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내가 겪은 묻지마 폭행

편의점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목격자 중심 교육에 관한 이야기

등록 2021.06.21 10:19수정 2021.06.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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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대학생이 되어 스스로 용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생애 최초 '아르바이트'에 도전하였다. 마침 집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것을 보고 찾아갔다.


편의점에서 만난 사장님 부부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으로 보였다. 그렇게 나는 오후 시간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사장님 부부는 번갈아서 내가 나오지 않는 시간대인 오전과 밤 시간대에 나오셨고, 중간 교대시간에만 잠깐씩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나에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터졌다. 대략 네다섯 시 즈음 되는 밝은 오후였다. 난 손님이 없는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사람들이 오가는 창문 밖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올 긴박한 순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평온한 오후였다.

편의점 앞 거리에서 건장한 남자가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행색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딱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바로 그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나의 눈과 그의 눈이 딱 마주쳤다. 지금도 그 순간이 기억날 만큼, 그와의 눈 마주침이 나에게는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나와의 짧은 눈 마주침으로도 나의 두려움을 읽은 듯 나를 자신보다 '약자'로 여긴 듯하다. 그는 뭔가 화가 잔뜩 나 있는 듯 보였고 갑자기 "이 XXX"이라는 욕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 안의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주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편의점에 나 혼자인 사실을 알았고 어딘가로 빨리 숨거나 그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소리를 지르며 편의점 구석 물품 창고로 달려갔다. 내가 당시 어떻게 그 공간이 생각난 건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공간은 낯선 사람의 폭력으로부터 더 위험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찔하기도 하다.
 

20년 전, 내가 겪은 묻지마 폭행 ⓒ pixabay

 
나는 창고의 가장 구석 쪽으로 뛰어들어갔고 몸을 최대한 웅크려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머리 위에 두 팔을 올려 방어하며 겁에 질려 있었다. 그가 이미 나를 따라 창고로까지 들어온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쪼그려 앉은 내 앞 가까이에 이미 그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커다란 주먹을 움켜쥔 채 위로 번쩍 쳐들어 나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나는 나에게 닥칠 위기를 느끼며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의 짧은 순간이지만,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고, '나는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바로 그때였다. 나를 공격하려던 그 남자의 큰 주먹과 팔을 누군가가 재빠르게 낚아챘다.

"왜 이러세요! 하지 마세요! 그만 하세요! 여기로 나오세요!"

나를 도와주러 창고로 뛰어들어 위기의 순간을 막아준 그분의 목소리도 놀라고 떨리는 듯 느껴졌다.

'아... 다행이다... 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안도감과 함께 극강의 공포와 긴장으로 인하여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를 도와준 그분은 바로 편의점 남자 사장님이셨다. 무조건 감사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니, 평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시지 않는데, 오늘따라 뭔가 일찍 나가야 할 것만 같아 나오셨다고 했다. 마침 걸어오다가 멀리서 편의점을 바라보는데 수상한 장면을 목격하고 바로 뛰어오셨다는 것이다.

'하늘이 도왔구나.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몹시 끔찍했다. 위기의 순간, 그 무시무시한 남자의 주먹이 나를 향하기 직전, 사장님이 나타나서 나를 구해줬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으며 마치 영화 속에서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것이 사장님으로서는 당연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공포의 순간을 겪었던 당사자로서, 그 짧은 순간 사장님의 위기에 대한 판단력과 용기, 빠른 대처가 당연하다기보다 여전히 위대하고 감사하다. 사장님이 주저하지 않고 즉시 행동하셨기 때문에 내가 조금의 상해도 없이 안전하게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그날, 편의점 사장님이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지 않으셨다면, 그리고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지 않으셨다면, 또 민첩한 대처를 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쓸 수 있는 나와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2018년 1월경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묻지마 폭행한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날의 공포를 떠올렸다.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나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에게 당시의 기적적인 일이 없었다면 나 또한 그 피해자와 같은 고통을 겪으며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나의 일화와 함께 '목격자 중심 교육'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 교수님의 강의에서도 '목격자 중심 교육'이 소개된 적 있다.

현실 상황 속에서 폭력적 행위를 발견한 목격자들의 재치있고 용기있는 행동들로 순간적으로 가해자의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자들이 가해자의 행동을 막고 피해자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었고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내 생애 공포의 그 날, 나를 살려준 목격자는 '편의점 사장님'이셨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자마자 위험을 직감하였고, 짧은 순간 빠른 판단력과 대처로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나를 구한 것이다.

아이의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서 소녀를 구출한 아파트 주민, 자신의 집 현관문을 열어 가해자를 피해 도망치던 아이를 구출한 주민 등 우리 사회의 미담을 들으면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의 엄마로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나라면 과연 나의 주변에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순간의 재치와 용기를 발휘하여 피해자를 도운 주민의 사례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중학생들도 '와!'를 연발하며 정말 다행이라고 나와 함께 안도하였다. 우리 사회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나와 더불어 내 주변의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목격자로서 지혜롭고 용기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가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묻지마폭행 #목격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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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전하는 행복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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