협정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는 청구권협정에 구속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재판부는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소구(訴求, 청구권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고, (위안부 피해자인) 채권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성격을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과 달리 볼 수 없으므로 채권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구할 수 없거나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없는 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구권협정은 위안부 피해와 무관하므로 이와 관계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반하지 않아

이번 재판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비엔나협약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점도 밝혔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정부 간 합의에 불과해 조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비엔나협약의 위반 여부와는 더욱 관계가 없다"고 말한 부분이 그것이다.

강제징용 각하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비엔나협약 제27조를 과도하게 확대 해석해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따르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적법 또는 불법에 관해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해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 등에 관해 보상 또는 배상하기로 합의에 이른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는 청구권협정에 구속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재산을 강제집행하려는 채권자들의 행위가 비엔나 협약 제27조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채권자들의 강제집행 신청이 비엔나협약 제27조 전단(전반부)에 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므로 이 협정에 의존하지 않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비엔나협약 위반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협정이 있었는데도 피해자들이 이 법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면 비엔나협약 위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은 그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이유로 원고들의 소를 각하한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열렸다. 2021.4.27 ⓒ 권우성

 
외교는 행정부에, 재판은 사법부에

최근의 각하판결에서는 한일관계와 한미동맹을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인식이 비쳐졌다. 강제징용 각하판결의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여전히 분단국 현실과 세계 4강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세력의 대표 국가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뒤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 신뢰 추락으로 헌법상의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재판부는 '외교는 행정부에, 재판은 사법부에'라는 분업 논리를 명확히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40조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함을, 제66조 4항에서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함을, 제101조 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함을 각(各) 정하고 있다"고 이번 사건 재판부는 언급했다.

그런 뒤 "확정판결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강제집행의 실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의 악화, 경제보복 등의 국가 간 긴장 발생 문제는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이 사건 강제집행 신청의 적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 사항에서 제외하고 법리적 판단만을 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외교는 행정부에 맡기고, 법원은 법리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관통하는 메시지, 법원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이번 재판에서 특별히 강조된 메시지 중 하나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없으므로 법원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재판에서 강조된 것처럼 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 피해자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 협정이 나온 직후의 상황에서도 명징하게 증명된다.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인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된 것은 1965년 6월 22일이고 발효된 것은 동년 12월 18일이다. 이 협정이 식민지배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1965년 12월 18일부터는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상태가 조성됐어야 한다. 만약 그런 상태가 조성됐다면, 1965년 12월 18일 이후로 아래와 같은 보도들이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후 사망 또는 부상한 전쟁 희생자 등의 가족 10여 만 명이 15일 현재까지 뚜렷한 법적 근거와 국제선례에 따른 정당한 피해보상금을 받지 못한 채 어려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1966년 8월 15일 자 <경향신문> '일제 상흔 아직도'

태평양전쟁 때 일제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현대판 애급(埃及, 이집트) 노예로 전락한 우리 민족은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향수에 젖어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이민족의 멸시를 받아가며 굴욕적인 생활을 이어왔다. 해방된 지 20여 년, 아직도 이러한 비참한 우리 민족이 이국땅에서 악몽과 같은 억류 생활을 하고 있다.
- 1967년 3월 1일 자 <경향신문> '여적'
 
첫 번째 기사에 나온 '10만'은 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끌려가 사망 또는 부상한 피해자를 가리킨다. 집계되지 않은 사망자·부상자와 더불어 사망자·부상자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중요한 것은 청구권협정 발효 뒤에도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법적 구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구권협정이 제대로 됐다면 위와 같은 보도가 나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유사한 보도들은 그 후로도 계속 나왔다.

1965년 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면, 한국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각지에서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원성이 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절규를 이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방 이후 76년간 한을 쌓고 쌓아온 피해자들에게 '1965년 청구권협정 조문을 살펴보라'고 떠다미는 일본 정부와 일부 한국 판사들의 태도는 인간적으로 차마 있을 수 없다. 이번에 나온 남성우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의 재산목록 제출명령은 이 같은 퇴행적 흐름에 경종을 울리는 '명령'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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