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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범죄에 아들만 살아남은 가족... 그들은 내 이웃이었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끔찍한 무슬림 혐오범죄... 사랑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등록 2021.06.19 11:37수정 2021.06.1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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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일요일, 그날은 깜짝 찾아온 한여름 날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호숫가가 북적였다. 바다처럼 넓고 푸른 호수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잠시나마 사람들은 야외로 나가 팬데믹의 시름을 잊고 있었다.


같은 날 저녁,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시에서는 절대 잊히지 않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20세 남성이 몰던 검은색 픽업트럭이 돌연 연석을 넘어 무슬림 일가족 5명을 친 뒤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딸이 숨지고 아홉살 난 아들만 살아남았다. 가해자에게는 네 건의 일급살인과 한 건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됐다. 혐오범죄였다.

이 사건을 알게 된 건 다음 날 저녁이었다. 집에만 있기 갑갑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가든센터로 가던 차 안에서 '카톡' 알림이 울렸다. 지인이 공유한 기사가 보였다. 무슨 소식이냐 묻는 남편에게 "사고가 났나봐, 무슬림 가족이 차에 치였대" 일단 이렇게 답하고서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내 눈이 점점 커졌다. 질문을 계속하려는 남편에게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나중에. 이따 집에서 얘기하자."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의 귀를 막고 싶었나보다. 경찰에 따르면, 사전에 계획된 고의적 범죄이고, 희생된 가족은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타겟이 되었다고 했다. 사건 당시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졌고, 한 목격자는 아이의 눈을 가려야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엔 너무 험악하고 잔인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음 날 온라인 수업을 마친 둘째가 그 사건에 대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첫째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 이미 뉴스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우매함이 부끄러워졌다.

가린다고 결코 가려지지 않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시에서 무슬림 가족이 혐오범죄로 희생된 교차로. ⓒ 김수진

 
작년 이맘 때,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에게 '불행'을 가르칩니다"(관련 링크)라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적이 있다.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즈음이었다. 당시 막내 아이의 선생님은 온라인 수업 중이지만 이 중요한 문제를 모른 체 넘어가고 싶지 않다며, 인종차별 반대라는 주제에 대해 아이들과의 토론을 도와줄 책 리스트를 첨부했다.


아직 어린 막내에게까지 세상의 어두운 면을 굳이 알게 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생각 끝에 나는 분명 이렇게 적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함께 이야기해야 할 일,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저 멀리 안드로메다가 아닌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라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의 불행과 어두움 앞에 아이들을 뒤로 숨기지 말 일이다. 살다가 자갈밭을 만났을 때 어찌할 건지, 지금 내 길이 꽃길일망정 이웃이 자갈밭에 있다면 그땐 또 어찌할 건지,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생각해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현명한 시민이 되어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테니 말이다."

꼭 일 년 전에 직접 썼던 저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아이들에게 꽃길만 보여주고 싶었던 그 마음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을 이 사건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로 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흔히들 친절과 관용의 나라라고 하는 캐나다에서도 혐오범죄가 증가하고 있음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2017년 경찰이 보고한 무슬림 혐오범죄는 349건이었고, 이는 이전 해보다 151% 증가한 수치다. 더구나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혐오범죄의 3분의 2가량은 보고되지 않는다고 하니 실상은 그보다 더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증가했다는 보도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번 사건 이틀 후인 8일에는 무슬림 공동체가 모여 기도회를 가졌고, 이 기도회에는 연방총리인 저스틴 트뤼도를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함께 했다. 11일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희생된 가족을 애도하고 연대를 표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곳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 사랑은 미움을 이긴다' 등의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각자 종교도 인종도 달랐지만 혐오범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한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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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에 희생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놓여있다. ⓒ 김수진

 
이 사건은 캐나다 전역에 분노를 일으켰고, 나아가 혐오범죄와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혐오)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뤼도 연방총리 역시 혐오범죄를 멈추기 위한 사회 제반시설 프로그램 기금 확충을 약속했다.

연방총리는 이번 사건을 "야만적이고 비겁하고 뻔뻔한 폭력 행위"이며 "증오에 의한 테러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건 발생 8일 후인 지난 14일에는 가해자에게 테러혐의가 추가됐는데, 이는 캐나다 내 테러리즘 규정 변화의 신호라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캐나다에서 테러리즘 혐의의 대상은 주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가담한 이들이었다. 2017년 퀘백시에서 6명이 희생된 모스크(이슬람 사원) 총격 사건의 경우처럼, 백인 극우주의자에 의한 사건에는 테러 혐의가 추가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이같은 이중잣대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던 차에, 이번 무슬림 혐오 사건의 백인 가해자에게 테러혐의가 추가된 것이다. 그 결과에 캐나다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사랑은 미움을 이길 것이다 
 

학교마다 게시판을 통해 무슬림 가족에 대한 연대를 표하고 있다. ⓒ 김수진

 
이번 혐오범죄가 발생한 장소는 우리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무척이나 자주 지나치는 곳이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낯익은 거리다. 범인이 붙잡혔다는 쇼핑센터에는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피자집이 있다. 그러니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희생된 그 가족은 말 그대로 우리의 이웃이었다. 게다가 몸과 마음에 무수한 생채기를 입고 혼자 남겨진 겨우 아홉살 난 소년은 우리 둘째와 같은 반 아이인 모하메드의 친구라고 한다.

혐오가 집단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로까지 불거진 몇몇 사례는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소도시인 이곳에서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인지, 내 아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배가시킨 것 때문인지,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사건이 머릿속을 맴돈다. 가족들과 산책을 나가 선선하고 달콤한 저녁 공기를 마시노라면, 그 가족의 마지막 산책길이 떠오르고 그 길에 홀로 남은 소년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사건 발생 며칠 후 아이들과 꽃을 사들고 현장을 찾았다. 수많은 꽃다발과 인형들, 'LOVE FOR ALL, HATRED FOR NONE'(사랑은 모두에게, 미움은 누구에게도 주지 말아요)이라 적힌 표지판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가득 놓여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골목에는 희생된 가족을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의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고 그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소수의 사람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됐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한시에 가족을 잃은 소년의 슬픔과 분노까지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런던 이슬람 학교 학생들은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며 편지쓰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산책길에 보니 앞마당에 "WE STAND WITH #OurLondonFamily(우리는 #우리의런던가족과 함께 합니다)"라 적은 표지판을 세워 연대를 표하고 있는 집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 더 크게는 캐나다의 모든 소수민족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플래카드 속 문구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이곳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 사랑은 미움을 이긴다.'
#캐나다 #혐오범죄 #무슬림 가족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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