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하게 죽기보다 고생하면서 사는 쪽이 낫다

이것이 중국인이다 11

등록 2021.06.16 14:26수정 2021.06.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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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눈앞에 놓고 웃으며 춤추며
이미 죽은 사람을 밟아 넘으면서 나아간다.
- 루쉰(魯迅), 수상록
  
시대와 무관한 삶

중국인들의 삶은 잡초와 같다. 그들은 전란의 한 편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초탈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중국 역사를 보면서 무수한 왕조가 일어나고 멸하면서 역사의 페이지들을 장식해 왔지만 대다수의 민초들은 그런 왕조들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무관한 삶을 영위해 오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오쩌둥이 주도한 공산주의 지배 하에서도 대부분의 민중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소적인 자세로 삶을 영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어떻게 그러한 난세를 살아갈 것인가?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 작기인 루쉰은 이러한 중국인의 삶의 철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잡초는 그 뿌리가 깊지 않고, 꽃과 그 풀잎 또한 아름답지 않다. 더구나 이슬을 빨아먹고, 물을 빨아먹고, 땅에 묻힌 사자(死者)의 피와 살을 빨아 먹고, 그 생존을 빼앗는다. 그 생존에 있어서도 짓밟히고 깎이고 드디어는 사멸과 부패에 이른다. … 그러나 나는 나의 잡초를 사랑한다.
- 루 쉰, 제사(題辭)
 
사람이 잠들어 어느 때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그림자가 와서 이별을 고하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이다. -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천당에 있다면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 장래의 황금의 세계에 있다면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바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여! 나는 당신을 따라다니지 않겠습니다. 나는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아아, 아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무(無)의 고장에 방황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는 한 개의 그림자에 불과하니 당신과 이별하여 암흑 속에 침몰하여 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암흑도 나를 삼키어 버릴 것이며, 광명도 나를 소멸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명암 사이를 방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암흑 속에 침몰하여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 루 쉰, 그림자의 고별
 
호사악활

"훌륭하게 죽는 것보다 고생스러운 삶이 낫다.(好死惡活)"

이런 중국 속담에는 중국인의 생사관이 잘 나타나 있다. 진(秦)나라 말기, 계포(季布)는 의협심이 강하여 다른 사람들을 잘 도와주기로 유명했다. 그는 일단 자신이 말한 일이면 반드시 지켰다(季布一諾).

그는 항우(項羽)의 군대에서 높은 관직을 지냈다. 그는 여러 차례 한나라 군대에 패배를 안겨주며, 유방(劉邦)을 괴롭혔다. 항우가 멸망하자, 한 고조 유방은 천금의 상금을 걸고 계포를 찾으려 하며, 그를 숨겨 주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했다.


신망이 두터웠던 계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의 도움으로 변장을 하고 몰래 노(魯)나라 땅으로 가서 그곳에서 숨겨주기로 한 주가(朱家)를 찾았다. 그러나 계포는 주가에 의해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됐고, 살아남기 위해서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사마천은 그런 그의 삶에 대한 애착을 이렇게 평했다.
 
초나라에서 계포는 용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전진에 돌입했고 많은 공을 세워서 천하의 장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그가 쫓기는 몸이 되자 노예로까지 전락하여 살아남는 것을 꾀했다. 그것도 모든 치욕을 참고 견디며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려고 했던 것이다. 참된 용사는 경솔한 죽음을 하지 않는다. 아무튼 하인이나 천첩 따위가 감정이 내키는 대로 자살하는 것은 결코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계획이 무너져 이미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사기, 계포반포열전
 
그러나 그 후, 계포는 잠시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유방의 용서를 받고, 기사회생하여 낭중(郎中)이란 벼슬에 임명돼 다시금 활기찬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조구생이란 사람은 계포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책임진다는 한 마디의 말을 얻는 것이 더 낫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고 합니다. 내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장군의 명성을 선전한다면 장군의 명성 또한 천하에 크게 알려질 텐데, 어찌하여 장군은 나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입니까?

계포는 매우 기뻐하며 그를 수개월 동안 후대하며 머무르게 하고, 후한 선물을 주어 떠나게 했다. 조구생의 계속적인 선전으로 계포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부귀영화를 꿈꾸다가 제명을 살지 못하고 죽어나갔는가. 죽음의 칼날이 자신만은 비켜갈 것이라고 믿고 자만하던 사람들일수록 더 자신의 명을 재촉한 감마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미리부터 구걸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자세를 낮추고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다.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야 수천 년 동안 중국 대륙을 살다가 수십억, 아니 수백억 중국인들에 비하면 티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 루쉰의 중국인다운 이야기를 다시 들어 보자.
 
어떤 집안에 사내아이가 태어나 온 집안이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만 한 달이 되었을 때에 아기를 안고 나와 손님들에게 보여 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한 가지 길조(吉兆)의 말을 얻어내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돈을 많이 벌게 되겠군요."

그는 이에 감사하다는 말을 한바탕 들었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큰 벼슬을 하게 되겠군요."

그는 이에 몇 마디 겸손해 하는 말을 되받았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죽게 되겠군요."

그는 이에 여러 사람들에게 매를 한바탕 맞게 되었다. 죽게 될 것이라 말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부귀하게 될 거라고 말한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사람은 좋은 보답을 받고, 필연적인 것을 말한 사람은 얻어맞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저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거니와 얻어맞지도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선생님, 저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겁니까?"
"그러려면 너는 이렇게 말해야지. 아아! 이 아가야! 보시오! 얼마나... 아유! 하하!"
- 루 쉰/입론(立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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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문학과 창작 소설 당선 2017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아님슈타인의 시>, <모르는 곳으로>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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